여러분의 모든 업식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그림 최주현

여러분이 진짜로 어항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면 아주 반드시
‘마음은 체가 없구나.
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됐다가 저게 됐다가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느끼고 알아서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복이라는 것은 남이 농사지어 놓은 데 가서 ‘한 됫박 주시오.’ 하고 얻어먹는 것이고, 공덕이라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전체가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같이 서로서로 빈 데를 도와주는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두 손가락으로 집는 거하고 열 손가락이 다 한데 합쳐서 드는 거하고 차이가 얼마큼 나는지 모릅니다. 이 마음의 도리, 마음의 섭류는 우주 삼천대천세계, 즉 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 전체가 돌아가는 법계를 한 손으로 들 수가 있어서 이게 공덕입니다.

그러나 이 섭류를 하나도 모르고 내가 목마르면 급박하게 ‘물 한 그릇 주시오.’ ‘옷 한 벌 주시오.’ 하고 비는 것이 기복입니다. 빌어서 될 일이 아니거든요. ‘내가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고, 똥마려우면 똥을 누고, 잠자고 싶으면 잠자고 자유스런 사람으로서 살아라.’ 하고 사람으로서 진화돼서 이렇게 형성이 됐는데, 고등 동물이라고 했지만 고등 동물의 그 한계 내에서도 벗어나야 자유인이 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지만 이름만 그렇게 해 놓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벗어나야 만물의 영장이죠!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49년의 그 뜻은, 그 길은, 그 진리는 바로 자기가 혼자만의 국한된 부처라는 것을 말한 게 아닙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아버지가 됐다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됐다가 남편이 되고, 형님이 되고 아우가 되고 친구가 되고, 이렇게 스스로 자동적으로 아주 걸림이 없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되고 “여보!” 하면 남편이 되고, 그렇게 어디에 걸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걸리는 게 하나도 없죠? 그렇게 걸림이 없듯이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라고 했는데….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름을 해 놓고 부처님이라고도 이름을 해 놓고 여래라고도 이름을 해 놓고 그런 겁니다. 모두가, 부처님 문수 보현 또는 지장이나 관세음, 칠성 용신 지신 산신 독성 신중 이 모두가 한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노릇을 안 하고 사십니까?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 딴 사람을 해치는 걸 보면 그냥 덤벼서 해치는 사람들을 헤쳐 놓고 모두 말리지 않습니까? 그게 신장입니다. 금방 자기가 신장이 돼요. 그랬다가 또 잘못하는 사람을 보면 ‘아유, 저건 너무 잘못해. 저건 아유, 얄미워 죽겠어. 저거 저렇게 할 수가 있어?’ 하고 생각을 내는 법신이 됩니다. 몸뚱이로 움죽거려서 그거를 확연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로 화신입니다. 보신이며 화신이죠. 보현이면서도 화신 말입니다. 화신은 바로 바뀌는 그 시점을 말하고 다 바뀐 것을 보현이라고 그럽니다. 화하는 것은 바뀌는 것을 말하고요. 즉 말하자면 생각할 때는 우습지만 우리가 항상 ‘컵을 들었다. 물을 뜨는 과정이다. 물을 먹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신통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천안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천이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타심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숙명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천이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하셨는데 이 뜻이 뭐냐? 듣고 보고, 남의 속을 잘 알고, 남이 어디서 온 거를 알고,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온다 하더라도 이건 도가 아니니라 하는 뜻입니다. 컵을 만들어서 컵을 들고 물을 뜨고 이런다 하더라도 이건 도가 아니다 이거예요. 물을 떴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다 이거지요.
보세요. 심안으로 본다 하더라도 무효입니다. 심안으로 들었다 하더라도 무효! 보이지 않는 데 오고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무효! 어디서 온 거를 빤히 다 알아도, 남의 속을 다 알고 과거에 어디서 살다 어떻게 온 거를 알아도 무효예요. 왜냐하면 아무리 안다 하더라도 내가 먹을 수 없고 줄 수 없다면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서로 목이 마른데 물을 떠서 줄 수 없다면, 떠서 먹을 수 없다면 도가 아니니라 이런 소리에요. 컵을 들고 물을 뜨고 자시고 해도 먹을 줄 모른다면 도가 아니니라 이거지요. 갈증을 면할 수가 없으니까요. 먹지 못하면 갈증을 면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주지 못하고 자기도 먹지 못하니 이건 무효다 이거지요. 아무리 물이 있는 걸 볼 수 있고, 가고 옴이 없이 물을 뜰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먹일 수 없고 먹을 수 없다면 이건 도가 아니고 무효니라.
여러분이 모두들 어떡하든지 그저 돈 벌어서 살 궁리만 하시는데, 하하하…. “그럼 먹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러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얼른 쉽게 말해서 ‘허! 너 먹을 게 지금 없잖아. 먹을 게 있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나 혼자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너희들을 대신해서 내가 입도 빌리고 몸뚱이를 빌려서 다 심부름해 줄 뿐이지 너희들이 먹는 거니까 너희들이 먹고 싶은 거 알아서 해.’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라야 된다 이겁니다.

예전에 말입니다, 한 20년, 25년 전만 하더라도 큰 다라가, 생철로 되지 않은 다라가 상당히 귀했습니다. 그래서 ‘다라 하나를 얻어야 할 텐데….’ 하고 ‘다라를 얻는 것도 이 집도 모두 한울에서’, 하늘에서가 아니에요. ‘한마음 울에서 집도 한 거니까 다라도 거기에서 해결해. 사람들이 각자 와서 모두 일하는데 다라가 없으면 안 되니깐 너 알아서 해.’ 그래 버렸지요. 고것이 따지고 보면 자기가 자기를 부리는 법이지마는 자기가 자기를 부려서 그렇게 해 왔다면 자기가 신장이 될 때입니다, 고 찰나가. 그러니까 자기가 신장이 됐다 부처가 됐다, 산신이 됐다 독성이 됐다, 용신이 됐다가 지신이 됐다가 조왕이 됐다, 다 하는 거지요. 여러분이 다 그렇게 하고 가지 않습니까? 심안의 그 무심한 도리를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그렇게 하고 가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학생들 시험 볼 때가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내 한생각이라고 할 때…, ‘한’이 들어갈 때 전체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음 할 때도 ‘한’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자손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 주인공을 믿고 자기 주인공에다 맡기라고 하십시오. ‘네 심부름을 하려면 네가 합격을 해야 될 거 아니냐.’ 하고 거기 맡기라고 하십시오. 왜냐하면 자기의 영혼의 뿌리는, 바로 자기의 마음의 씨는 보이지도 않고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저런 나무도 뿌리가 있기 때문에 나무가 푸르르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똑같다는 것을 일러 주십시오. 알아야, 이해가 가야 자기를 진짜로 믿고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친구고 또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저 뿌리와 나무가, 뿌리를 뗄래야 뗄 수 없고 나무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영혼의 근본 뿌리 자체가 바로 주인공이니까요. 생명의 근본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삼합이 한데 합쳐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바로 주인공이라고 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때로는 ‘아이고,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이러고 ‘주인공! 되게 해 주시오. 주인공! 합격되게 해 주시오.’ 하고 이렇게 하는 것도 기복입니다. 이렇게 해도 될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이렇게 해 가지곤 도저히 힘들어요. ‘너만이 할 수 있다!’ 라야지요. 그리고 그렇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인 것을 알아야 진짜로 믿을 수가 있는 거죠. 자기를 지금 누가 끌고 다니는데요? 자기 운전수가 없으면 차는 그냥 그만이에요. 한 부분만 고장이 나도, 파워를 일으켜도 자기 육신은 쓰러져요. 그런데 자기라고 그렇게 내세울 게 뭐 있어요? 아니, 간장 공장만 파워를 일으켜도 그냥 쓰러지는 사람들이 자기라고 그럴 게 뭐 있느냐고요. 간장 공장만 그런 게 아니라 에너지 피 공장에서도 고장이 나면 백혈병이라 그럽디다. 그러니까 모든 병 자체가 바로 업식 속에서 파워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업식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자기 뿌리에서 흡수해서 나무로 올려보내는 거와 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자기의 뿌리인 주인공에서만이 할 수 있죠. 병고도 그렇고 들이고 내는 모든 것이 재료니까, 시험 합격 하는 것도 반드시 거기에 놓고 ‘너만이 합격하게 할 수가 있다. 합격하게 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네 심부름 하게 하려면 합격되게 해.’ 하고 진실히 그렇게 믿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사람’ 이러는 거는 ‘부처님’ 이러는 거와 같아서, 전체 한데 합쳐진 것이 ‘사람’입니다. 개별적으로 하나가 있는 게 사람이 아니고 한데 모여서 형성된 형체를 바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라 가정에서 침체해서 돌아가는 거라든가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거라든가,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마음을 잡아야지 육체가 잡아지는 법입니다. 자식들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부모자식지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달이 돼서 같이 의합하게 돌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화목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몸을 잡는 법이니까요. 자기한테 가설이 돼 있으니 자기 스위치를 올릴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살림을 해 나가면서 도를 구합시다.

도를 구하는 건 여러분의 마음으로 그렇게 실천을 해 나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거기다가 맡겨서 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켠다고 해서 거기다가만 그렇게 하고 말은 막 하고 막 악을 쓰고 막 신경질을 부리고 속을 북북 긁어 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관한다고 하면서 자식들이 나가서 만약에 자고 들어온다거나 공부를 안 한다거나 마구 딴 짓을 한다거나 이런다고 “너 이놈의 새끼, 뭐 어쩌고 어쩌고….” 하는 도로 뛰쳐나갈 수 있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맡겨 놓고 ‘이거는 모든 게 내 탓이로다. 상대방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낳았고, 내가 인연을 맺었고, 또 부모로부터 내가 나와서 이렇게 형성이 되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나하고 부딪침이 있고 나하고 인연이 된 거지 내가 없는데 어찌 인연이 됐겠나. 그러니 모든 게 내 탓이로다.’ 그러고선 ‘모두 저렇게 안되도록 하는 것도 너밖에 없다.’ 하고 자기한테 다 놓고 부드러운 말을 해 주면서, 부드러운 행을 해 주면서, 증오하지 말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마음속으로 그렇게 행한다면 그쪽까지도 불이 들어옴으로써 그쪽까지도 나한테 조건 없이 사랑을 할 수 있는 화합심이 생기고 자식들도 그 마음이 바뀌어서 아주 출중한 효자 효녀들이 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 생활 떠나서 부처님 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없이 부처님이 어디 있으며 불법이 어디 있으며, 생활이 없이 어떻게 부처님 법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 법이란 부처님이 따로 있고 우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부처고, 부처님도 마음이 부처이기 때문에 그 마음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같이 공생·공용·공체·공식화 하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처님과 더불어 같이 마음을 한데 합한 것이 부처님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부처님이죠. 여러분도 부처님인데 자기의 몸속에 들어 있는 그 자생중생들을 다스리질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중생 부처가 같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고거를 잘 다스려서 한군데서 나오는 거 한군데다 놓고 돌아간다면 바로 부처가 되고 법신이 되고 응신이 되고 보현이 되고 관세음이 되고 지장이 되고 칠성이 되고, 자동적으로 자유껏 자유자재 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입니다.
이제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십시오.

질문자1(남): 저는 법형제 심용회 총무로 있는 신도입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죽은 다음의 세계, 사후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중음신 상태에서 생전에 지은 업연에 따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계로 나오기도 하며 육도윤회를 한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심령과학의 노력으로 과학자들도 인정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희들은 그래도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공부를 잘하는 분은 잘하는 대로 못하는 분은 또 못하는 대로 수행하고 있는데, 깨닫지 못한 저희는 죽으면 어떤 마음의 차원이 되며 선원 법우들도 다시 만날 수 있는지요?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하하하…. 모두 마음의 차원에 따라서 돌아가는데, 이 공부를 안 한 사람들과 한 사람들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릅니다. 이 도리를 진짜로 믿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두를, 업연을 없애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무명 굴레에서 벗어나는 깨침의 도리를 일러 주기 위해서 자꾸 생활에서 닥쳐 오니까 그런 수련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죽기 한 시간 전에 이 마음의 도리를 알고 행하다가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아주 너끈히 웃을 수 있고, 죽지 않는 방법을 아실 겁니다. 몸뚱이는 사대로 흩어져서 원점으로 돌아가지만 영혼 자체는 슬기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언제나 여래와 한자리를 하실 겁니다. 그래서 법우님들하고 같이 항상 영원토록 하실 겁니다, 아마.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 기복으로만 끄달리는 사람들은, 그전에도 내가 말씀드렸지마는 죽으면 그 의식들이 집에도 있고 무덤에도 있고 친척간에도 있어요. 의식들이 그렇게 떠나질 못하고 자기 몸뚱이가 있는 줄 알아요. 자기 살던 그 관습이 있기 때문에 자기 몸뚱이가 있는 줄 알고 가려니 물 소용돌이를 벗어나야 될 텐데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못 가는 거고 또는 불 소용돌이를 지나야 될 텐데 타 죽을까 봐 못 가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건 모르죠. 그러니까 타 죽을까 봐 빠져 죽을까 봐 못 넘어가고, 또 그 모든 업연들이 뭉쳐져서 보이는 곤충들, 짐승들 또는 귀신들이 모여 있는 데를 넘어서려니 그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보여서 못 넘어가죠. 못 넘어가니까, 그 업연 굴레에서 무명 굴레에서 악연 굴레에서 못 빠져나가니까, 그렇게 자기가 그대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창살 없는 감옥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살아나간 차원 그대로 이 세상에 모습을 가지고 나오죠. 그러니 그 관습에 젖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겠습니까? 그러니까 개로도 되고, 돼지로도 되고, 닭도 되고, 뭐 별거 별거 다 되고, 사람도 될 수 있고 이러는 거죠.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내가 이렇게 왔는데 너희들 왜 본체만체하느냐. 왜 나는 안 주고 너희들만 먹느냐.’ 하고 귀찮게 구는 거죠. 자기 몸뚱이가 살아 있는 줄 알거든요. 지금 자기라는 착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못 벗어나서, 의식적으로 자기가 있는 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 ‘내가 이렇게 있는데 너희들끼리만 알아서 잘 살고 있구나.’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죠. 그래서 어떻게 죽었든지 어떻게 살았든지 그게 유전이 돼서 자식들한테 내려오죠. 그러니까 천도해라. 마음을 공부해라. 둘이 아닌 공부를 해라. 그렇다면 어떠한 영계성이든 유전성이든 세균성이든 업보성이든 다 한 컵의 물방울이다. 물방울을 열 개를 이 속에 넣어도 한 컵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애고도 생기지 않는 거죠. 그러고도 더러운 물도 말갛게 맑은 물로 쓸 수 있고요. 그러니까 이 공부를 안 하면 그렇게 대대로 대대손손 그런 유전에 의해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자기만 벗어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부모나 미래의 자식이나, 과거에 살던 자기나 미래에 자기가 갈 거나 모든 걸 한데 합쳐서 지금 막 요리를 하는 거죠.

막 그냥 용광로에다 집어넣는 겁니다. 막 용광로에다 집어넣는 작업만 한다면 그게 참선이고 관법입니다. 집어넣는 그 수행만 한다면 자동적으로 생산이 돼서 나갑니다. 그러니까 집어넣는 수행만 하십시오. 그리고 당장 살아야 할 테니까 ‘너만이 할 수 있다.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너만이 나쁜 짓을 안 하게 할 수 있어.’ 하시고 속상하면 ‘아, 마음을 싱그럽게 하고도 오래 살지 못하는데 아니, 왜 마음을 이렇게 속상하게 해 주느냐.’ 이렇게 하시고요. 안 그렇습니까? 이 몸뚱이 모습을 가지고 얼마나 살겠습니까?
그럼 여러분과 약속할 것은요, 여러분이 진짜로 어항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계기를 마련하려면 아주 반드시 ‘마음은 체가 없구나. 마음은 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됐다 저게 됐다가 마음대로 자유자재 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느끼고 알아서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정 빼놓고 내 몸 빼놓고 무슨 종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출중하고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하고 또는 병고가 없고 애고가 없고 그래야만이 나도 편안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뭐 기도한다고 집을 비우거나 해서 애들 밥을 지어 주지 않는다거나 또는 남편 음식을 소홀히 생각한다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집안 가사를 잘못한다든가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가정을 빼놓고 종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사시는 데 좀 더 너그럽고 화합해서, 또 애고가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이 마음공부를 하는 거니까요.

※위 법문은 1993년 8월 15일 국내지원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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