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지계’하고 있습니까

빠옥 등서 만난 대승불교권 스님
국적 떠나 ‘계율’ 문제 공히 지적
상좌부 스님들 ‘지계’ 긍지 높아
출·재가 함께 수행… 韓불교 도입을

산 정상에 함께 오른 빠옥총림의 수행자들. 출·재가자들이 허물없이 함께 수행한다. 저녁 노을과 함께 빠옥총림 전경이 보인다.

 

점심을 적게 먹고 노랑색 가사를 입은 스님이 나와 있었다. 당연히 스리랑카 출신 스님인줄 알고 질문 한 가지 하려 했는데 베트남 스님이다. 미얀마의 밤색 가사와 달라 스리랑카의 한 종파로 착각했다. 이 스님은 베트남이 대승권이지만 많은 불교도들이 자신과 같이 대승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벗어나 초기불교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 또한 법랍 10년이고 대승에 속하지만 옷만 대승이지 마음은 초기불교의 상좌부라고 설명한다. 대승불교는 역사적인 관점이나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불교라고 한다. 관련한 이런저런 설명을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자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인도 유학 시 많은 베트남 출신자들과 만나 많은 대화를 했는데 스님의 영어 발음은 베트남어 발음에 영향 받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미국에서 20년을 살고 ‘University of West’를 졸업했다고 한다. 스님의 이름은 ‘광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른 베트남 재가자도 만났는데 그 스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재가자도 초기불교에 관심을 갖는 베트남 불교도들이 대부분이고 대승에 관심은 적다고 말한다. 베트남 불교는 한자문화권이자 같은 중국 선종의 계보를 잇고 있어 한국불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

공양청을 나와 신발을 신으려니 들어갈 때 보았던 한 소년이 아직까지 서 있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왜 소년이 여기 서 있느냐하니, 무엇을 좀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순간 줄 것은 귤 하나밖에 없었다. 공양 후 비위가 약간 좋지 않아 방에 들어가 비스켓과 함께 먹으려했는데 선뜻 줄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오면서 얻어먹는 ‘거지가 다시 거지에게 먹을 것을 주었네’라며 구걸 소년이 ‘최후의 거지(last Bhikkhu)’라는 생각이들었다.

거처로 돌아오니 스페인 요기가 오개(五蓋)에 대해 묻는다. 이에 대해 설명한 후 이제는 내가 침대에 누워서 질문한다. “나는 스페인 생각하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투우가 먼저 생각난다. 당신은 한국이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그러자 그는 “한국음식과 김기덕 감독 그리고 그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답했다. 순간 놀랐다. 나 또한 학생들에게 불교 영화를 소개해주기 위해 보았던 영화였다. 스페인의 많은 사람은 김기덕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의 영화에 크게 매료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한국의 장소를 묻고, 다시 〈돈키호테〉와 투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문학 학자들은 〈돈키호테〉를 〈서유기〉와 비교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끊임없이 진행시켜 나가는 구성은 근대 소설의 효시로 꼽고 있다”면서 “돈키호테와 마부의 성격 유형에 있어 스페인 사람은 대부분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마부 타입”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어떤 타입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답을 못한다. 곧장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돈키호테 타입”이라고 대신 답을 주자 환하게 웃는다.

오후 불식이라 이전에 비스킷 등 이것저것을 챙겨먹다가 시간을 보니 넘겼다. 12시 15분! 오후 좌선의 휴식 시간에 ‘좌선 보조 기구’를 사진 찍어 두었다. 하나는 유럽인, 다른 하나는 알고 보니 스리랑카 재가자가 사용 중이다. 스리랑카 요기는 나더러 사용하라하여 일단 볼펜으로 가로 세로 길이를 재 놓았다. 우리나라에 가면 만들어 선방에서 오래 앉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오후 좌선을 마치고 만난 한국 스님들이 저녁 노을을 함께 보자고 권해 꾸띠를 지나 산등성이에 올라 강 건너 지는 노을을 구경하였다. 오면서 스님들에게 한국 선방에서 좌선을 위한 좌구가 있는지를 물으니 따로 쓰는 것은 없으나, 세납이 많은 스님의 경우 건강상 또는 연세상의 이유로 의자에 앉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이어 한국불교의 출가자 감소가 심각한 상황인데 미얀마처럼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선방 생활을 하여 재가자가 출가자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편이지 않는가를 물었다. 나의 질의에 스님들은 아직 “한국불교 정서상 힘들다”고 답을 준다. 생각해보니 미얀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해인사 선방이 한국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하루 동안 일반인에 선방을 개방했다는 기사를 일간지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선방 문턱이 높아 특별한 뉴스로 나올 정도이니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이곳에 있는 한국 스님들은 오히려 미얀마처럼 출가자와 재가자가 같은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이 편하고 좋게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었을 때 출가자와 재가자가 잦은 마찰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다.

양곤의 마하시 선원에 머물 당시 오랫동안 선원의 대중생활을 유심히 살펴 본 한 한국 스님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처럼 많은 대중이 함께하는 곳이면 한국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중공사를 붙일 소란이 일어날 터인데, 여기는 서로 없는 듯 큰 소리 한번 나지 않고 조용한 것이 그저 신기하다고 한다. 확실히 북방불교가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면이 있다하면 동남아 불교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면이 있다. 대체로 중국 선종 영향의 불교가 긴장과 강단이 있다면 대신 상좌불교는 느긋함과 편안한 여유가 있다. 그것은 염불 소리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은 미얀마 수행처에 빠옥총림의 여섯 째날(2012년 1월 27일)이다. 3시 30분에 일어나 새벽 좌선 시간을 갖는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약 200명 정도의 스님과 재가자들이 마치 개인 처소와 같은 모기장 안에서 소리 없이 좌선한다. 가끔 산 닭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선방의 불을 완전히 소등하여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어디서인지 잠자는 것 같은 불규칙하고 거친 호흡이 감지된다. 이전에는 나 또한 눈을 완전히 감고 어두운 곳에서 좌선을 하면 더 빨리 집중이 되고 의식이 명료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명료한 것 같지는 않으나 앉고 나면 바로 끝을 알리는 게송을 듣게 된다. 집중이 잘 되어서 시간 개념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새벽 좌선 시작과 끝은 부처님의 오도송으로 여겨지는 우다나 게송을 시작으로 12연기의 순관(順觀)으로 시작한다. 한국 선방이 죽비로 시작하고 맺는 것과 비교된다.

오전 좌선은 호흡관으로 열을 반복하다가 백까지 세는 것으로 늘려보았다. 빠옥 선사도 우리와 같은 수식관(數息觀)을 이야기한다. 백회를 하는데 놓치거나 잊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한편으로 다른 생각을 진행시키는 나를 본다. 일상의 의식상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가끔 생각에 떨어지거나 빠졌을 경우 호흡을 세는 것을 잊거나 놓쳐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가끔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셀 수 있는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완전하게 투명하거나 명료하지는 않는다.

오후 참선 후 스페인 요기가 석양을 보러 산에 오르자한다.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곳에서 그는 여기를 떠나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스페인에는 자기 마음공부를 지도해 줄 선생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기 저기 많은 나라들을 다녀 본 사람이다. 불교를 통해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행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구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산꼭대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시 중국 본토에서 상좌부 스님으로 출가한 5명의 젊은 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올라왔다. 그 중 한 스님은 스페인 요기와 잘 아는 사이인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그 중 가장 나이든 스님에게 어디에서 출가하였느냐 물으니, 중국이 아닌 미얀마라 하며, 법랍이 4년 되었다고 한다.

다른 스님들도 비슷하며 운남성과 베이징 등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왔다. 왜 대승불교 승복을 입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구동성으로 대승불교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했다. 상좌부야말로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른 불교이고 대승은 타락한 불교라는 것이다.

다시 중국에 돌아갈 것이냐고 물으니 중국에서 상좌부 불교 스님으로 지내기는 어려워 그냥 미얀마나 다른 상좌부 나라에서 평생을 지내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기존 불교와 충돌했던 사실과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나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생각난다. 많은 동아시아 출신의 구법승들이 인도에 도착하여 다시 되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인도에서 죽을 때가지 출가생활을 한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유는 동아시아가 왕에 의한 중앙 통제적인 상황 속에서 불교 승려들의 통제와 관리가 심한데 비해 인도는 출가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크게 대비되는 점일 것이다. 현재까지도 그와 비슷한 상황을 이 곳 미얀마에서 중국 스님들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은 마치 역사를 뛰어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 상좌부로 출가한 스님들도 다시 한국에 돌아가 출가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양곤에서나 빠옥의 이곳, 어디에서도 공통적인 것은 계율 면에서 대승권의 스님들을 불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스님은 미얀마 스님대로, 상좌부로 출가한 한국 스님은 한국 스님대로, 나아가 대승으로 출가하였지만 미얀마 체류기간 동안 이곳 승복을 입은 스님들조차 대승불교권의 문제를 계율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상좌부계 스님은 자신들이 계율을 잘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긍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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