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 수승한 불자가 되는 길

“보시하며 다른 필요함을 물으면
붓다의 수승한 재가신도가 된다”
한국 상좌부 스님이 전한 가르침
미얀마 불자들 보시 생활화 ‘귀감’

빠옥 총림의 사내 탁발 모습. 미얀마 재가자들이 출가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들어오면 발우를 손으로 받아들어 다시 돌려드리는 의식을 치른다. 이는 잔반 등을 통해 계를 어길 수 있는 스님들을 위한 배려다.

오늘은 이곳에 도착한지 아홉 번째 날(2012년 1월 30일)이다. 간밤에 오후 8시가 넘어 잠들었던 것 같다. 총림 진료실에서 처방받은 미얀마 기침약의 약기운이 강해서 인지 금방 졸렸다.  새벽 3시 30분 긴 목어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공양 시간까지 넘기고 말았다. 대신 점심 공양시간은 조금 일찍 나갔다. 입구에서 미얀마 재가자들이 출가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들어오면 발우를 손으로 받아들어 다시 돌려드리는 의식을 치른다. 혹시 발우에 함께 할 생명체나 잔식(殘食) 등과 관련해 율을 범할 소지를 재가자가 대신 해 드린다는 것이다. 즉 출가 스님이 계율을 최대한 지키도록 돕는 의식이다. 이처럼 공양에 있어서도 출가자와 재가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잠시 후 수행점검을 해주는 꼬비다 스님이 다가왔다. 나에게 내일은 인터뷰가 없는 날이니 지난번에 시간 관계상 답변을 다 못해 준 부분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개인처소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줬다. 스님의 친절과 자비심에 감격하였다. 아침 공양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점심을 많이 먹을 수는 없다.

원래 주어지는 분량의 반만을 받아 깨끗하게 먹었다. 바로 일어나지 않고 계속 앉아 있으니 한국 상좌부 스님이 이곳의 최신 생활정보 책자와 어제 부탁한 탑 모양으로 도표화한 수행체계 그림을 복사해 전해줬다. 일전에 사 온 샤프연필이 생각이 나서 없으면 보시하려 물어보았더니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상좌부에서 보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줬다.

“미얀마인들은 사찰이나 스님에게 갈 때, 작은 것 하나라도 항상 보시할 것을 준비하고 기쁜 마음으로 보시합니다. 대부분은 스님의 필요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여건에 따른 보시물을 준비하지만, 신심 깊은 신도들은 스님을 만날 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는지 항상 먼저 물어봅니다.

보시를 주고받을 때는 서로가 ‘상갓사 데마’의 마음으로 이루어지기에, 보시물의 종류나 크고 작음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법랍 50세가 넘은 스님이 법랍 6,70세가 된 스님들께 찾아가 세제 등 흔한 생필품을 보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어떤 재가자가 비구에게 ‘이것 있나요? 필요한가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덕을 위하여 또한 받는 사람의 다른 공덕을 위하여, 자신이 보시(포기)할 수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삼보와 업에 대한 믿음을 갖고) 보시하면서, 다른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그것이 붓다의 수승한 재가신자가 되는 길 중의 하나입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법시와 재시가 기본이다. 출·재가자간의 여법한 관계라는 불교의 기본부터 다시 배운다. 보시물의 필요여부를 먼저 물었던 나에게 문구로 보시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준 스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난다.

같은 자리에서 스님의 문구를 음미하며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식기를 씻으러갔다. 그곳에서 스리랑카 스님과 눈이 마주쳐 인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도 이곳 사미니라 하고, 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빠옥총림에 와서 비구계를 받았다한다. 또한 스리랑카에서 이미 사미 생활을 10년 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다른 스님들과 함께 설거지하는 곳을 청소하는 소임을 맞고 있었다.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스리랑카 식의 예배법에 대해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주며, 다음에는 예경 문구까지 적어줬다. 스님의 설명을 통해 부처님에 대한 예경법은 거의 공통이지만 스님과 스님간의 예경법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빠옥 총림의 도서관에서 스님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공양청 회랑의 한 쪽에는 늘 그랬듯 중국 상좌부 사미니들이 법석을 차리고 있다. 법사 스님이 앉을 의자와 화병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들을 사미니들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보는 것으로도 신심이 난다.

문득 빠알리 경전 문구를 확인해보고 싶은 바가 있어 오후 휴식 시간에 총림 내 도서관에 갔다가 미얀마 상좌부로 출가한 한국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빠옥총림 도서관은 상당히 큰 규모로 있다. 이야기 도중에 언제 한국에 돌아가는 지를 묻자 “그것이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계율 상 속가 집에 머물 수도 그렇다고 여관이나 호텔에 머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스님의 고민을 듣자 계를 바르게 수지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을 거점으로 상좌부 계통의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좌선 시 온통 그러한 생각과 계획을 세우는데 붙들려 있게 되었다. 스님과 대화 가운데 “한국불교가 일반 사회를 이끌어 가야하는데,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찰까지 세간의 경제 논리에 따라 법을 돈으로 파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곳 빠옥 총림에서는 그 점을 가장 경계한다고 하였다.

대화 도중 마침 바로 앞에 상좌부 수계의범이 눈에 띤다. 마하시 선원에서 비구계 수계를 도와주면서 위빠사나 수행과 관련한 문구가 생각 나서 질문하였다. 즉 비구계 수계의식에서 “위빠사나 수행에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 그대는 의무를 면제받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미얀마불교의 모든 종파가 그리고 전통적인 문구인지 궁금했다. 델리대에서 같이 공부했던 옷따라 스님을 양곤에서 만날 때도 문의했더니 아마 미얀마 수행처에만 행해지는 문구인 것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빠옥은 위빠사나 뿐만이 아니라 사마타 또한 강조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내 짐작대로 그 내용이 다름을 확인하였다. 스님은 영어로 그대로 써주었는데 마하시에서 본 것처럼 위빠사나만이 아닌 사마타가 들어간 ‘Samatha-Vipassana 수행을 열심히 정진하기 위해 의무를 면제해주기를 청할 수 있다’는 문구로 서로 달랐다. 대단히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한 것 같아 즐거웠다. 이렇게 선원마다 어떠한 수행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수계식 문구마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차후 비교적으로 다른 종파나 미얀마의 전통 수계식을 다시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녁 참선시간, 선방에 올라가보니 앉을 시간이 다 되어 어제 온 젊은 한국 요기가 여전히 참선을 잘하고 있다. 기다려 같이 내려올까 하여  밖에서 경행을 했지만 그는 일어설 줄을 모른다.

제 시간(새벽 3시30분 전)에 일어나 바로 선방에 올라갔다. 오늘은 빠옥총림의 열 번째 날(2012년 1월 31일)이다. 스님들이 포진하고 있는 앞쪽 중간에 앉으니 제법 분위기가 잡힌다. 오늘 9시에 수행점검과 지도를 해주시는 꼬비다 스님과 특별 면담이 있는 날이다. 시간 안에 가려했는데 처음 짐작했던 꾸띠가 아니고 정반대편인 바람에 숲 속 여기저기를 헤매다 간신히 한 미얀마 스님의 도움을 받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5분 늦게 도착하였다. 지난 인터뷰에서 시간관계상 지관차제가 아니라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 가능한 경우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색(色)에 대한 선정(rpa meditation)’ 가운데 4대에 대한 계분별(界分別)로 가능하다고 것이다. 다시 근거를 묻자 〈청정도론〉과 다른 주석서를 제시한다. 스님은 사대에 대한 계분별없이 바로 위빠사나를 하는 것이 위빠사나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계분별은 사마타 수행자나 위빠사나 수행자 모두 공통이라 한다. 다만 차이는 사마타는 근접삼매로서, 위빠사나 수행자는 통찰(penetration)로써 접근하는 방법만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위빠사나 수행자가 사마타 바탕 없이 수행한다는 것은 다만 사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차이만이 있다고 한다. 몇 가지 점에서 명쾌하지 않지만 점심공양시간에 이르러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님에 드리는 보시로 매직연필과 샤프연필 그리고 물티슈 한 묶음을 가지고 갔다. 너무 하찮은 것이지만 이곳 방식으로 마음으로 올리는 것이다. 스님이 축복의 독송을 해준다.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 1시에 다시 시간을 내주시기로 했다.

점심공양 때 스님들마다 국화와 양란 한 묶음씩을 들고 나온다. 이곳에서 스님들께 ‘헌화’는 일상적인 보시 중의 하나이다. 점심 공양 후 ‘중간포살’ 의식이 공양청 2층 법당에서 열린다. 비구 스님과 사미 등이 모여 질의응답을 한 후 재가자에게 다시 8재계를 수계하는데 참석하였다. 비구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례들을 들어 계율의 문제를 설명해주고 세세한 사항들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답변을 해준다.

8재계는 거의 모든 재가자가 모여 진지하게 낭송을 한다. 의외로 유럽인들이 잘 따라한다. 전번 특별한 좌구(meditation chair)에 대해 알려주었던 유럽인은 오늘 다시 접었다 폈다할 수 있는 의자를 사용하여 앉는다. 다시 물어보니 이는 스위스에서 가져왔다한다. 스위스 인임을 오늘 알았는데 선방의 모기장 안에도 부처님 사진을 모셔놓고 좌선한다. 불교에 대한 신앙과 수행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오후 참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치고 거처로 돌아와 보니 옆 3호실에 아는 사람이 보인다. 마하시에서 보았던 옆방의 요기가 젊은 스님과 함께 쉐오민 선원으로 가기로 했는데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스님이 자주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인도에 가기 전까지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반가웠다. 내일 아침 밥그릇을 챙겨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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