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수행처 이야기] 11. 빠옥 총림에서 생활 〈1〉
[미얀마 수행처 이야기] 11. 빠옥 총림에서 생활 〈1〉
  • 조준호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외래교수
  • 승인 2019.06.1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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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답게 사는 선원 일상생활 ‘감동’

경론·실수 병행한 수행 강조
새벽 3시30분부터 정진 시작
하루 네 차례 단체 좌선 진행
중국계 설맞이 법회 경험도
빠옥 선원에서 봉행된 중국계 불교인의 설맞이 법회 단체 사진. 필자도 참여했다. 사진 세 번째 줄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필자다.
빠옥 선원에서 봉행된 중국계 불교인의 설맞이 법회 단체 사진. 필자도 참여했다. 사진 세 번째 줄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필자다.

제방 수행처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도력이나 법력이 있는 스승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한 스승이 있다하면 거리를 상관하지 않고 편의시설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방 프로그램이 좋고 선원의 시설 또한 좋다고 하더라도 배울 만한 스승이 없다면 찾지 않는다. 촉각을 세워 스승을 찾는 사람은 절실하다. 스승의 무게를 귀신처럼 안다. 인도나 미얀마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스승을 찾아 사람들은 모이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스승에 자신을 던져 보고 맡겨 본다.

빠옥총림의 빠옥 선원장 스님은 1934년에 태어나 10세에 사미로 출가하였다. 이후 경론 공부와 함께 여러 승가고시를 통과했다.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22세에 ‘법사(Dhammacariya)’ 시험을 통과했다. 1964년부터 집중적으로 선정수행을 닦으면서 아랸야 산림수행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경론 공부를 병행하면서 선정수행 또한 여러 선사로부터 지도받았다.

1981년에 빠옥 스님은 당시 빠옥 총림의 선원장 스님은 악갸빤야(Aggapaa) 스님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1983년에 이르자 미얀마 내 많은 출재가자들이 빠옥 스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 이르면 외국의 수행자들 또한 빠옥 스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빠옥총림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1997년에 이르러 빠옥 스님은 초기경전에 근거하는 수행 지도서를 출간했다. 이 같은 수행 지침서는 미얀마어나 스리랑카어로도 출간되었지만 영어로 출간이 전 세계인을 또한 찾게 한 주요한 요인이었다.

빠옥 스님은 경론의 법사와 함께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의 선사(禪師)로도 높은 존경을 받는다. 법사를 의미하는 ‘Dhammcariya’와 ‘Kammahncariya’라는 공식적인 타이틀이 이를 증명한다.
‘Kammahncariya’는 업처(業處) 수행 지도의 스승을 말한다. 빠알리 논서에서 업처란 다양한 사마타 수행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빠옥 스님이 국제적으로 널리 법을 펼 수 있는 장점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한다. 전 세계의 초청으로 법을 펼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몇 해 전 고우 스님과 함께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토론을 진행했다.

스님의 활동상은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아서 1999년 미얀마 정부는 빠옥 스님에게 ‘Agga Mah Kammahncariya’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Agga Mah’는 최고 정점의 위치를 말한다. 2009년에는 ‘Shwekyin Nikya Rattamahnyaka’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대승의 <관무량수경>을 읽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다. “선정에 나온 뒤에 경전의 가르침과 맞추어 보도록 해야 한다”라는 경구이다. 교외별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공부는 점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선수행 지도 법사는 수행의 실수(實修)와 경론의 학습을 겸비해 있는 스승임을 증명하는 전통임을 보여준다. 사마타 위빠사나 등의 공부에 경론에 근거를 두고 경론의 말씀에 맞추어 지도하고 있음을 말한다. 빠옥 스님에게 수여된 공식적인 칭호들이 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그의 지도를 수용하는데 안전하다고 믿고 따른다. 이 같은 전통은 비단 미얀마 불교에 국한된 전통이라기보다 인도불교의 면면한 주류 전통의 계승일 것이다. 

다음은 빠옥 총림의 선원수행 일과표이다. 일과표는 마하시 선원처럼 총림의 여러 곳에 게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따로 복사하여 새로 입방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주지 스님은 일과표에 볼펜으로 표시하며 시간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님의 이름과 수행점검을 해 주는 두 스님의 이름을 ‘Ven. Kovida’와 ‘Ven. Revata’로 적어 줬다. 또한 상좌부로 출가한 한국 출신 스님 이름도 알려준다. 이러한 일과표를 다시 찾아보니 닳아져 글자도 희미해졌고 누렇고 너덜너덜해져 있다.

그리고 공지사항이 전해졌다. 첫 번째는 “새벽 3시30분, 아침 7시15분, 오후 12시45분, 오후 5시45분에 긴 통나무로 된 목탁을 쳐서 단체 좌선을 알릴 것”이며, 두 번째로는 “수행자들은 개인 시간이든 자유시간이든 모든 시간에 좌선과 경행의 수행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2012년 1월 23일. 오늘은 빠옥 총림에 도착한 두 번째 날이다. 마침 음력 설날이었다. 습관대로 아침에 먼저 일어나 바로 담요를 개고 그 자리에서 좌선을 하였다. 좌선하는 동안 주지 스님은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어나지 않다가 자세를 푸니 그때야 일어났다. 간단히 씻고서 먼저 공양청을 찾아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덩치 큰 개들이 나를 보고 짖어댔다. 새로 온 사람인지 아는가 보다.

어제 주지 스님이 가르쳐 준 공양청을 찾아가니 모두가 배식 준비로 분주했다. 소임을 맡고 있는 띨라신 사미니 스님을 찾아 밥그릇을 수령해야 한다. 스님을 만나 부탁하였더니 한참 후에 쟁반에 큰 바가지 같은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컵과 숟가락, 스테인리스 접시 그리고 식기를 닦을 천조각과 함께 내어줬다. 그러면서 수행하는 동안 사용하게 될 식기라고 전했다.

스님들의 개인 발우처럼 재가 요기들도 마찬가지로 탁발 후 씻어 정해진 식기 보관함에 보관했다.

양곤의 마하시 선원은 개인 식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용했던 식기의 설거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차려진 탁자에 둘러 앉아 먹고 난 후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빠옥총림에서는 식탁도 없이 맨 바닥에 앉아 먹는다. 또한 아침 공양 시간이 마하시 선원보다 늦다. 아마 많은 인원과 사내 탁발 때문으로 짐작된다.

공양에 앞서 먼저 식판을 앞으로 정렬한 후 모두 합장한다. 선창을 따라 미얀마어와 빨리어로 공양게를 우렁차게 합창한다. 낭송 후 바닥의 식판을 들어 올린 후 사내 탁발의 행진을 따른다. 앞선 스님들의 공양 행렬을 따라 재가자들도 차례차례 음식물을 공양받는다.

마침 설날이어서 중국계 스님과 신도들이 보시하여 총림의 모든 대중에게 점심까지 특별식이 제공됐다. 배식구 반대편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배식을 받았다. 내 그릇에도 밥과 갖은 종류의 반찬 등을 가득 담아줬다. 아무래도 생소한 환경에 나의 어색함이 보였는지 상좌부로 출가한 한국 스님이 다가와 간략한 설명에 이어 가르쳐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옆에는 유럽계 몇 사람이 앉아있다. 드디어 아침 식사를 하는 데는 성공했다.

양곤의 마하시 선원에서 활동량이 적다가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며 먼 곳까지 와서인지 무척이나 밥이 간절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여유있게 나오다 다시 한국 출신 스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도서관 건물 앞에서 베트남과 중국계 스님들이 대거 모여 있다. 모두 신심과 환희심에 넘치는 분위기로 충만했다.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니, 설날이라 큰 스님을 모셔와 특별 법문을 듣는다고 한다. 먼저 도서관 앞에서 초청 법사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나도 슬쩍 참석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법사 스님에 모두 맨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러면서 스님에게 꽃 한 송이, 비스켓 한 봉지, 양초 한 다발 등을 각자 성심껏 공양했다. 스님은 받아 손만 대면 바로 옆 스님이 보시물을 담았다. 헌신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를 지켜보노라니 절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제 종무소의 현황판에서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외국인 수행자 가운데 베트남과 중국이 1, 2위를 차지하였는데 지금도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이를 보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선불교가 본토에서 사라지고 한국에 중국 전통의 불교가 잘 보존돼 이제는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전통불교를 역수입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상황은 영 딴판이었다. 오히려 상좌부 불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좌부로 출가한 한국 출신 스님에게 이 같은 생각을 이야기하니, 스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스님은 중국 정부차원에서도 한국에 있는 과거 중국인들의 선불교보다 동남아 초기불교 전통을 더 지원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불교를 통해 동남아 국가와 유대를 더 강화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불단이 있는 도서관에서 베트남과 중국계 스님과 신도들이 중심이 된 법회가 봉행되었다. 미얀마어를 중국어로 통역하여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뒤에 앉아 법회 진행 분위기를 참관하였다. 모두 신심과 환희심에 넘쳐 있었고 편안한 농담도 웃음도 오갔다. 화기애애했다. 대덕 스님의 법회인데 어떠한 긴장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도서관 시설을 살폈다.

수행처 도서관으로서는 시설이 뛰어나다. 각국의 초기불교 관련, 수행 관련 도서들이 다 모여 있다. 물론 대승불교 서적들도 많이 있다. 대부분 뜻있는 각국 수행자들의 보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서 기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은 포살일이라서 이후 도서관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오던 중 길에서 회색 승복의 한국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이 사용했던 방에 내가 들어가게 될 것이라 했다. 대신 스님은 오늘 선원에서 나가는 다른 한국 스님의 개인 수행처인 독립된 꾸띠(kuti)로 옮길 것이라 한다.

몹시 궁금해 옮길 스님의 거처를 보기 위해 따라가 보았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수행처 건물로 가서 보니 완전한 원룸이다. 독립된 공간에 경관이 좋은 펜션과 같다. 순간 너무 환상적이어서 감탄했다. 선원을 중심으로 산등성이에 이와 같은 수많은 개인 수행처가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에 큰 사찰을 중심으로 암자가 있는데, 원래 암자가 꾸띠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어느 새인가 암자가 개인처소 공간에서 신도들이 찾을 수 있는 독립 신행 공간으로 변모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몇몇 스님들도 각각 이 같은 꾸띠(kuti)를 건립하여 미얀마에 올 때마다 개인 수행공간으로 이용하고, 떠날 때는 다른 수행자가 쓸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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