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수행처 이야기] 22. 빠옥 총림에서 생활 〈12〉
[미얀마 수행처 이야기] 22. 빠옥 총림에서 생활 〈12〉
  • 조준호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외래교수
  • 승인 2019.11.29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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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행렬 ‘장엄’… 발우엔 ‘행복’ 담다

수행 15일째 체험한 탁발 행사
스님 옆에 학생들이 발우 들어
축적되는 식량 안받게 한 배려
韓 금지된 탁발 다시 되살려야
빠옥 총림서 수행한지 보름만에 체험한 탁발 행사. 스님과 발우를 든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행렬을 이뤄 걸어간다. 이는 축적되는 식량인 쌀을 스님이 직접 받지 않게 하는 배려다. 율에는 축적되는 식량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
빠옥 총림서 수행한지 보름만에 체험한 탁발 행사. 스님과 발우를 든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행렬을 이뤄 걸어간다. 이는 축적되는 식량인 쌀을 스님이 직접 받지 않게 하는 배려다. 율에는 축적되는 식량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4번째 날(2012년 2월 4일)이다. 간단히 씻고 올라갔다. 새벽 좌선에 집중이 잘 되어 끝나고도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다시 아침 공양 후 오전 좌선 1시간 45분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이후에는 인터뷰 시간이다. 수행 점검 스님께 14일째 호흡관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마음은 안정되고 고요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아직 맑고 명료해지지는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스님은 계속 호흡관을 닦으라고 한다.

빠옥 선원에서는 선정 시 나타나는 ‘니미따(nimitta)’를 중요하게 여긴다. 스님께 가끔 코 끝 주변이 아닌 눈앞에 ‘푸른 색 원(bright circle in blue colour)’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며, 이것이 ‘니미따’인지 물었다. 이에 스님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니미따’의 시작 단계라고 했다.

인터뷰 중간에 태국 스님이 무슨 용무가 있어 들어오자 말을 중도에서 마치고 “아마 자신보다 법랍이 높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법랍이 많음이 확인되자 기다리는 많은 요기들 앞에서 바로 삼배를 올린다. 이에 덩달아 수행점검을 기다리는 다른 스님과 나도 태국 스님에게 삼배를 드렸다.

내 인터뷰 이전의 차례는 미국인 출가 스님이었다. 그런데 점검해주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반납하는 환계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수행 점검 스님이 이유를 묻자 이곳의 생활은 운동부족이 문제라는 것이다. 돌아가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란다. 스님은 어떤 운동을 할 것이냐 물으니, 수영, 달리기, 자전거 등을 말한다. 이를 들으며 속으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점검 스님이 그러한 이유라면 여기서 요가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를 말해 준다. 하지만 미국인 스님은 어찌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마하시 선원 때에는 ‘알아차림 명상’으로 눈, 귀, 코 등 모든 감각 기관을 열어놓고 주변의 자극에 대해 따라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나니 굉장히 주변과 사물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감수성이 발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이곳의 빠옥에서는 호흡에만 주의를 모으고 외부나 다른 자극과 대상을 개의치 않으니 갈수록 사물 인식 폭이 좁아지고 감수성이 이전보다 떨어지는 대신에 한 곳에 몰입해 가는 수준은 높아진다. 이것이 마하시와 빠옥의 중요한 차이처럼 여겨진다.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5번째 날(2012년 2월 5일)이다. 3시 30분전에 일어서 씻고서 선방에 오른다. 같은 방의 요기는 나보다 약 1시간 전에 일어나 올라 간 것 같다. 열심이다. 오늘은 스님들이 마을로 탁발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 날이다. 나도 따라갈 작정이다.

이러한 특별한 일정으로 전체 아침 공양 시간이 앞당겨 이루어졌다. 평소보다 15분 전에 공양을 마치고 출발한다. 급히 아침을 먹은 후 카메라를 챙겼다. 따로 교통편이 없어 간신히 스님들이 탄 차 뒤쪽에 매달려 갔다. 중간절과 아랫절을 거쳐 총림을 완전히 벗어나 도로로 빠져 나왔다. 파옥선원에 입방한지 보름 만에 처음으로 밖으로 나와 본다.

도착하여 보니 같은 건물에서 보았던 거의 모든 재가 요기들도 이미 이곳에 모여 있다. 집결지가 총림 밖의 커다란 파고다인 것이다. 먼저 신발을 벗고 파고다에 들어가니 많은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예배를 드리고 또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여 명의 우리나라 비구 스님들도 도착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동안 뵙지 못한 스님도 있다. 저쪽에서는 연세 드신 한국 비구 스님이 5~6명의 비구니 스님들에게 말씀을 해주고 계시는 모습이 보여 멀리서 사진을 한 장 찍고서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스님들은 대열을 정비하여 파고다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데 맨 선두에 한국 상좌부 스님이 위치해있다. 인사를 드리고 따라갔다. 모두 맨발이어서 나 또한 신발을 비닐로 싸서 가방에 넣었다가 마을에 도착해서는 다시 꺼내 신었다.

그런데 이번 탁발은 좀 다른 모습이다. 스님들이 직접 발우를 들지 않는다. 대신에 교복입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나 어른들이 행렬하는 스님들 옆에서 대오를 형성해 발우를 들고 같이 행렬한다. 이러한 탁발 모습은 처음 본다. 그러면 도로마다 길게 늘어 선 사람들이 쌀포대를 옆에 두고 다른 큰 통이나 그릇에 쌀을 부어 넣은 뒤 기다리고 있다. 탁발 행렬의 스님과 학생들 그리고 재가자가 자기 앞을 지나면 그들에게 한 주걱 또는 한 숟가락씩 쌀을 일일이 덜어준다. 이전에 보거나 듣지도 못한 굉장히 이채로운 행사 현장을 목격하였다.

왜 이러한 특별한 행사를 하는지는 얼마 뒤 바로 알게 되었다. 원래 율장에 의하면 출가 비구의 탁발 시 생쌀을 바로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율의 조항에서 탁발은 그날 바로 먹고 끝낼 수 있어야지 축적이 가능한 곡류는 금지되어 있다. 그렇기에 계율을 어기지 않고 탁발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스님들은 발우 없이 위의만 갖추고 그냥 지나가면 곁에 함께하는 재가자가 대신 지참한 발우에 쌀을 보시하는 방편을 쓰고 있는 것이다. 계율을 어기지 않으려는 고육책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이모작의 벼농사 첫 수확에 따라 일 년에 두 번 이 같은 행사를 펼친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보시 방법처럼 여겨진다.

쌀을 보니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 이름이 정반왕(淨飯王)으로 어원상 ‘좋은 쌀’을 의미한다는 것이 떠오른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대륙 북부는 현재에 쌀농사보다는 밀농사가 더 많고 주식이 쌀밥보다 밀가루 음식이다. 반대로 인도 남부나 동부는 쌀밥이 주식이다. 이로보아 부처님 시대의 석가국이나 미얀마가 모두 쌀이 주식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치점이 있다.

마을 골목 구석구석을 탁발의 장엄한 행렬이 계속 진행되었다. 스님들은 모두 맨발로 행진하였고, 마찬가지로 정인 재가자도 맨발로 스님을 대신한다. 스님의 발우로 쌀을 받아 발우가 가득 차면 중간 중간에 뒤 따르는 또 다른 수거하는 사람들에게 쌀을 전달한다. 길 군데군데에 큰 통과 자루에 쌀이 모아지면 계속해서 차로 실어 나른다.

어떤 이는 가족 전체가 맨발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합장을 한 채 이러한 행사에 참여한다. 어떤 집은 아들과 아버지가, 어떤 집은 어머니와 딸이, 또는 부부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한다. 쌀을 퍼 주는 보시는 주로 젊은 사람을 시키고 노인들은 합장하고 바닥에 앉아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사람이 공덕을 짓게 하려는 것 같다.

더 감동적인 것은 이곳에서는 항상 적은 보시에 감동한다. 많은 이들이 발우에 소소한 과자나 사탕 하나씩을 보시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또한 어디쯤의 도로 중간에 불구자이면서 거지가 앉아있는데, 이 행사에 참여한 한국 스님들은 받은 쌀을 거지에게 다시 나누어주기도 한다. 한국 스님들은 재가자가 부족해서인지 직접 가지고 온 발우로 생쌀을 받았다. 원래 계율 상에는 어긋나지만 같이 참여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절과 마을이 어우러진 완전한 축제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이왕에 이처럼 보시할 것이면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들이 수고롭지 않게 바로 쌀을 모아 가마니채로 절에 배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여기서는 특정한 개인 개인의 스님에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공덕을 짓는 것으로 신앙적으로 더 만족감을 갖는다. 나아가 업보나 인과설에 더 적합한 보시 방법인 것이다.

덕분에 동네 구석구석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은 한가롭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길고 긴 그리고 장엄한 탁발행사가 끝나고 다시 한 곳에 집결하여 차례차례 탑승하여 사찰로 돌아왔다.
모두가 행복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참관하는 사람도 모두 행복했다. 일종의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외국인과 미얀마사람들 모두 하나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기뻐하며 가끔 웃음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마침 10여 명의 한국 스님들이 차를 기다리며 모여 있다.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결같이 모두 이곳 생활에 만족했다. 어떤 스님은 4년이 넘게 이곳에 머물렀다.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다. 나 또한 이와 같다고 뜻을 모았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면서 스님들께 한국에서 이렇게 마을에 내려와 탁발을 해보셨는가를 물으니, 여기서가 처음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종단적 차원에서 부활하면 어떻겠느냐 말을 해보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으로 보아 여러 가지로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내내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탁발행사를 복원하거나 부활해 보는 방안을. 그래서 적어도 집단적으로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큰 절은 사하촌 가게들을 시작으로 주변 마을별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도회지 등에서는 지역사암 연합회에서 아파트 단지별로 또는 동이나 구별로 시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때 사적 또는 개인 탁발은 기존처럼 금하고 집단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인 탁발방식이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해 본다.

마찬가지로 축적 가능한 현금은 받지 않고 그날 그날 소비할 수 있는 생필품과 조리된 밥만을 받는 것으로. 원래 탁발 정신에 따라 남은 음식물(밥, 떡, 빵, 과자, 사탕 등)을 모아 서울의 경우, 서울역 광장이나 시청 앞 광장 등에서 장엄한 무차대회의 장을 열어 본다면 하는 상상을. 나아가 노숙자나 거지 등과 함께 나누어 시식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 대도시에서는 여기저기서 남아도는 음식이 많아 음식이 처치 곤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하루 세끼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음식물을 모아 한편에서는 스님들이 줄 맞추어 발우공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반인들 또한 배급 받아 대중공양하는 무차의 밥회가 법회로 이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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