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 선지식서 무상함 깨닫다
선원의 백골관·부정관 수행 위해
선지식 “입적 후 시신 기증” 유훈
해부도 보는 수행자들 자주 만나

1500 수행자 운집한 대보시법회
신도들 보시 올리며 공덕을 쌓아

빠옥선원에 주석했던 선지식의 유해. 선지식은 수행자들의 백골관 수행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장하지 않게 하고 보시했다.

오늘은 빠옥선원에 도착한지 16번째 날(2012년 2월 6일)이다. 아침 참선을 마치고 긴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아침 6시, 사방은 어둑어둑한데 계단 아래 구석의 맨 바닥에 두 여성 불자가 쪼그려 앉아 합장하고 있다.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는 스님들에게 공경을 표하려는 것이다. 빠옥총림은 마을에서 먼 산 중턱에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올라 온 것이다.

스님들의 개인처소가 모여 있는 꾸띠 사이로 지나가니 한 스님이 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안다. 스님께 다가가 찻잔을 두 손으로 받들어 드렸다. 이전에 이러한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곳 스님들은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아침 첫 차를 공양함에도 재가자의 보시 형식으로 취한다.

오늘 앞방 한국 스님 두 명이 이곳을 떠났다. 찾아가 환송 인사를 했다. 이후 남은 다른 한국스님 한 명이 내 방에 찾아왔다.

화제는 이곳 수행과 한국불교의 미래였다. 세계 여러 곳을 탐방해 보셨다는 스님은 세계에서 수행에 관해 가장 열의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다. 스님에 의하면 미얀마만 하더라도 수행처를 찾는 한국인의 수는 매년 2만이 넘는다고 한다. 수행처에 오려면 ‘위빠사나 비자’를 미얀마 대사관에서 승인 받아와야 하기에 통계를 잡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나 특정기관에서 왜 한국인이 미얀마에 많이 가는지를 알아보려 파악한 것이라고 한다.

중간에 내 방을 찾아온 또 다른 한국 요기가 이를 듣다가 “스님, 한국불교 희망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스님은 담담하게 “희망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순수하게 대승불교로 발전하여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좌부 불교와의 접촉 속에서 새로운 불교 흐름이 정착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스님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초기경전에 아함경을 어른 스님이나 사찰 교육 제도에서 배제하였는데, 요즘은 꼭 보아야하는 것으로 인식이 전환됐고, 다시 10년 후면 그동안 외국이나 국내에서 상좌부의 새로운 수행법과 교학체계로 공부한 사람들로 한국불교는 분명히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스님의 이 같은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 또한 불교에 입문한 후 10년 전과 20년 전의 우리나라 불교 상황과 변화를 잘 보면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시내 사찰 부설 불교대학 등에서 만나는 재가자들 또한 불교 인식의 폭과 질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즉 초기불교와 위빠사나를 공부하려는 열의가 느껴진다. 이러한 추세로 나아간다면 10년 후이면 한국불교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오후 1시 수행 점검을 해주는 레와따 스님의 개인 처소를 찾아 위빠사나 수행과 선정 그리고 사마타에 관한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해 온 질문을 순서에 따라 하나씩 풀어냈다. 스님은 묻는 사람이 이해를 빨리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잘 답변해줬다. 무엇보다도 실제 수행과 경론의 근거를 넘나들며 설명해 주시는 것이 마음에 든다. 시간을 많이 주시는 것에 미안함을 전하자 스님은 3일 뒤인 2월 9일에 다시 한 번 시간을 내주겠다고 한다.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7번째 날(2012년 2월 7일)이다. 그리고 마하시부터 미얀마 수행처에 머문지 56번째 날이면서 ‘대보시회 법회(Mahdna)’의 날이다. 새벽 좌선 전에 선실 주변에 모여 참회하는 스님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새벽 좌선이 끝나는 6시 쯤 스위스 요기가 오늘 떠난다고 나에게 좌구를 넘겨주었다. 기념사진 몇 장을 같이 찍었다

아침 공양 후 ‘대보시 법회’를 위해 스님들과 함께 아랫절로 내려갔다. 파옥선원의 각 분원 스님들까지 약 1500명 이상의 스님들이 한 곳에 집결했다. 남녀노소 재가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스님들이 줄을 맞춰 위의를 갖추고 장엄하게 입장하였다.

이곳 전각 이름은 ‘자애가 머무는 집(Mettavihari Meditation Hall)’으로 규모는 대단하다. 1층에는 주로 사미니와 스님들이 그리고 2층에는 법랍 높은 비구 스님들이 입구 쪽을 향해 앉아있었다. 앞과 옆으로는 사미니와 남녀 재가자가 질서정연하게 줄 맞추어 앉아있는 모습이 족히 2000여명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예불이 진행되자 모두 따라서 낭송한다. 그리고 젊은 스님들부터 차례차례 줄을 맞추어 나온다. 밖에는 스님들께 보시할 긴 공양대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족히 400~500m 정도의 길이에 자신들이 준비해 온 공양물을 스님들께 올리는 것이다. 여기서도 스님이 발우로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재가자(정인)를 대동하여 받는다. 정인은 희고 큰 자루로 보시물을 받으면서 지나간다. 보시물 가운데는 모기를 죽이지 않고 생포하여 밖으로 방생하는 모기채를 비롯하여 담요, 하이타이, 비누, 약품류 등이다. 커피 믹스 한 봉지를 보시하고 쌀도 한 숟갈, 한 주걱 보시한다.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의 공양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시켜 보시한다. 미얀마 재가자들도 많이 모였지만 특히 멀리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지의 중국계 신도들이 많이 왔다. 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외국 제품들을 아낌없이 보시하고 있다. 물론 돈이나 값비싼 물건은 제외다.

스님들에 이어 이곳의 선방에 머물며 수행하는 재가 요기도 보시물을 받는 순서가 되었다. 부담을 느껴 참가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 아랫절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 온 김에 꼭 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빠옥 총림이지만 거리도 거리이지만 윗절의 하루 일정 때문에 이곳 아랫절까지 내려 올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사무실 근처, 어딘가에 이곳 선원에서 수행한 선지식이 입적 후 화장하지 말고 자신의 시신을 백골관 수행하는데 쓸 수 있도록 유훈을 남겨 전시해 놓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골을 철사로 연결하여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물어물어 드디어 유리관에 모셔진 선지식의 유골 전시관을 찾았다. 자세히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유골이 풍화하여 바닥에 흰 뼛가루와 작은 알갱이들이 떨어져 흩어져 있다. 이곳 선원은 부처님 말씀에 따라 백골관과 부정관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유골도 전시되어 있고, 선원 주변에는 두개골 해골도 보인다.

선원 안에는 그림으로 사람이 죽으면 부패하여 풍화되어가는 단계를 사진으로 전시해놓거나, 인체의 32부분에 대한 해체적인 분석도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나 볼만한 인체에 관한 도상들이 선원 도서관 책상위에도 많이 쌓여있고 스님들이 보고 있는 모습을 왕왕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보니 우리나라 수행처나 사찰에서도 이 같은 시설을 좀 더 실감나게 전시한다면 공부 효과가 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은 또한 스님들의 포살일이다. 오후 4시부터 상좌부 스님들만 참여한 포살 행사를 갖는 다. 반면에 대승불교 스님들은 열외이다. 그 시간에 선원 가까이 산등성이에 올라 저녁 노을과 보름달을 보았다.

마침 이곳에 오래 전부터 와서 수행하다 다시 이번 기회에 두 달 넘게 머물고 있는 거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을 인터넷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미얀마를 내왕하면서 단기출가도 한 적이 있고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와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다. 선방에서 그 거사와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좌선을 한다. 곁에서 보니 공부를 매우 진지하게 하였고, 매일 일찍 선방에 들어오고 늦게까지 앉아 있다. 공양 때는 음식을 앞에 두고 모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눈을 감은 채 오랜 시간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이 거사를 보니 한국 스님들이 모인 가운데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의 수행법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못해 결국 밖으로 찾아 나오게 된다고. 근기와 성향의 차이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간화선만을 고집하는 것이 결국 한국불교인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차원이 다른 수행법을 접해보고자 하는 구도심일 수도 있으나 내가 만나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가인이든 재가자이든, 이러한 문제를 깊이 절감하고 있었다. 불교 수행법을 통해 ‘지금 여기서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여러 곳에서 강조하셨다. 빠알리어로 ‘Dhammadtthe Sukha Viharati’로 한문으로는 ‘현법락주(現法樂住)’로 번역되었다. ‘Dhammadtthe’ 즉 현법이란 ‘현재 지금 이 곳’을 의미하고 ‘Sukha’의 낙은 행복을 의미한다.

특히 부처님은 선정을 ‘현법락주의 길’이라고 하셨고,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모두 선정을 편안하고 기쁨을 주는 실천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것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공부법이 불만족스럽고 고통으로 이해되고 있다면 문제는 문제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몇 달 그리고 몇 년을 의단의 의심으로, 대분심의 대분발심을 강조하면 사람의 근기와 성향 그리고, 상황과 경우에 따라서는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전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지금 여기’서 가능해야 미래도 보장된다고 했다. 대보시회 행사를 마치고 윗절로 돌아오는 길에서 한국 상좌부 스님들을 만났는데, 공부를 잘 해서인지 순수하고 투명하게 느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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