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보시 ‘여법’… 이상적 수행공동체

20세 맞아 비구계 받는 사미승
가족들 축하… 스님들에게 보시
빠옥 총림선 금전 보시 안 받아
돈, 재가 위탁해 사중서 사용해
같이 탁발·수행하는 이상 공동체

구족계를 받은 비구의 가족들이 사중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모습. 절대로 금전을 보지 않는다. 돈은 재가자에게 위탁하고 사중에서 사용한다.

오늘은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2번째 날(2012년 2월 2일)이다. 같은 방을 쓰는 요기가 새벽 기상시간을 알리는 긴 목어소리가 나기 전에 조용히 나가는 것까지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후 목어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시 깊은 잠에 떨어졌다. 간신히 옆방 요기들의 채비하는 움직임이 느껴져 일어나 물세수를 마치고 선방에 올랐다.

간밤 〈청정도론〉을 보며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를 점검하면서 도표를 몇 개 그려보며 잠들었다. 같은 방의 젊은 요기는 불 켜고 잠시 기록하는 나를 두고 잠이 바로 든다. 그리고 새벽 3시 30분 이전에 조용히 일어나 선방에 올라 좌선에 열중한다. 선정으로 힘을 얻은 사람이 분명하다. 곁에서 보니 밥은 하루 두 끼이지만 많이 먹지도 않는다.

새벽 좌선의 딱딱한 코코넛 좌복이지만 이제는 편해졌다.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아침 7시 경에 중간 절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늘 이곳에서 비구계 수계식이 있기 때문이다. 마하시 선원처럼 직접 처음부터 참관해 보려고 바쁘게 걸어내려 갔다. 이미 사미의 가족이 도착해있다. 오늘 비구계를 받는 사미는 이곳 종무소에서 봉사해서 가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모습과 행동거지도 준수하며 특히 다른 스님들에 비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오다가다 또는 세면실에서 빨래하다 만나면 자신의 수계식에 대해 말한다. 오늘이 정확히 20세가 되는 날이라고 10일 전부터 비구계를 받는 의식을 무척이나 기다리는 눈치였다.

마하시 선원과 같이 계단에서 비구계 수계의식은 진행되었다. 3사7증이지만 더 많은 스님들이 참석하였고 빠알리 독송이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의식이 끝나자 참관하였던 부모와 남동생, 여동생이 준비해 온 보시물을 스님들께 올렸다. 여기는 자식이나 친척이 출가하면 집안의 경사로 모두 모여 축하한다. 거리가 먼 경우는 미리 와서 절에서 하룻밤을 자고 참석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출가 문화와 비교되는 점이어서 생각되어지는 바가 많았다.

가족들은 준비해 온 보시물을 탁자를 펼치고 준비하였다. 작은 하이타이 1봉지, 나프탈렌 1봉지, 칫솔 1개, (한국 드라마 사진 표지의)노트 1권, 음료수 1병, 화장지 1개, 발우 닦는 수세미 1개, 향, 초, 비타민제 하나씩이 전부였다. 먼저 오늘 비구계 받은 친족 비구부터 큰 비닐봉지를 들고 지나가면 가족이 맨발에 줄을 서서 하나씩 넣어드린다.

다른 사찰에서는 돈으로 보시하기도 하지만 빠옥총림은 금전 보시를 철저하게 금한다. 다만 이렇게 생필품만을 보시하고 돈은 사찰 관리하는 재가자에 위탁형식으로 보관하게 하여 사중이 사용하도록 한다. 가족과 스님들이 비구계 수계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기념사진을 찍는데 나도 역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 계를 받은 스님은 멀리서 왔다는 부모와 남동생, 여동생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것 같은데 다른 스님들과 함께 바루를 메고 사뿐사뿐 윗절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본다.  반대로 나는 아랫절 사무실로 향했다. 정인에게 돈을 좀 맡기고 필요한 것을 주문할 작정이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공양청에 정인이 와서 요기들의 주문을 받아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준다. 그런데 나는 누가 정인인지 얼굴도 모른다. 그래서 직접 가서 돈을 맡기고 보시할 꿀 7병을 주문하는데 한 개당 1900ks라 한다. 지갑에 충분한 돈이 있었지만 아직도 이곳 돈 개념이 애매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여 내일 갖다 주기로 했다.

정인은 다른 미얀마 여성보다는 세련된 영어에 세련된 표정과 언어를 구사하였다. 노트도 한 권 구매 신청하였더니 노트는 있는 것 그냥 보시하겠다고 3권을 가져다준다. 꿀 7병도 바로 주려한다. 돈을 내일 받겠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믿겠냐”하니 주려던 꿀을 곧바로 다시 챙긴다. 내일 가지고 올라가 주겠다고 한다. 꿀은 이곳에서 출가하여 오후 불식하는 한국 스님들께 보시할 목적이다. 보시용으로 알아서인지 일처리에서 무한 신뢰를 보는 것 같아 훈훈한 생각이 인다.

점심 공양의 마지막에 연세가 들고 가난하게 보이는 노보살님이 조그마한 하이타이 하나씩을 비닐에 넣어 스님들께 보시하고 재가 수행자에게도 보시한다. 멀리 마을에서 챙겨 들고 이곳까지 올라오셨을 것이다. 무작정 받아와서 보니 하이타이이다. 옆에서 밥 먹는 요기는 없다. 왜 받아오지 않았느냐고 하니 가난한 노인의 보시라서 차마 받을 수 없어 그냥 왔다는 것이다. 밥을 다 먹고 잠시 그릇을 두고서 다시 가서보니 그 노인은 땅바닥에 앉아서 공양을 들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손으로 합장하고 하이타이를 이마에 대고 고맙다는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내밀면서 ‘많다(many)’라는 한 단어만 쓸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전해준다. 사실 별로 빨래할 일이 거의 없어 양곤에서 사온 하이타이와 빨래비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돌려드리고 오면서도 혹시라도 보시자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없는 살림에 자기 또는 자기 가족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 신심으로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 가운데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숭고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마음으로나마 보시자가 행복한 길에 들어서기를 염원할 뿐이다.

식기를 씻고 돌아가려는데 한국 젊은 스님이 보인다. 잠시 인사를 하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게 보이는 미얀마의 한 스님이 가위를 들고 나를 흠칫 보시더니 다른 곳으로 가셨다가 다시 와서는 나에게 가위를 건너 준다. 즉각적으로 무언가 해드려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따라가 보았다. 밖의 나무가 있는 곳으로 따라 나가 나뭇가지 3개를 절지했다. 원래 출가 스님이 바로 나무를 절지하는 것은 계율에 어긋난다. 이 스님은 불단의 화병을 장엄하는 소임을 맡아서 마침 재가지를 찾다가 나를 적임자로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스님 덕분에 바로 계율 공부를 현장에서 할 수 있어 기뻤다.

한국 젊은 스님과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 문제에 대해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스님의 반복적인 지론은 사성제와 팔정도 외에는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떠한 교리적 해석도 각자 나름의 생각과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큰 스님의 설법과 주장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마 선채로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였다. 나오다 보니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큰 기둥 뒤에서 한 스님이 좌복을 깔고 입정에 든 모습이 보인다.

머리를 감지 않은 지가 이틀이 넘어 머리만 감으려다 샤워까지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랑개구리가 드높은 벽에 설치된 수도꼭지 안에서 벌거벗고 목욕하는 나의 모습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어제 노랑개구리를 잡아 방생시키려던 한국 젊은 요기를 만났는데 아마 이곳이 제집일 거라는 내 이야기에 다시 되돌려 놓은 듯하다.

목욕탕에 따로 옷 거는 것이 없다. 그래서 양곤에서 사온 옷걸이를 목욕탕 출입문에 설치해 두었다. 양곤에서부터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몇 개씩 나누어주었는데 이번에 가장 잘 쓴 것 같다. 앞으로 수행자들이 샤워할 때 옷을 제대로 걸어놓고 목욕할 수 있게 되었다. 저녁 좌선 후 돌아와 물통에 담근 빨래를 몇 번 비벼 헹구었다.

빠옥 선원에 도착한지 13번째 날(2012년 2월3일)이다. 오랜만에 비누로 얼굴을 씻고 머리도 제대로 다듬은 후 선방에 올랐다. 예불문을 빠알리 그대로 독송해 본다. 아침 좌선은 시간이 잘 간다. 다른 사람보다도 늦게 20분가량 더 앉아있다 천천히 내려왔다. 아침 공양을 천천히 들고 일어나 거처로 돌아오는 데 노란 큰 뱀이 길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예기치 않는 발견에 흠칫 놀랐다. 바로 한 발자국 앞에서 여유있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시선을 멀리두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습관이 생겨 한두 발자국 앞밖에 보지 못함을 알았다. 아마 시선을 멀리 둠으로써 시야가 넓어져 많은 사물들이 포착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일 것이다. 여기 뱀들은 전번에도 보았지만 아주 느릿느릿 움직인다. 우리나라 뱀들은 아주 빨리 쏜살같이 움직이는데. 뱀들도 참선을 하는가! 좌선하는 선방 영향을 받았나보다 생각해 본다.

간밤에 하이타이에 담가놓은 빨래를 통째로 몇 번 비벼 행궈 빨래줄에 널었다. 아침 9시 30분에 벌꿀을 사기위해 가야하는데 30분 늦어 바쁘게 갔다. 10시에 도착했는데도 7개를 미리 준비해 와서 앉아 기다리고 있다. 중간에 같은 방 요기와 쉐오민 수행센터에서 온 여성 요기를 만났다. 꿀을 방에 옮겨놓고 ‘날씨가 차츰 따뜻해져간다’고 생각해본다. 자연히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가끔 머리로 나마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해 보지만 이제는 예전과 같이 그러한 꿈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대신 이상적인 수행공동체를 자주 계획 해본다. 많은 점에서 이곳 파옥 수행공동체는 내가 생각해오던 이상적인 수행공동체에 부합된다.

수행하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디에서도 큰 소리 나지 않고 싸우는 모습도 볼 수 없다. 강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질서 있게 돌아간다. 그저 평화롭고 원활하게 운영된다.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만나면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과오가 있었다면 용서를 비는 참회를 한다. 출가자나 재가자, 내국인과 외국인 등 너와 나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어우러져 서로 조심하고 존경을 표한다. 밥도 같은 탁발대에서 한 솥밥을 먹고, 같이 좌선을 하고 같이 거닌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은 알아서 잘 처리한다. 오후 좌선이 끝나면 소임에 따라 스님들은 주어진 구역을 쓸고 닦고 개인 처소를 정리 정돈한다. 유럽인이든 아시아인이든 미얀마인이든 재가 수행자들도 긴 목어소리가 들리면 시간에 맞추어 자기 수행을 열심히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개개의 분위기를 잘 잡아나가는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연구 대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세속의 경제논리에 따르지 않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수행처에서 가르침과 관련하여 돈 거래를 최소화하고 있다. 물론 얼마동안을 여기서 머무는 데도 돈을 받지 않지만 스님들에게도 돈으로 하는 보시는 없고 법당에도 불전함이나 보시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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