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0:52 (수)

현각 스님의 선심으로 만나는 세상 21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 아직 여기에 있는가

    선심에세이 강보에 싸여 나비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구나 그 시절이 있었건만 인간은 왜 누가 앗아가지 않은 그 편안함을 잃었을까. 우리가 정작 아쉽고 그리운 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진한 향수가 아닐까 한다. 거리에 있다 보면 분주히 걷고 있는 행인을 본다. 그들에게서 편안함이나 여유란 별반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에 홀린 듯 마냥 앞으로만 달려간다. 앞은 오직 서성거림이 주관하는 세계다. 앞은 경쟁이 치성한 세계이기도 하다. 반면에 뒤는 여유가 있고,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앞에만 길들여져 있고 그 좋은 뒤는 낯설고 패자의 세계라고 치부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항시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은 걸인의 동냥주머니 마냥 허기를 채우기가 힘

    현각 스님
    2012-01-18
  • 상호가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곧 잘 눈에 띄는 광고물을 발견하게 된다. 두 얼굴을 대조해 놓고 수술 전ㆍ수술 후라고 표기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실로 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판별하기 어려운 영 딴판의 얼굴이다. 수술 전 취약한 부분을 수술해 미인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내면 보다 외형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며칠 연휴가 낀다거나 방학이 되면 성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수술 자체를 후회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옛 모습으로는 복원이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 면접 때 외모를 많이 참작한다고도 한다. 그러다보니 입사시험을 치러야하는 젊은이들은 너 나 없이 성형외과를

    현각 스님
    2011-10-18
  • 자업자득

    며칠 전 소생하기 어렵다는 암 환자들의 인터뷰를 보았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하여 병원 문을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산으로 들어가 무거운 삶의 여장을 풀어 놓았다. 그리고 나무와 대화를 하고 연약한 초목과 속삭였으며 계곡의 물소리에 취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윤활유를 듬뿍 부어놓은 듯 한 하늘가에 덧없이 흘러가는 뭉게구름에서 건강했던 날의 추억이 구름 보다 몇 배나 빠르게 맴돌고 갔다. 철따라 갈아입는 산색은 다툼이 없다는 이치도 재차 확인했다. 아마 그들은 긍정의 철학을 자연에서 몸소 늦게나마 체득한 듯하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내고자 애쓰다 보면 육신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고 정신세계에도 균형을 잃기 마련이다. 몸속의 휴식 없는 세포는 자신의 위치를 잃고 방

    현각 스님
    2011-10-18
  • 오로봉(五老峰)

    전철을 이용하다 보면 일반석과 경로석으로 대별이 된다. 비단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해도 경로석은 빈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노인 인구의 증가에 연유하기도 할 것이다. 노인만이 아니라 장애인ㆍ임신부 자리까지 허용하다 보면 자리는 더욱 모자라기 쉽다. 그 자리에 표기된 영문을 보면 Senior men 이라고 쓰여 있다. 연세 든 분들이 노인이란 말을 꺼려 한 나머지 이렇게 붙인 것으로 안다. 노인의 늙을 로(老) 자는 늙었다는 뜻만이 아니라 어른을 높이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익숙하다’던가 ‘노련하다’는 뜻도 있으며 ‘신하의 우두머리’를 말하기도 한다. 노인이라는 말이 별반 어색하지 않은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권상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특징 있는 열

    현각 스님
    2011-10-18
  • 한 고추

    불현듯 옛일이 생각났다. 좌선 할 때 수인(手印)의 문제다. 좌선시에 오른손바닥 위에 왼손바닥을 놓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 놓으면 안되느냐고 한 노스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자상한 내용은 기대할 수 없었고 그냥 오른손 위에 왼손을 놓는다고 하니 궁금증만 더할 뿐이었다. 숱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해답은 연구를 거듭하는 동안 스스로 알게 되었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은 우선 인도와 중국문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인도인들은 오른손은 깨끗하다고 믿고 왼손은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른손은 밥을 먹는 수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왼손으로는 화장실에서 휴지 대용으로 쓴다. 오른 손가락 다섯 개로 접시에 놓인 밥을 카레와 섞어 주물러 반죽을 한다. 그

    현각 스님
    2011-10-18
  • 뗏목의 비유

    산을 오르다 보면 온갖 시름이 떨구어 진다. 마치 조락(凋落)의 나뭇잎과 흡사하다. 발 아래 낙엽은 절로 나고 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자신의 힘으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뚝 솟은 저 바위는 원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스어로 원자는 ‘분할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작은 입자가 에너지인 것이다. 바위에 초목이 뿌리를 내리고 삶을 영위하는 것도 에너지인 원자의 이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쪽의 원자가 저쪽으로 이동하는 찰나를 틈타 뿌리는 삶을 지탱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서울 하늘에 무지개가 뜨면 뉴스에 나올 정도이다. 그 무지개는 비구름 위로 떨어지는 태양 광선의 작용으로 형성되는데 우리가 만질 수는 없

    현각 스님
    2011-10-18
  • 일기일경

    교정에 제일 먼저 가을 소식을 알리는 전령이 있다. 운동장 축대를 타고 절지동물(節肢動物) 마냥 오르는 담쟁이 덩굴이다. 그들은 만유인력에 저항하며 위로 위로 올라간다. 이제 성장을 멈추고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에서 고요를 발견하게 된다. 발견이라는 단순한 단어는 형이하학적인 목표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세계까지 추구할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마치 어둠이 공포로만 다가오는 것쯤으로 알았던 사람이 어둠의 미덕이 안식과 평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희열 같은 신비로움이 아닐까. 어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밤을 지키는 귀뚜라미는 진정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주인공일 것이다. 이따금 그들과 벗을 하노라면 일에 능률이 배가 되고 밝음의 번잡함에 비해 더할 나위 없는 한가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무슨

    현각 스님
    2011-10-18
  • 화택

    잊을 만하면 화재가 일곤 한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의식주에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불을 이용하여 화식을 하게 되었고 불을 이용하여 극심한 추위를 극복할 수 있었다. 불은 인류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했다. 불은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문화 형태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인도에서 불의 신을 agni 라고 한다. ag에서 나온 말이다. ag 는 ‘꼬불꼬불 움직인다’ 던가 혹은 ‘바람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참 실감이 나는 풀이 이기도 하다. 불을 피워보면 불기운은 똑바로 오르지 않고 하늘거리며 불길이 오른다. 농부가 바람 없는 날을 택하여 논두렁 밭두렁을 태워도 불길만 닿으면 바람이 일어 생각 같이 불길이 가지 않는다. 마침내 실화(失火)로 뜻하지 않게 많은 재산과 인명을 잃기 까지 한다. 경전

    현각 스님
    2011-10-18
  • 선(禪)

    금년 여름은 장마가 끝났어도 폭염 대신 연일 비가 내리니 권태를 느낄 만도 하다. 이러다 보니 그 어린 시절의 여름밤이 그리워진다. 여름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머리 위에서 별들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광기가 넘쳐 값진 보석을 천상에 흩뿌려 놓았을까. 그 영롱하게 반짝이던 별빛을 보며 소년의 꿈은 영글어 갔다. 별은 그리운 얼굴들이 아니던가. 마치 연지(蓮池)에 핀 소담한 연꽃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직 수줍어 얼굴을 다 드러내지 않고 문설주에 기대어 모습을 반쯤만 드러낸 수줍은 소녀 마냥 보이기도 했다. 연기를 좋아한다는 모기를 쫓기 위하여 보리괴끼를 한 움큼 모깃불에 올려놓으면 주변은 연기로 뒤범벅이 되고 눈물이 찔끔찔끔 그칠 줄 모른다. 요사이 남산을 걷는 것을 건강 유지 비결쯤으로 생각하

    현각 스님
    2011-10-18
  • 풍성상주

    더위가 치성하면 못내 그리운 것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다. 합죽선 하나쯤 들고 다니면 더위가 해결되던 시절도 있었건만 요즘은 그걸로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손에는 얼음이 담긴 컵을 들고 주변엔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현대인에게 뭔가 감내(堪耐)한다는 것은 타인의 일이다. 어디 덥고 추운 것뿐이랴. 온갖 감정들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백색 천에는 한동안 어떠한 영상물도 보이지 않는다. 한참 지나야 영화가 상영된다. 그 내용에는 사랑과 질투, 용기와 비굴, 좌절과 승리 등 다양한 내용이 마음을 감동시켜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만약에 관객이 영화의 내용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을 한다면 퍽이나 불편할 일이다. 영화가 끝나면 조금 전의 상황은 모두 지워지고 백색의 천만

    현각 스님
    2011-10-18
  • 정진력

    인류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날씨 이야기 이다. 아무리 낯선 자리라 해도 서로 가장 편한 대화가 날씨이기 때문이다. 웬 폭우가 전국을 강타한단 말인가. 만약 비가 시나브로 내렸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쉼 없이 거푸거푸 내린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낳았다. 우리말에 ‘낙숫물이 섬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다. 일을 함에 중단 없이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그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정진의 위대함을 역설한 것이라고 본다. 레크레이션은 단순히 오락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단어의 구성으로 보아 재창조 라는 뜻이다. 이미 세상에 나왔거나 이룩된 것을 유용하고 이익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레크레이션이 의도하는 바 일 것이다. 또 rebirth를 보자. 재생이나 환생이란 말이다.

    현각 스님
    2011-10-18
  • 자기성찰

    제주도를 섬의 특성상 삼다도(三多島)라고도 한다. 돌과 바람 그리고 해녀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서(島嶼)란 크고 작은 섬을 이르는 말이다. 도는 큰 섬 도이고, 서는 작은 섬 서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많은 제주 사람들은 바람의 재해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 하나가 강담을 쌓는 일이었다. 흙을 쓰지 않고 돌로만 담을 쌓는 것이었다. 그렇게 담을 쌓는다는 것이 얼핏 생각하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강담은 견고성에서 부실하기 그지없다고도 생각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큼지막한 구멍이 난 담을 쌓기 때문이다. 누대의 선조들은 견고하게 쌓겠다고 흙을 넣어 다지며 구멍이 나지 않게 쌓았겠으나 생각과는 달리 정성이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무너지고 또 무너지기를 거듭한 나머지

    현각 스님
    2011-10-18
  •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지쳤다

    여름 휴가철이다. 주변에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 계획이 어찌 어찌 하다고도 하고, 아니면 휴가 다녀왔느냐는 말이 일상 쓰는 인사말이 되었다.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하기에 휴식을 취하러 저리 많이 해변에 모일까. 저 군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과는 동떨어진 세상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휴식 없이 정진만 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육체의 피로와 정신의 피로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이다. 휴식 없이는 성과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생 앉아서 쓰고 읽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앉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 어렵다.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의 경우 첫째 관문이 앉는 것이라고 한다. 육신을 조복 받는 앉는 일에 실패하면 지구력 있게 책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되면 그의 청운의 꿈도 물거품에

    현각 스님
    2011-10-18
  • 세 가지 병

    속살을 드러낸 목화송이 마냥 새하얀 뭉게구름을 본다. 교정의 유리벽에 반사되는 구름을 관찰하는 여유로움은 사색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높은 벽에 앉아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휴식이란 저런걸까 생각하게도 한다. 몹시 더운 삼복에 시원한 산들바람이 초록의 잎을 나부낄 때 형체 없는 것의 위대함을 느끼곤 한다. 쉼 없이 솟아나는 옹달샘에서 갈증을 해소 했을 때의 물맛이란 어느 산해진미에 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육신의 눈과 귀와 입으로 느끼는 경험은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원천이 되기 마련이다. 에머슨(R. W. Emerson)은 말했다. “건강한 하루를 달라. 그러면 어떤 제왕의 영광도 일소(一笑)에 부치리라.” 아마 그는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 병(病)이란 무

    현각 스님
    2011-10-18
  • 의발

    절기 때문일까. 아니다. 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시선을 머물만한 곳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한 때는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무릎 위 몇 센티미터까지 허용한다고 규정하기도 했지만 그 규정은 유야무야 사라지고 말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쓰는 말로 ‘하체가 부실하다’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생소한 말이라서 무슨 말 뜻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바지의 길이가 초미니로 짧아진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러한 현실을 기성세대가 꼭 탓할 일 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세상은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 마련이다. 의상문화의 트렌드 쯤으로 표현한다면 적적할 듯하다. 부처님의 상수 제자인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두타행(頭陀行)에 전념 하였다. 바라문 출신인 그는

    현각 스님
    2011-10-18
  • 행운유수

    구름과 안개가 자주 대지를 감싼다. 떠가는 구름은 고정된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높은 봉우리를 만나면 감돌아 가고 평원을 만나면 온갖 자태를 드러내며 흘러간다. 문수봉과 보현봉을 안고도는 구름은 봉을 안았다가 봉 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묻어버리기도 하는 묘용이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만의 오묘함이 아닐까 한다. 일순간도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 구름에서 소멸의 이치를 배운다. 악지가 세 누군가가 체벌을 가하여 순치시켜 놓은 것도 아니련만 저리도 유유자적 할 수 있단 말인가. 태양에 이르고자 하여 날개를 만들었다는 이카루스의 신화는 인류가 추구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구름은 날개도 없이 허공에 온갖 모양을 드러내어 인간의 가지가지 상념을 속속들이 파헤쳐 놓고 몽당붓 한 자루 없이 천태만상을 그려내고

    현각 스님
    2011-10-18
  • 종강시간이 되었다. 이 무렵이 되면 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얼마만한 편달이 있었는지. 편달과 편복(鞭?)은 동의어이다. 채찍 편(鞭) 자는 사람을 지도하는 회초리를 뜻하고, 매질할 달(撻) 자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때린다는 말이다. 칠 복(?) 자 또한 종아리채로 때린다는 뜻이다. 이번 강좌에 죽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수가 열심히 정진하였으나 개중에는 앉으면 이내 방아 찧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죽비선물이 가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귀는 귀하게 여기고 의식은 천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 졸다가도 방선 죽비소리는 영롱하게 알아듣고 자세를 푼다. 약산유엄 선사가 이고에게 “어찌 귀는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는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장마를 대비하여 농

    현각 스님
    2011-10-18
  • 살았느냐

    독서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에게 아주 작은 도움도 주지 못할 정도로 쓸모없는 책은 세상에 한 권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소중한 책을 읽다 보면 중요한 부분이 그냥 묻히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에 기를 쓰고 적바림을 해 둔다. 나중에 참고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못 미치면 행간에 밑줄이 그어지고 여러 형태의 표식도 한다. 재벌질의 경우엔 옆잡이가 첨가돼야 후일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고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일생 하늘을 이고 다니면서도 하늘의 높이를 모르고, 땅을 밟고 다니면서도 땅의 깊이를 모른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말을 무색하게 한 자연과학자가 있다. “하늘은 얼마나 높을까”라고 천문학자 이석영은 명제를 던지고 있다. 하늘의 높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구름

    현각 스님
    2011-10-18
  • 문자를 쓰지 않는다

    책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으면 그 다양함은 한 형태의 모습일 뿐 우리에게 의미를 전하지는 못한다. 책은 마침내 독자가 펼치는 순간 정형(定形)에서 부정형(不定形)으로 탈바꿈 하게 된다. 정형 보다 부정형 하면 불안정한 상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정형 보다 훨씬 값진 모양이 부정형이다. 생각을 깊이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고정된 것은 부패하기 쉽고 곧 퇴보해버리거나 망가지기 일 수 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의 속성은 아주 다르다.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 모습인가 하면 어느새 변하여 저 모습이 되기도 한다. 책 또한 독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지만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의 뇌와 눈의 작용은 활발해지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기도 하고 환희가 넘쳐나기도 하며 깊

    현각 스님
    2011-10-18
  • 소의 자취를 발견하다.

    어느 과학자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방 안에 소파, 조명, 책상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마련해 두었다. 사람은 앞에 시설물이 모두 보였다. 그런데 같은 방이지만 개에게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과 소파는 보여도 책상과 조명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의 입장이 되면 조명과 음식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각각의 주체에 따라 의미가 있는 것만 존재한다는 것이 환(環)세계의 개념이라고 한다. 사람은 방에 놓인 모든 사물이 다 보였다고 하니 개나 파리의 경지에서 보면 뛰어난 영물임에 틀림없다. ‘본다’라고 할 경우 단순히 보이는 대상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육안으로 헤아려 보기에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 보이는 것은 눈의

    현각 스님
    2011-10-18
  •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