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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미의 심심톡톡] 마음은 뇌를 바꾼다
“야! 가만히 있어!” 소희(가명) 씨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았고, 아이는 주춤하다 엄마의 얼굴을 흘긋 올려다봤다. 태균(10살·가명)이는 엄마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주먹을 쥐고서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와 엄마를 간신히 분리하고 다른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잠시 쉬고 있어”란 말에 아이는 씩씩거리며 의자와 책상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이의 진단명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ADHD)’.
하성미 기자11-14 10:34 -
[하성미의 심심톡톡] 침묵의 방관자, 학교폭력의 또 다른 이름
학교폭력의 장면에서 가장 많지만 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방관자다. 직접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가해와 분리하지만 침묵은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조건이 된다. 단톡방의 조롱, 복도 끝의 밀침, 교실 안의 은근한 따돌림 옆에는 늘 ‘보고도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1964년 3월, 뉴욕 퀸스의 한 골목길에서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가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언론은 “38명의 목격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녀의 죽음은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
하성미 기자10-31 10:10 -
[하성미의 심심톡톡] 학교는 법정 아닌 치유 도량이어야
6학년 때부터 이어진 폭력이 중학교에 와서야 터졌다. 네 명의 여학생이 한 아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했던 아이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난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아.”결국 지역 교육청에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다. 회의 자리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왜 이렇게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을…”이라고 말했다.사과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에는 사과를 두려워하는 부모의 그림자가 있었다. 가해 아이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나쁜 아이’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사과 대
하성미 기자10-17 15:43 -
[하성미의 심심톡톡] 차별하는 마음이 폭력의 씨앗
“베트콩, 미안해.” 당진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피해 학생이 들은 사과는 비아냥뿐이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냄새가 난다”, “얼굴이 왜 그렇게 생겼냐”는 조롱을 당했고, 삽에 머리를 맞는 신체적 폭력까지 겪었다. 피해 학생은 “휘두르지 말라고 했지만, 제 주변에서 더 휘둘렀고 그러다 맞았다”고 말했다. 작은 차별심이 경멸로, 경멸이 결국 폭력으로 번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 사건이다.학교폭력은 흔히 순간적인 분노나 충동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그 뿌리를 들여다 보면, 폭력의 핵심에는 ‘경멸’이라는 태도가
하성미 기자09-26 11:31 -
[하성미의 심심톡톡] 부모가 세워야 할 든든한 울타리
“이번 일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알았어요.”상담실을 찾은 중학교 2학년 희정(가명)의 말이다. 그는 1년 동안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불안 증상으로 자해까지 했던 아이다. 무리 학생들은 희정이의 태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집요하게 지적하며 고치라고 압박했다. “제발 멈춰 달라”는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말을 따르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겠다는 은근한 위협이 이어졌다.자해를 통해 상황이 알려지자 교사는 가해 무리와 희정을 분리했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학년과 반이 바뀌면서 상황은 다시 반복됐다. 가해 학생들은
하성미 기자09-12 10:10 -
[하성미의 심심톡톡] 피해 아동에 “잘못 없다”는 확신 줘야
학교 폭력은 언제나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까지 웃음 많고 인기 있던 아이가 오늘은 가해자로 불리고, 조용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가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돼 홀로 고통 속에 빠진다. 교실 안에서는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순식간에 바뀌며 그 속에서 아이들은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피해 아동의 자리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초등학교 5학년 한 여자아이는 친구들에게서 “넌 왜 그렇게 행동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무도 말을
하성미 기자08-29 10:04 -
[하성미의 심심톡톡] 바꾸려는 마음 내려놓을 때 대화 열린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상담실에 앉아 있던 한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아내의 말을 끊었다. 아내는 그 순간 고개를 떨구었다. 내용은 집안일과 아이 문제였지만, 말속에 숨은 의도는 분명했다.“네가 변해야 한다.”대화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우리가 충고, 조언, 평가를 하는 순간, 그 안에는 “너는 틀렸고, 내가 옳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어도 상대는 그 의도를 먼저 감지한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방어 태세를 갖춘다. 집에서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말하는 순간, 설명을 들으려 하기보다 반박할 거리를 찾
하성미 기자08-15 09:34 -
[하성미의 심심톡톡] 사랑만으로는 부족해…대화를 배워야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상담실에서 미희(47·가명)는 울먹이며 말했다. 남편과 수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다툼이었고,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 서게 되었다.그녀는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관계를 바꿔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늘 ‘무반응’이었고, 바뀌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고 느꼈다고 했다.“제가 원하는 건 정말 간단한 거예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주고,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 주면 되는 건데…. 근데 그걸 안 해요. 그냥 저한테 문제가 있다는
하성미 기자07-25 10:32 -
[하성미의 심심톡톡] “완벽이라는 외줄 위 아이와 함께해 주세요”
완벽하지 않으면 자격 없는 존재처럼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겉으로는 자존감이 높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는 보이지 않는 잣대가 자리 잡고 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함이나 성적도 부족하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나는 결국 실패할 거야”란 불안이 자라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정말 실패하고 있는 걸까?실패라기보다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잣대는 너무 높고 완벽해서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다. 이들이 말하는 ‘성공’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다가가면
하성미 기자07-11 10:11 -
[하성미의 심심톡톡]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시무외자 부모
“선생님, 저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한 문장을 몇 번씩 되묻는 아이. 선생님의 고개 끄덕임과 “괜찮다”는 말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인다.이 아이는 조용하고 반듯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긴장이 감돌고 실수나 예고 없는 변화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불안이 높은 아이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늘 ‘혹시’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인다. 무언가 틀리면 관계가 깨질까 두렵고, 작은 실수조차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그럴 때 우리는 아이의 기질을 먼저
하성미 기자06-27 10:15 -
[하성미의 심심톡톡] 수치심 밀려올 때 아이는 밀치고 소리친다
자존감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니디를 다시 떠올려 보자. 똥치기를 하며,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 다니던 그.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어떤 관계도 꿈꾸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길 위에서 부처님과 마주쳤다. 그 만남 하나가 그의 삶 전체를 바꾸었다.부처님을 만나 놀란 니디는 허둥대다 손에 들고 있던 똥통을 기울였고, 악취 나는 똥물이 부처님의 옷에 튀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는 온몸이 굳고 숨이 막혔다. ‘나는 또 실수했어. 그것도 부처님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하성미 기자06-13 10:16 -
[하성미의 심심톡톡] 천천히 크는 마음에 햇살을
“요즘 아이가 자꾸 혼자 있으려 해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데, 말을 못 걸고 속상해하네요.”상담실을 찾은 어머니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말수가 적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지만,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컸다. 몇 번이나 용기 내어 친구에게 다가갔지만 아이들은 금세 다른 무리로 흩어졌고, 아이는 그때마다 위축돼 집에서 짜증을 내거나 울먹였다. 처음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던 어머니도 점점 움츠러드는 아이를 보며 불안해졌고, 결국 자신도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
하성미 기자05-30 10:54 -
[하성미의 심심톡톡] 내면에 숨은 ‘니디’를 만날 용기
2600년 전 인도의 어느 숲길. 한 남자가 다급히 몸을 숨겼다. 불가촉천민인 그의 이름은 ‘니디’. 평생을 똥 치우는 일을 하며 누구에게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얼굴을 찌푸렸고, 심지어 그의 존재 자체를 혐오했다.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숲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니디는 얼른 숲속으로 숨었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불편함이 될까 두려웠다.그 두려움은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런 모습이라 미안하다’, ‘나는 본래부터 누군가의
하성미 기자05-19 22:16 -
[하성미의 심심톡톡] 자녀에게 말해주자 “수틀리면 빠꾸!”
최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에서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대사 한마디가 있다.“수틀리면 빠꾸!”금명이의 아버지 관식이 건넨 이 말은 그저 사투리가 아니라 부모의 진한 사랑과 지지를 담아낸 말이다.“잘 안되면 돌아오라.” “네가 어떻게 되든, 나는 늘 네 편이다.”관식은 딸 금명에게 인생의 고비마다 이 말을 건넨다. 실패해도 괜찮고, 길을 잃어도 괜찮으며, 상처받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한마디는 금명이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심리적 안전지대였다.‘정서적 금수저
하성미 기자05-01 19:28 -
[하성미의 심심톡톡] 부처님이 바꾼 건 삶이 아니라 ‘존재 ’의 의미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는 힘이자 삶을 살아갈 이유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기반이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 사람은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고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해지고 무엇을 해도 부족하다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자존감은 그 자체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다.하지만 자존감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자녀에게 자존감은 부모의 시선과 말투, 기대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아이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부모의
하성미 기자04-11 10:44 -
[하성미의 심심톡톡] 분노 제대로 보고 표현해야 관계 개선
“많이 좋아졌어요.”근황을 묻자, 환하게 웃는 상희(가명) 씨의 얼굴이 봄꽃보다 밝게 느껴졌다. 그녀는 분노시리즈를 처음 적기 시작할 때 소개했던 내담자다. 당시 그녀는 집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컵을 던지며 악을 쓰고 나가라고 소리쳤고, 이후 깊은 자책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그녀는 몇 개월 동안의 상담 후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불안한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고, 말하는 표정에서도 부드러운 미소가 보였다.“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화가 날 때 잠시 멈출 수 있게 되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내 감정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하성미 기자03-31 19:30 -
[하성미의 심심톡톡]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지난해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최소 181명의 여성이 살해되었고, 374명이 살인미수의 피해를 입었다. 이는 ‘한국여성의전화’가 2024년 한 해 동안 언론 보도를 분석해 발표한 ‘2024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평균 이틀에 한 명꼴로 발생했으며, 피해여성의 자녀, 부모, 친구 등 주변인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최소 650여 명에 달한다. 특히 피해자의 17.5%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보호조치를 받은 상태였음에도
하성미 기자03-19 00:24 -
[하성미의 심심톡톡] 자기 가치, 타인 평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나를 왜 무시하는 거야?” “어쩌라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이런 말들을 자주 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피드백 혹은 충고를 하려해도 돌아올 분노가 두려워지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작은 충고를 건넸을 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사소한 지적에도 쉽게 분노하며,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분노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수치심 기반형 분노(shame-based anger)’, 즉 수치형 분노라 부른다.대학교
하성미 기자02-28 17:13 -
[하성미의 심심톡톡] 당신 모습 그대로가 ‘기적’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은정(가명·23세)이는 차갑게 말하며 자신을 쳐다보던 엄마의 서늘한 눈빛에 금방 기가 죽었다. 은정이의 엄마는 완벽주의였다. 상담실을 찾은 은정이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엄마 앞에선 언제나 자신은 한심한 존재”였다고 했다. 은정이의 어린 시절은 해야 할 의무와 숨 막히는 일정들이 빽빽했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는 폭발하는 엄마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은정이가 20대가 될 때까지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순종’. 자신의 모든 욕구를 포기하고 시체처럼 살았기에 엄마와의 관계는
하성미 기자02-14 13:02 -
[하성미의 심심톡톡] 타인을 적이 아닌 ‘부처님’으로 보세요
강하게 키우기 위해 때리는 아버지. 윤건(27·가명)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 했다. 특히 윤건이가 말을 더듬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뺨을 후려치는 냉혹하고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형과 달리 작고 유약해 보인 윤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는 “남자 새끼가 강하게 커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이 성장해도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날, 윤건이는 게임을 하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문을 벌컥 열고 “요즘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때리기 시작한
하성미 기자01-24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