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0:52 (수)

송광사스님들의지대방이야기 14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 [지대방이야기]눌산訥山, 눌인訥人

    조계산 산자락을 끌어다 한 폭의 산수화에 그려 넣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소나무는 그려 넣기 쉬워도 높고 낮음에 두드러짐이 없는 조계산 산자락을 그리려 한다면 붓은 떨리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힐 것이다. 산을 오르나 그 숨소리가 유연하여 막힘이 없어야 하고, 가끔 독야청청한 소나무의 굵은 선을 선명히 드러낼 만큼 부드러워야 한다면, 차라리 산등성이에 올라 마음 놓고 깊은 한 숨 화선지에 쏟아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송광사는 그러하다. 너무도 잔잔하여 애달픈 생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계곡과 속세에서 올라 온 이 빠진 이무기가 예까지 마중 나온 청룡을 만나는 ‘청량각’까지……. 한치의 비틀림도 없이 자란 편백나무 숲이 비라도 오면 질퍽질퍽해지는 울퉁불퉁한 흙길을 끼고 돌아가는 것 또한 그러하고, 화

    효산 스님
    2007-01-25
  • [지대방이야기]바느질을 하며

    오늘은 자율간경을 한다기에 모처럼 밀쳐놓았던 구멍 나고 해진 양말을 기웠다. 짬이 날 때 꿰매면 될 것을 바느질하기 싫어 구멍 난 쪽을 발등으로 오게 돌려 신다가 버리기도 아까워 따로 모아둔 것이 벌써 몇 켤레나 되었다. 참선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한 코 한 코 깁는다. 출가 이후 몇 번 바느질 하다 보니 이제는 마술사처럼 멋지게 요리조리 잘 꿰맨다. 항상 바느질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입산 첫날 받은 구멍 난 양말과 뒤축이 찢어진 검정 고무신이다. 출가 전 세속에 있을 때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바느질은 고사하고 조금만 입으면 마음에 안 든다고 새것으로 바꿔 입고 팽개친 것이 한두 가지였던가. 그러나 출가 대장부가 될 것이라고 입산한 첫 날 새로 받은 옷들은 낡아

    각산 스님
    2007-01-03
  • [지대방이야기]○○ 스님께

    혹 이글로 인해 ○○ 스님께 폐가 될까 염려스러워 이렇게 이니셜로 스님의 법명을 대신하였습니다. 부디 스님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와서 보니 우리의 인연이 참으로 깊고 깊은가 봅니다. 행자시절부터 치문 생활까지 함께 하니 말입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소리도 치고 화도 내고 그랬지만 대부분 스님 특유의 참는 마음으로 대해 주어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행자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문득 작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 때가 아마 삭목일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저녁예불이 시작되고 좀 지났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강타하더군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던지…….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무

    덕현 스님
    2006-12-07
  • [지대방이야기]삭발 이야기

    2003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 아침부터 삭발 준비로 분주하게 시작됐다. 송광사로 입산한 후, 출가 수행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첫 관문인 삭발식을 치루었던 날. ‘부처님의 법 안에서 내 삶의 이정표를 찾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 날. 바로 그 날도 두해 전의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삭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01년 1월 1일, 송광사 행자실. 먼저 입방한 상행자님들의 참회진언 정진 속에 길게 자란 머리는 사각사각 한켠씩 한켠씩 정리되어 갔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울컥 하더니만 이내 눈앞이 흐려지고 말았다. 한웅큼씩 잘려나간 무명초에, 따가운 비눗물에, 연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이어지는 참회진언까지…… 모든 것들이 온통 뒤섞여 범벅이 되어 버린 느

    도갑 스님
    2006-11-28
  • [지대방이야기]치문(緇門)

    매엠~ 맴~ 들려오는 이 소리. 이 매미 울음소리는 절집을 찾아오는 보살들의 과다노출을 알리는 소리이자 여기 정혜사 큰방 내의 부채들이 흔들림을 알리는 소리이다. 이렇게 여름이 찾아오면서 샤워를 자주하게 되는데 얼마 전 수각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 여기 어린애 장난자국 같은 게 있어?” 도반 목우 스님이 물었다. 나는 어이없어 하며 대답했다. “예, 이거 맹장수술 자국이에요.” “엥? 이게? 맹장수술 치고는 굉장히 큰데?” 여기서 나는 충격을 받고서 이 맹장을 때어 낸 행자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그 때 2002년 2월 13일 새벽 2시 40분. 잘 자다가 몸을 돌려 뉘었을 때 배속이 완전히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따라왔다. “으~아아!” 나의 비명소리에 깬 도반

    지륜 스님
    2006-11-08
  • [지대방이야기]도량석

    출가자라면 누구나 도량석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입방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서 기회가 주어졌다. 첫날밤은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12시가 넘도록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2시였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냥 앉았다가 대충 씻고 가사 장삼을 수하고 대웅전으로 가 불을 켜고, 문을 열고, 촛불을 켜는 등 분주함 속에서 첫날 도량석을 마쳤다. 둘째 날은 첫날의 피로 때문인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 번 깨어나 시간을 확인하고 또 다시 확인하고 잠들었다가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가 깜박 졸아 다른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 2시 45분이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그런 대로 마쳤다. 마지막 날. 이틀을 사고 없이 보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

    정원 스님
    2006-11-02
  • [지대방이야기]감 울력

    하얗게 첫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마치 하얀 옷을 입은 듯이 본래의 색깔을 감추었다. 작년에는 이렇게 한꺼번에 눈이 많이 온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보는 새하얀 세상도 새롭고,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 기분도 좋다. 하지만 눈이 많이 온 관계로 예정되었던 감 따는 울력이 연기되었다. 내린 눈이 녹고 쌓이고, 땅이 얼고 녹기를 며칠. 눈발은 멈추었고 쌓였던 눈도 어느 정도 녹아 산들이 다시 흙빛을 찾을 무렵 드디어 미루었던 감 울력을 한단다.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말로만 들었던 감이 많이 열려 있다는 대원사로 강원 스님 40여명이 출발했다. 연지문을 지나 계곡으로 향하니 아직 흰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계곡 나무 위에 홍시가 빨갛게 많이도 달려 있다. “와! 감이

    연각 스님
    2006-10-19
  • [지대방이야기]불로不老 덕우

    삼십대 중반에 출가한 나는 과연 나이에 대해서 초연한가? 몇 년 전 행자생활을 했던 절의 주지 스님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저 놈은 분명히 중이 될 놈인데 어디서 무엇 하다가 이제 들어왔나. 어차피 될 거면 빨리 들어오지’ 하셨다지만 출가도 때가 있는 법인데, 그전에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지 스님 말씀대로 빨리 출가 못한 한심스러움은 가끔 대중생활에서 나타난다. 그날은 결제 이틀 전 풀 뽑는 울력을 하던 중이었는데, 거의 울력이 끝날 무렵에 탑전에서 율주 스님과 현 방장이신 범일 보성 스님께서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우리 쪽으로 오고 계셨다. 불현듯 행자 교육원에서 발우공양을 하던 중 허리가 바르지 못하다고 죽비 경책을 받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졸립던 눈에서는 어느새 빛이 나고 있

    덕우 스님
    2006-10-09
  • [지대방이야기]도성당 시봉기

    수계한 지 꼭 일년 만에 사제를 받아 도성당에 계시는 은사 스님 시봉을 물려주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도성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보름씩 돌아가며 맡게 되는 노스님 시봉 차례가 되어 앞서 시봉했던 장행자를 따라 도성당에 갔다. 노스님께 인사 말씀을 여쭙자마자 노스님이 코를 쥐시고 노발대발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에 ‘멍청이, 멍청이’라고 하실 때마다 장행자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첫날부터 된통 진땀을 빼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장행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전날 아궁이에 군불을 땠는데 다 때고 나서 무심결에 불구멍을 막고 오는 바람에 불이 꺼져서

    보원 스님
    2006-09-19
  • [지대방이야기]이거 부처님만 아세요

    지금 해청당 큰방에는 간간이 들리는 한숨소리, 펜 굴러가는 소리에다 지그시 눈을 감고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스님들의 진지한 모습으로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해청당’에 실을 원고를 모으기 위해 상금[장학금]을 걸고 백일장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상금이 스님들이 다달이 받는 월보시보다도 많으니 나도 숨이 막힐 수밖에……. 스님네들이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원고는 쓰레기통에 던져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 하고 싶던 얘기를 다해 보련다. ? 나는 대구 파계사로 출가해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절에 와서 일주일쯤 지나니까 스님께서 머리를 깎아 주시면서 “도랑 청소나 하면서 잘 지내보시게” 하셨다. 나는 얼른 빗자루를 들고 도랑을 찾아 나섰지만

    지안 스님
    2006-09-13
  • [지대방이야기]치문반과 고양이

    “잡아라, 잡아!” “후다닥 퍽-” “아니, 잡으랑께 놓쳐부렀어야?” “글씨 요놈이 이젠 날아다니네요, 잉-” “고놈들이 또 들어 왔어요?” 상구보리 하화중생, 대자대비심, 대하심大下心 등을 언제나 가슴 속 깊이 새겨 둔 스님들이 모여 사는 치문반의 하심 테스트가 시작된 것은 지난 해 가을부터이다. 얄미운 고양이들은 처음엔 외곽 지역부터 자기 영역을 오물로 일방적으로 표시를 해 왔다. 요즘 같이 추운 때 드디어 벌집을 쑤시고자 원력을 세웠는지 얼마 전부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차담을 노려 아예 지대방으로 뛰어드는 요놈들의 행동은 드디어 일부 신경이 예민한 스님들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처음에는 마루 밑에 먹을 것을 떼어 놓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여러

    선용 스님
    2006-09-07
  • [지대방이야기]지대방 이야기

    어떤 스님이 산 속에서 홀로 지내다 식량이 떨어져서 마을로 탁발을 하러 내려가기로 했다. 생각에, 그래도 시골보다는 도시가 좋겠다 싶어 시내로 들어갔는데, 처음이라서 왠지 쑥스럽고 얼른 용기가 안 나서, 여기서 시작할까 저기서 시작할까 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 버렸다. 마침내 큰 맘 먹고 ‘여기서 부터다’ 하고 정한 곳은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골목 어느 문 앞에서였다. 스님은 조심스럽게 목탁을 치고 염불을 중얼거리면서 이제나 저제나 어서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천수경 한 편을 다 치고 났어도 아무도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스님은 오기가 생겼다. 다시 한번 천수경을 열심히 쳤다. 그러고도 지금껏 들인 공덕이 아까워서 선뜻 돌아서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야심경을 치고 있었더니 어떤 사람

    정왜 스님
    2006-08-30
  • 연재를 시작하며-지대방이야기 서문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송광사 학인스님들의 생활과 수행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책 를 붓다뉴스를 통해 매주 한편씩 연재합니다. 원고 게재를 허락해주신 도서출판 법공양에 감사드립니다. 지대방이야기를 본격 연재하기에 앞서 초판 서문을 소개해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를 내면서 {image1}_d송광사 강원의 큰방은 ‘해청당海淸堂’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불사를 마치고 보조 스님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수증도량修證道場답게, ‘정혜사定慧社’라는 원래의 이름을 법답게 찾았습니다. 지대방은 학인 스님들이 공부하다 잠깐씩 머리를 식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오붓하게 함께 사는 도반들끼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모으다 보니 ‘지대방’이란 제호의 작은 소식지가 만들어졌습니다.

    2006-08-23
  • [지대방이야기]송광사 스님들

    {image1}_d해방 후 해인사에 가야총림이 개설되어 초대 방장으로 효봉 스님을 모셨다. 해인사로 가시는 날 삼일암에서 짐을 꾸리다 잠시 나갔다 오신 스님이 뭔가 열심히 찾으시는 것이었다. 시자를 보는 손상좌가 무엇을 찾으시냐고 여쭈니, 손바닥만한 헝겊조각 두 개 못 보았느냐고 하셨다. 너무 낡아서 내다버렸다고 하자 당장 찾아오라고 하시며 “그것이 어떤 물건인데 네가 함부로 버리느냐. 내가 금강산을 떠나올 때, 우리 은사 스님이신 석두 스님께서 먼 길 가는데 걸망 끈에 어깨 짓무른다고 밤새워 기워 주신 것이야.” ? 석두 스님[1882-1954]이 노환으로 운신을 못하게 되자 효봉 스님이 손수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루는 손주 시봉이 요강을 비우자 ‘우리 스님은 내가 모신다’며 꾸지

    종지 스님
    200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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