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지쳤다

여름 휴가철이다. 주변에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 계획이 어찌 어찌 하다고도 하고, 아니면 휴가 다녀왔느냐는 말이 일상 쓰는 인사말이 되었다.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하기에 휴식을 취하러 저리 많이 해변에 모일까. 저 군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과는 동떨어진 세상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휴식 없이 정진만 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육체의 피로와 정신의 피로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이다. 휴식 없이는 성과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생 앉아서 쓰고 읽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앉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 어렵다.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의 경우 첫째 관문이 앉는 것이라고 한다. 육신을 조복 받는 앉는 일에 실패하면 지구력 있게 책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되면 그의 청운의 꿈도 물거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선에서는 앉는다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좌선, 좌선법, 좌구가 그렇다. 앉을 좌(坐)라고 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좌도(坐盜)라고 하면 영 다른 뜻이 된다. <안자춘추>에 나오는 고사이다. 안영(晏嬰)은 제나라의 명 제상이요,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초나라 임금이 안영을 초대하여 그의 지혜와 기상을 꺾어 놓고자 했다. 신하들과 모의를 마친 후 초대하여 주안상을 질펀하게 차려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 때 한 사람을 결박하여 임금 앞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임금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연유를 물었다 이 자가 제나라 사람인데 우리 초나라에 와 죄를 지었다고 병사가 고했다. 무슨 죄냐고 임금은 물었다. 도둑질한 죄[坐盜]라고 대답했다.

마주 앉은 안영에게 제나라 사람은 자고로 도둑질을 잘합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안영은 조금도 비굴해 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귤을 회수(淮水)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되고 남쪽에 심으면 귤이 열리는데 이는 다름 아닌 풍토의 문제다. 허니 저 도둑은 우리 제나라에 있을 때는 양민이었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였으니 초나라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런지요. 여기서 초나라 임금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한 시대의 아픔이기도 했던 연좌제(連坐制)가 서슬이 퍼렇게 적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당사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데 범죄자의 친척이나 인척까지 연대적으로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제도이다. 이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의 소산일 뿐이다. 1980년대 이후 사실상 폐지되었다. 연좌(連坐)란 한 사람의 범죄에 대해 특정 범위의 몇 사람이 연대 책임을 지고 처벌되는 일을 말한다. 좌도나 연좌의 좌(坐)는 모두 죄를 짓는다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운문스님의 제자 가운데 향림증원(香林澄遠, 908~987) 선사가 있다. <벽암록> 제 17칙에 선사의 좌구성로(坐久成勞)가 있다. 어느 날 한 납자가 향림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초조달마는 먼 인도에서 일부러 중국까지 와서 설법도 하지 않고 소림산에 들어 박혀 9년 동안이나 벽과 마주 앉아 있었다는데, 도대체 그는 무엇하러 중국에 왔습니까. 그러자 향림선사는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그만 지쳤구나”라고 대답했다.

조사란 각 종파의 전등자(傳燈者)는 모두 조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선종에서는 대개의 경우 보리달마를 가리켜 조사라고 한다. 보리달마가 면벽 9년의 침묵 생활을 보냈다는 고사에서 좌구성로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은 너무 오랫동안 좌선하여 피곤하다는 의미이겠으나 이 때 피로하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꽤 건강한 피로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달마가 심신의 피로가 감내하기 어려웠다면 선종사에서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건강한 피로감이 있다. 이럴 경우 엔돌핀이 축적되어 인류문명사에 이바지할 만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일을 마치고 난 후의 피로는 누구에게나 엄습하기 마련이다. 일이 성취되었을 대의 피로는 금세 소멸되고 만다. 성취감이 피로를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라틴어 medicus는 ‘치료하다’ 또는 ‘돌보다’는 말이다. 여기서 meditation과 medication 이란 말이 나왔다. 전자는 ‘명상’이고 후자는 ‘약물치료’란 말이다. 명상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해독제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근육이 고요함 속에 단련되기 때문이다. 명상은 긴장을 이완시키는 촉매제로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침묵은 혼란스러운 정신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침묵하라. 그리고 법을 논하라”고 유훈을 남겼다.

지금 어느 산야에서 침묵하지 못하고 들 뜬 마음과 육신을 감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여. 이 절기가 지나면 아마 공허한 마음과 제어되지 않는 육신은 의학의 힘을 빌려 치료받아야 할 무기력한 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쾌락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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