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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21. 공존이라는 감각 ①
신문을 읽고 아침 토론을 하는 시간에 불현듯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왜 우리나라는 세계 자살률 1위인가요?” 자료를 찾아보니 OECD 국가 중 2003년부터 20년 넘게 압도적으로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작년 한 해 1만4872명이 자살했다.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니 OECD 평균 10.7명보다 거의 3배에 가깝다. 더 슬픈 것은 아이들도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아무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하루 평균 약 40명이 36분 간격으로 세상을 등지는 나라, 매 교시 수업을 하고 나올 때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11-07 09:59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20.완벽한 삶
완벽한 문장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 말을 우리네 인생으로 돌려보면, 완벽한 삶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만, 그 나은 삶이 무엇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더 좋은 아파트, 더 좋은 자동차, 더 멋진 여행을 꿈꾸며 안달복달하는 우리는 이 완벽한 삶이란 정의 앞에 모두 후안무치다. 모두가 우울할 수밖에 없는 타인과의 ‘비교 지옥’에서의 해탈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완벽한 삶을 지향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수행자가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10-03 09:42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9. AI 시대 창의성 교육의 본질
최근 나의 화두는 AI 시대에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다. 우연히 학교 연수에서 배운 동화책 만들기 수업을 듣고 더욱 그렇다. 네 살배기 아들을 위해 ‘뽀뽀 귀신’이라는 동화책을 만들어 주려 단 몇 줄의 프롬프트를 넣었을 뿐인데, 장대한 이야기가 단 몇 초 만에 뚝딱 생성되는 게 아닌가. 더구나 내가 머릿속에 그려 보았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놀랐다. 거기서 생성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뽑아내고, 그걸 다시 PDF로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면 내 이름이 저자로 붙은 정식 동화책이 완성되는 거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수십 권의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9-05 11:13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8. 부부학교 ②
전생의 원수가 만나 부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부부살이가 고달프다는 뜻이다. 부부는 인생이라는 트랙을 굳이 한 다리를 같이 묶은 채 이인삼각으로 달린다. 매 순간 서로 합의하고 경청하고 보조를 맞추며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이인삼각의 고행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불교에서는 인과응보를 강조한다. 모든 행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락의 과보가 따른다고 말한다. 전생의 원수가 만나 부부가 되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원한을 푸는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8-08 10:07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7. 부부학교 ①
부부가 퇴근해 식사를 하며 하루에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나누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고달팠던 하루의 일과를 나누며, 때론 다독이고 때론 문제를 공유하며 해결책을 찾는 모습이 아이들에겐 그 자체로 미쁜 사랑의 모습이리라. 학교에서 이십여 년 근무하며 발견한 것이 있다면, 아이들 모습과 부모의 모습이 참 닮았다는 것이다. 학교를 방문한 부모님의 교양 있는 말투와 행동이 아이의 모습과 매치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집안에서의 부모님 모습일 것이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서 갑작스레 이상행동을 보인다면 그건 지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7-04 10:01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6. 대화법 특강: 존중의 햇살 (3)
관계 회복을 타이틀로 한 방송국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해 서로 오해가 깊어져 단절된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 말없이 바라보다 어렵게 속마음을 꺼내 놓고는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엉켰던 마음을 풀어냅니다. 하나 신기한 것은 그간 상대를 향했던 분노와 서운한 마음이 속마음을 꺼낸 이후에는 금세 상대에 대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게 한 치의 예외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분노와 슬픔, 외로움은 실은 안전하게 속마음을 꺼낼 데가 하나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속마음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6-06 13:53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5. 대화법 특강: 존중의 햇살(2)
요즘 학교는 갈등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학교라는 말을 검색하면 자동완성 문장이 학교폭력입니다. 학교는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 모인 사회의 축소판인데, 폭력과 자동연관 검색이 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갈등을 다루는데 미숙하다는 뜻입니다. 요즘 학교 구성원들은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교육청과 법원에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갈등을 직면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갈등은 서로 다른 욕구가 합의하지 못한 ‘과정 중인 상태’일 뿐이고, 한 개인 또한 평생 뭔가를 선택하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5-05 15:25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4. 대화법 특강: 존중의 햇살(1)
오늘은 대화법 특강입니다. 대화를 하는 것도 배워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수많은 대화를 나누어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키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이 대화라는 것이 저절로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사자와 소가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습니다. 사자는 날마다 신선한 고기를 잡아 소에게 주었고, 소는 날마다 신선한 풀을 뜯어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리 날이 덥고 짓궂어도,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이들은 정말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04-01 08:57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3. 가장 큰 선물내적동기와 자존감
아내가 외출한 주말 오후, 엄마가 금세 그리운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한다. 자이언트 판다 같이 큰 32개월 된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팔베개를 하며 동화책을 읽어준다. 주인공 코알라가 조랑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선 조랑말을 어쩌지 못해 당황한다. 이때 그간 주인공이 조그맣다고 무시했던 햄스터가 당근으로 조랑말을 유도해내고, 그런 햄스터의 재치를 칭찬하며 둘이 신나게 조랑말을 타고 노는 이야기다.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우리 아기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나, 그런 고민이 학교현장에서의 수업이 된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02-28 11:22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2. 들숨날숨 집중해 ‘괴로움의 비’ 피해보세요
하수상한 시절엔 한겨울에도 장대비가 내린다. 한나절을 넘기는 소나기가 없건마는 낮밤 없이 장대비가 내린다. 그치질 않는 빗소리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대체 이 괴로움의 비는 어디에서 피할 수 있을까.학생들과 매 수업 시작 전에 명상을 한다.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이마부터 발끝까지 하나씩 신체 부위를 부르며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조신(調身), 몸을 고르게 한다. 그 다음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들숨, 날숨의 호흡을 바라보며 숫자를 센다. 조식(調息), 호흡을 고르게 한다. 다음으로 지금 당장 입가에 미소가 번질만한 행복한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01-24 10:09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1. 마음 밖에서 찾지 않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머리에 커다란 헤어롤을 걸고 길을 걷는다.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마주하는 풍경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투명 인간이 된 느낌이다. 젊은 친구들이 모임이 끝나고 정산을 하는데, 자기가 먹지 않은 안줏값은 빼고 정산해달라 한다는 기사를 읽는다. 모든 것이 N분의 1이 가능한 시대다. 애매함과 모호함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아파트 공터 수거함에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중년의 아저씨가 주차장 도로 턱에 앉아 유튜브를 본다. 나오는 음성이 이상해 의아해하다가 그것이 빠른 배속임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2024-12-13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0. 詩, 삶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
오늘은 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창의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마 저마다 다른 정의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창의성이 서로 거리가 먼 것을 연결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틱낫한 스님의 문장을 한번 읽고 시작해 볼까요?“그대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는 이 종이 안에 구름이 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 구름이 있다. 이 종이의 존재는 구름의 존재에 달려있다.” 어떤가요? 이제 여러분도 종이에서 구름이 보이시나요?‘종이’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2024-11-15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9. 교육혁명 ‘트라스(TRAS)’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 2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았다. 그중 아이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수업유형과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던 수업유형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교육혁명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인 ‘트라스(TRAS)’는 스페인어로 ‘꽝꽝 두드려 깨우는 소리’를 뜻한다.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을 꽝꽝 두드려 깨우고 싶다는 의미로 그렇게 정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까? 바로 ‘동기부여’와 ‘질문’이다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10-21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8.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3)
오늘은 ‘상실’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얻은 23개월 된 아들이 있습니다. 요즘 말도 잘하고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기저귀를 갈 때도 알아서 척척 기저귀를 가져오고, 콧물을 닦아줄라 치면 어느새 달려가 티슈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쁜 아기가 떼를 쓰기 시작하면 3시간 넘게 발악을 합니다. 요구르트를 더 달라고 허리를 거꾸로 활처럼 휘고 온몸을 꼬아대며 바닥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쉬지 않고 떼쓰며 울어대는 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땀범벅이 됩니다. 더 서글프고 간절하게 보이려고 괴상한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9-06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7.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2)
오늘은 ‘힘’과 ‘연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 상담에는 ‘보이지 않는 충성심’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오랫동안 상담을 하면서 알콜중독, 폭력, 도박, 외도 등 어린 시절 아이를 힘들게 했던 부모의 역기능적 행동을 그 자녀들이 커서 그대로 재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들은 가장 싫었던 부모의 모습을 반복하는 걸까요? 술을 마실 때마다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아이는 커서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커서 아빠처럼 술을 마시고 가족들에게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7-26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6.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1)
오늘은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욕구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크게 네 가지 범주로 그 층위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본능(instinct)’입니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식욕’과 ‘성욕’이라는 강렬한 본능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공원의 비둘기를 보면 하루 종일 먹이를 찾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연못의 한가로운 잉어들도 먹이를 뿌리면 머리가 터지도록 싸웁니다. ‘개체유지’를 위한 강렬한 식욕입니다. 봄밤 골목에서 밤새 처절하게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어본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6-28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5. 사춘기의 이해(2)
사춘기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발달과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의 ‘짜증, 적대시, 욕설, 친구 중요시, 과한 타인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알면,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알면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 를 보면 납치되는 버스에서 아이가 떼를 쓰며 울자 엄마가 막 다그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한 납치범이 엄마를 쏘아붙이며 말한다. “아줌마, 애들은 원래 우는 거예요!” 그렇다. 애들은 원래 우는 건데, 안 그러길 바라는 엄마만 자꾸 부아가 치민다.뇌과학적으로도 사춘기는 뇌의 전면 개보수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5-31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4. 사춘기의 이해(1)
해마다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사춘기의 이해 특강을 한다. 중학교 들어올 무렵 시작한 사춘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절정을 이루고 3학년 때 조금 시들했다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철이 들어 점잖아지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다. 그럼 대체 사춘기는 무엇이고, 또 왜 찾아오는 것일까? 사춘기(思春期)는 말 그대로 ‘봄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춘정(春情)’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춘정은 ‘이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들이 이제 후손 볼 나이가 되어 짝을 찾아 어른으로 독립하려는 것이다.인간의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4-19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3. 현존수업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간만큼 땅을 다 차지할 수 있는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간힘으로 더 멀리 내달렸지만, 아무도 제때 돌아오지 못했다. 한때 어두운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했다가 캄캄한 저녁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집은 오직 씻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며, 오래 고민하고 산 좋은 오디오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좋은 자전거가 있어도 마음껏 달려보지 못했다. 산이 좋아 산 가까이 이사를 했음에도 등산 한번 하지 못했다. 뭔가 거꾸로 사는 느낌, 내 삶에 내가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된 느낌이 들었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3-25 -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2. 우울한 시대에 부치는 편지
“어린 시절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합니다.”학교 옆 아동상담소에 한동안 붙어 있던 표어다. 출퇴근을 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몇 번씩이나 마음속으로 되뇌어본 문장이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우울할 때, 이젠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다 어디에 숨어 사는 걸까. 조각보를 잇듯 몇 개의 사진으로 추측해보는 나의 어린 시절은 과연 맞는 기억일까. 십여 년이 넘게 정신분석과 무의식을 공부하고 있지만, 학자마다 자기만의 임상경험으로 내놓는 수많은 전문용어에 기가 질릴 뿐이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김권태 동국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202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