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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포행로’이며 동물들의 ‘오솔길’
{image1 center} 해발 1614미터인 덕유산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크게 기지개를 켠 곳이다. 적상산(1034미터)은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 줄기가 북서쪽으로 치올라간 아우산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포함되어 있다. ‘무주’편에 보면 ‘사면으로 곧추 선 암벽이 층층이 험하게 깎이어 마치 붉은 치마를 두른 것 같아’ 그 이름을 적상산(赤裳山)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찍이 신라와 백제의 변경이었던 지역으로, 고려 때 최영 장군이 이 천혜의 요새에 축성할 것을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월인(月印) 스님이 성 안에 안국사(安國寺)를 창건해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도 그 무렵일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성을 오늘의 모습으로 보축하고 사고(史庫)를 설치하였다. 안국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2007-08-01 -
해발 1080미터, 탁트인 공간 풍부한 식생…“무궁한 절경”
{image1 center} ‘…산세를 둘러보니 사방 어느 쪽도 공결이 없고 지세가 높고 확 트인데다 절터가 반듯하며 가야산으로 안산을 삼고 있었다. 봉우리에 흰 구름이 자주 걷히기도 하고 덮이기도 하는 모습을 앞문을 열어 놓고 하루 종일 마주하고 있었더니 의미가 무궁하였다. 참으로 절경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정시한(鄭時翰)의 는 그가 3년여 동안 전국 고찰을 순례하고 남긴 흔적이다. 당시 사찰의 자연환경과 가람 모습, 여러 스님들 이야기는 사료적 가치가 상당하다. 윗글은 그가 김천 수도사(修道寺)에 하루를 유숙하며 수도산(修道山)의 정경을 예찬한 부분이다. 그의 예찬을 마음속에 그리며 수도사를 찾아 나섰다. 수도산에 절이 처음 들어선 것은 통일신라 말. 도선 국사가 이 산중에 쌍계사
글·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2007-08-01 -
튼실한 자연 뛰어난 풍광 "금강산에도 없다"
{image1}한국화의 원형은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한다. 그 전까지의 그림은 중국화를 모방한 동양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국 산수가 우리 산수(생태적 경관 landscape)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 뒤 새로운 기법으로 나온 것이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산수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가운데 ‘고사의송관란도(高士倚松觀瀾圖)’ ‘삼룡추도(三龍秋圖) 1ㆍ2’ ‘내연산폭포도(內延山瀑布圖)’ 등은 그가 경북 청하현감으로 재직할 때 내연산(內延山)을 오르내리며 그린 산수화이다. 포항 보경사(寶鏡寺)가 바로 그 내연산 산수 속에 자리한 신라고찰이다. 행정구역은 포항시 송라면 중산리이지만, 이 지역 노인분들은 아직도 ‘청하 보경사’라고 일컫는다. 조선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 지
강지연 기자2007-07-25 -
운악산 현등사의 맑은 신록
문화는 자연조건의 소산이다. 석탑, 석등, 부도 등 우리의 석조문화가 뛰어난 것도 지질 환경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풍부한 화강암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불교문화재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화강암은 형성된 시기에 따라 대보화강암과 불국사화강암 등 크게 둘로 나눈다. 설악산에서 북한산에 이르는 한북정맥의 암산들은 대보화강암대에 속한다. 현등사가 자리한 가평 운악산(935미터)도 그 산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현등사의 창건은 등에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마라하미 스님을 맞이하여 세운 절로 소개되어 있지만, 오히려 신라 말 도선국사가 개성 송악산을 비보하기 위해 지었다는 창건설이 더 비중 있게 다가온다. 현등사 가는 길은 청평을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2007-07-03 -
황어 올라오면 십리벚꽃 꽃망울이 '톡'
{image1 center} 지리산은 해발 1915미터로 남한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높은 산’이라기 보다는 ‘큰 산’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경남과 전라남북 3개도에 걸쳐있는 주능선은 무려 45킬로미터, 백리가 넘는다. 노고단에서 정상인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구간에 1500미터급 봉우리만도 10여 개나 솟아 있다. 그 봉우리 사이에서 발원한 골짜기들이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등의 유수한 강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섬진강의 한 지류인 화개천은 지리산의 아고산대 주능선이 만드는 남사면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반백리를 흘러 섬진강에 합류된다. 화개천은 일찍이 ‘지리산 12동천’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혀온 곳으로, 신라고찰 쌍계사가 그 중류에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가 화개천이 내려다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2007-04-24 -
남해 보리암의 꽃샘 봄날
{image1 center} 남해의 보리암을 비롯해 동해의 홍련암, 서해의 보문사 등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는 모두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이를 두고 조용헌은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논문에서 바닷소리[海嘲音]를 관(觀)함으로써 아집을 털고 진리의 경지에 이르는 능엄선 수행을 위해 관음성지들이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리암 설화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역사성이 깃든 것으로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다. 이성계가 왜구를 치기 위해 남해안에 왔다가 조선 개국의 뜻을 품고 이 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해서 역성혁명에 성공해 조선을 개국했다는 전설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읍내로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한적한 관음포(觀音浦)가 지나간다. 관음포는 강화도에 이은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2007-04-12 -
한 마리 봉황처럼 위풍당당 '위봉송'
{image1 center} 우리나라 고유의 소나무는 줄기가 붉은 적송이다. 나무줄기 윗부분을 이루는 가지와 잎이 달린 모양새를 ‘수관(樹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적송도 지역에 따라 크게 여섯 종류로 수관이 나뉜다. 완주 위봉사(威鳳寺)를 중심으로 전북 산악지역에 보이는 소나무는 ‘위봉형 소나무’라고 일컬어왔다. 이번에 두 차례에 걸친 위봉사 조사도 자연 위봉송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위봉사는 고려 때 최용각(崔龍角) 거사가 창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라 말에 완주지역으로 이주해온 경주 최씨 후손으로, 묘소와 재실이 위봉사에서 지척인 대아리에 있다. ‘위봉사’라는 이름은 최 거사가 세 마리의 봉황새가 맴돌고 있는 것을 보고 지었다고 전한다. 봉황은 고려 말에 두각을 나타낸 그의 세 아들을 가리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2007-03-27 -
구불 구불 범종각 기둥 자연미 극치
{image1 center}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북으로 올라온 정맥이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북진한 한남정맥은 경기도의 기맥이 되고, 서진한 금북정맥은 충남의 기맥이 되었다. 충남의 기맥 가운데 해발 677.6미터의 가야산이 내포 땅에 우뚝하다. 상왕산(象王山)은 가야산의 산줄기가 석문봉을 지나 몇 걸음 북진해 솟아오른 해발 307미터의 지봉이다. 인도의 가야산 형세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 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 하였으니, 이곳의 상왕산의 이름도 거기서 연유했을 것이다. 서산 개심사는 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때인 654년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개원사(開元寺)’라는 이름으로 초창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대웅전 기단의 옛 돌 말고는 옛적 일을 알려줄 물증은 남아있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2007-02-22 -
연꽃 속에 자리잡은 맑고 넉넉한 도량
연화산 옥천사 경남 고성 땅은 옛날 소가야의 영토였다. 6세기 전반에 신라가 병합하긴 했으나, 서라벌에서는 먼 변방이었다. 따라서 의상대사가 이 지역의 민심을 잡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곳에다 화엄십찰의 하나인 옥천사를 지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전하는 바에도, 원래 ‘비슬산’이었던 지명을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가 지금의 지명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웃한 지리산 쌍계사 진감국사비에도 “이웃 고을에 같은 이름인 옥천사가 있어서, 쌍계사 이름을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화산(蓮花山)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이자, 경남의 도립공원이다. 연화산은 지리산 영신봉(1651미터)에서 내려온 낙남정맥의 한 지봉에 속한다. 하동과 진주 사이로 내려온 낙남정맥은 연화산에서 다시 북동
박봉영 기자2007-01-02 -
'무풍한송'의 뒤틀림 승천하는 龍 형상
낙동정맥은 우리나라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 태백의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백병산-백암산-주왕산-가지산-금정산-몰운대로 내려와 남해로 침잠하는 산줄기이다. 해발 1,050m인 영취산은 그 가운데 가지산과 금정산 구간에 위치해 있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그라드라산의 한자 지명을 빌어서 영취산(靈鷲山), 취서산(鷲棲山), 영축산 등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양산시에서 여러 지명으로 혼선을 빚고 있다 하여 ‘영축산’으로 통일했다. 통도사는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해서 창건되었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적멸보궁들은 모두가 경주에서 먼 변경이거나 오지이다. 그런데, 경주와 인접한 양산에 적멸보궁을 세운 것은, 잦은 왜구의 침략을 막고, 신라 왕실에 버금가는
박봉영 기자2006-12-30 -
108사찰 생태기행-나주 덕룡산 불회사
“저 넓은/법계 속 불회(佛會)에 나아가/감로법우(法雨) 내리기를 비나이다/무명토(無明土)에 깊이 묻혀/번뇌열에 달구어져/선아(善芽)가 말라붙은/중생의 밭들을 적시소서!/아,/보리(菩提) 열매 영그는 날/깨달음의 달 밝아라!” 균여대사의 향가집에 실린 의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이다. 전남 나주 덕룡산 기슭에 자리한 불회사(佛會寺)의 사명(寺名)에는 보살이 부처님 전에 나아가 법을 설해주기를 발원하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기록상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여러 문헌이나 사료 등을 종합해볼 때 불회사 창건주는 인도스님인 마라난타 존자가 확실해 보인다. 마라난타 이후 고려 말에 원진국사가 사세를 크게 일으켰다. 본래 사명 ‘불호사(佛護寺)’는 조선 순조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듯하다. 불회사 일주문
박봉영 기자2006-12-20 -
전통해우소ㆍ흙웅덩이 연못 등 생태환경 두루 갖춰
예전에는 사하촌에 서낭당이니 장승이니 하는 마을 지킴이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알고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용케 살아남은 것들도 제의(祭儀)가 뒤따르지 않아서 젯밥 굶은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 데 비하면 운달산 김룡사의 사하촌 서낭신은 아직도 마을사람들에 의해 받들어지고 있어서 절골로 들어서는 느낌이 푸근하다. 운달산(雲達山 1,097미터)이라는 지명은 신라 진평왕 때 운달조사가 이 산에 들어와 ‘운봉사(雲峰寺)’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쓰고 있는 ‘김룡사(金龍寺)’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사하촌의 어느 장자가 운달산신에게 기도하여 남매를 얻어 아들의 이름을 용(龍)이라 지었는데, 그 후 마을과 절 이름을 ‘김룡’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김룡사 생태탐방은 주차장-보장문 구
박봉영 기자2006-12-08 -
바람산 위에 펼쳐진 꽃들의 잔치
일반적으로 식물의 수직분포대는 저산대, 산지대, 아고산대, 고산대로 나누어진다. 아고산대(亞高山帶 subalpine zone)는 해발 1천 미터에서 2천 미터 사이의 산을 가리키며, 수평분포대로 볼 때는 아한대에 속에 있다. 삼국시대 국경이었던 백두대간은 소백산-월악산-속리산-민주지산-덕유산-지리산 등의 아고산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변경의 아고산대 산에 국찰(國刹)과 관문(關門)과 산성(山城)들이 집중해 세워졌다. 해발 1,439미터인 소백산에는 특히 호국을 목적으로 지어진 신라 고찰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 아래는 비로사와 용천사, 국망봉(1,420미터) 아래는 초암사와 성혈사, 연화봉(1,383미터) 아래는 희방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 동쪽으로는 부석사가 자리하
박봉영 기자2006-10-11 -
산세ㆍ식생 모두가 '보궁'
원래 고구려 영토였던 설악과 오대산 지역은 신라 진흥왕 때 신라 땅이 되었고, 그 후 진덕여왕 연간에 자장율사가 이 지역에 들어와 절을 지었다. 설악의 백담사와 봉정암, 오대산의 상원사, 태백산의 정암사가 그 절들이다. 율사가 이 산간에다 절을 지은 것은 옛 터 수복을 노리는 고구려의 유민들을 잠재우기 위한 지정학적인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불국토사상을 내세운 자장의 생각이 그러했고, 훗날 변방에다 화엄십찰을 세운 의상의 뜻도 그러했다.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시오릿길은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곳곳에 길이 끊어지고 낙석이 쏟아져서 한동안 차가 다니지 못했다. 집중호우가 남긴 상채기가 아직도 곳곳에 눈이 아프게 보인다. 백담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한계사(寒溪寺). 조선 조에 설정대사가 소실된 옛 절을
박봉영 기자2006-09-25 -
활엽수와 기암의 조화 그대로 '법당'
녹지자연도(綠地自然度)란 환경부가 자연생태계의 장기적인 보호계획을 세우기 위해 녹지공간의 자연성을 나타낸 지표이다. 즉, 녹지식생이 없는 저수지나 강을 0으로 하여, 녹지 식생이 거의 없는 시가지를 1등급, 논밭 등 경작지를 2등급..., 장령림(長齡林)과 원시림을 8~9등급, 고산지대의 천연림을 10등급으로 정해놓았다. 내장사 주변은 해인사, 화엄사, 법주사, 천은사 주변의 숲과 함께 개발을 금지하고 보전해야할 8~9등급 숲에 해당된다. 문헌에 따르면 내장산(內藏山)의 본래 이름은 산중에 있던 영은사(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렸다가 나중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근세의 인물인 학명선사의 사리탑에 병서된 내용에 따르면, 내장사는 백제 무왕 때인 636년에 영은조사
2006-09-04 -
800살 천자암 쌍향수 승천하는 용처럼 생동
초기불교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은 철저한 무소유자들로, 사람들은 그들을 ‘아란냐카(aranyaka)’라고 불렀다. 이는 ‘숲속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一處住]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부르는 ‘ 총림(叢林)’이라는 말의 어원도 멀리로는 초기불교에까지 인연되어 있다. 조계산 송광사는 조계총림이다. 창건사는 신라 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격(寺格)이 제대로 갖추어진 것은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서이다. 보조국사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하여 전성기를 이루었고, 조선시대로 들어와 부휴대사에 의해 승보사찰의 전통을 이어왔다. 조계산이라는 지명의 시원은 육조 혜능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조가 오조 홍인으로부터 법인을 받은 후, 소주 조후촌(
2006-08-18 -
기암괴석 열두봉우리 청정도량 외호
낙동강이라는 이름은 가락[伽倻]의 동쪽을 흐른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본류는 태백의 함백산(1573미터)에서 발원하여 봉화-상주-성주-대구-밀양-김해 등 영남의 너른 들을 적시며 을숙도에 이르러 남해로 흘러든다. 낙동강을 아홉구비로 나누어 흔히 구곡장류(九曲腸流)라 하는데, 구비를 돌 때마다 지방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진다. 발원지인 태백과 안동댐을 잇는 두번째 구간이 명호강이다. 봉화 청량산이 바로 그 강에 발을 담그고 있다. 봉화 청량산은 태백산 훨씬 위쪽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내려온 낙동정맥의 식솔이다. 장군봉(1137)과 일월산(1218) 사이에서 갈려져 나온 덕산지맥이 서쪽으로 내달리다가 낙동강 강줄기 앞에서 우뚝 멈춘 산이다. 청량산은 해발 870미터로, 산간오지로 그리 높은 편은
박봉영 기자2006-08-18 -
인연있는 고승들 이름 붙여 노거수 보호 ‘눈길’
{image1 center} 대구 팔공산은 신라가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927년 후삼국 통일전쟁이었던 동수대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로 바뀌고 말았다. 당시 후백제 견훤이 고려 왕건을 대파한 데는 백제계 법상종 사찰이었던 팔공산 동화사가 있었다. 신라 흥덕왕의 아들 심지(心地)에 의해 창건된 동화사가 친견훤 편에서게 된 데는 당시 미륵불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백제 유민의 후손인 진표율사에 의해 불이 당겨진 미륵불교가 모악산 금산사에서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팔공산 동화사로 전해졌다. 이는 당시 미륵불교가 처음부터 친후백제적 성향을 띠고 있었음을 쉽게 짐작케 해준다. 팔공산은 낙동정맥의 중간에 위치한 보현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곁가지에 솟아오른 암산이다.
글·사진=김재일200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