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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설화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1. 신화이야기 흔히 신들의 이야기를 신화라 하고, 인간의 이야기를 설화라고 한다. 그런데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과 그 이전에 이미 선재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과연 신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가 아니면 ‘선재하는 존재’일까. 선행하는 전제나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본다면 신에도 자연신이 있고 인공신이 있다. 자연에는 모두 신성이 내재해 있다는 데서 자연의 신이 존재한다. 반면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로서 인공의 신이 존재한다. 신에는 사람이 죽어 혼비(魂飛) 백산(魄散)한 뒤에 음덕을 준다는 조상신을 비롯해서 천신과 지신 및 동물신도 있고 식물신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신에는 용신, 지신, 산신, 바다신 등 뿐만 아니라 생명체와 연루
고영섭(동국대 불교학과)2012-03-05 -
왕의 사신, 불교 토착 앞당겨
일연은 신라의 불교공인을 담고 있는 조목을 ‘원종흥법(元宗興法) 염촉멸신(??滅身)’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원종은 법흥왕이고 염촉은 이차돈이다. 법흥왕은 즉위 당시 신라 고유 왕호인 매금(寐錦)왕으로 불렸다. 영일의 냉수리비(冷水里碑; 503)와 울진의 봉평비(鳳坪碑; 524)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불교 공인이전까지 그는 왕으로서의 초월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신료들과 동렬에 머물러 있었다. 오랫동안 신라는 경주 지역을 분할 통치했던 여섯 부족의 득세로 말미암아 왕권이 미미했다. 왕은 나라를 대표했을 뿐 실제에 있어서는 여섯 부족장들과 같은 지위에 있었다. 어렵게 병부를 설치하고 공복을 제정한 뒤 율령을 반포한 법흥왕은 불교의 공인을 통해 강력한 왕권 확보를 모색했다. 당시 여섯 부족들은 지증왕대 이래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2012-02-07 -
아도 법사가 신라 불교 기틀 다져
신라의 불교 공인이 늦어진 까닭은 ? ?? 아도의 터잡기? 일연은 고구려의 불교 전래 과정을 ‘순도조려’(順道肇麗)라고 했다. 순도법사가 고구려에 불교문명을 열었다는 뜻이다. 백제의 불교 전래 과정은 ‘난타벽제’(難陀闢濟)라고 했다. 마라난타법사가 백제에 불교문명을 열었다는 뜻이다. 일연은 두 나라 모두 ‘열었다’[肇, 闢]고 표현했다. ‘열었다는 것’은 국가와 왕실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해 불교의 기초와 기둥과 지붕과 벽을 마련한 뒤 문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신라의 불교 전래 과정은 ‘아도기라’(阿道基羅)라고 했다. 아도법사가 신라에 불교문명을 터잡았다는 뜻이다. ‘터잡았다’[基]는 것은 국가와 왕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도법사 스스로 불교의 터를 잡고 땅을 파고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2012-01-26 -
'거문고 갑을 쏴라'는 무속의 불교 견제
1. 불교의 동류 진리에는 본디 방향성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 방향을 매겼을 뿐이다. 진리[法]는 물이 흘러가듯[去]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 인도에서 비롯된 붓다의 가르침은 전법승들에 의해 북서와 북동으로 흘러갔다.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셀 수 없는 전법승들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오다 목숨을 잃었다. 또 그들에 의해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받은 셀 수 없는 구법승들이 다시 사막을 넘어가다 목숨을 잃었다. 이 사막을 넘나든 이들에 의해 붓다의 가르침은 한나라에서 위진 남북조시대에 걸쳐 고구려와 백제 및 가야와 신라로 흘러들어 왔다. 그리해 붓다의 무상과 무아와 공성의 가르침은 이르는 곳마다 뿌리를 내렸고 만나는 사람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까르마(業)와 다르마(法)로
고영섭 동국대 교수2012-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