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0:52 (수)

[화엄만다라] 박찬욱 밝은사람들연구소장

“수행으로 만난 불사, ‘수행’까지 왔네요”

‘수행’ 주제 ‘3년 연찬’ 진행
총서 20권 주제 오래전 낙점
“한 권으로 끝내긴 너무 방대
수행 전반~간화선, 모두 다뤄”

간화선 프로그램서 수행하면서
수불 스님과 인연…연구소 맡아
“총서 25권까지 제작하고파” 서원

담천 박찬욱 소장이 밝은사람들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담천 박찬욱 소장이 밝은사람들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위로 누나만 다섯이었던 소년은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야 했기에 더욱더. 스스로의 부담감에 짓눌리던 청소년기에 만난 불교는 새로운 세계였다. 재수하며 동국대 불교학과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주위의 반대로 한국외대 중국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대기업 무역상사에 입사했다. 그렇게 평탄한 인생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했다. 수행을 하고 싶었다. 대학 때에도 불교와 요가, 힌두 등의 다양한 수행서적을 섭렵했던 그였다. 결국, 잘나가던 무역상사에 사표를 던지고 대한적십자사로 이직했다. 여유 시간이 생기자 불교 수행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40대 중년이 된 그는 아내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도전을 했다. 대한적십자사를 떠나 불교계로 왔다. 사찰 종무원부터 재가자 수행 프로그램 연구위원까지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러던 2004년 그는 수불 스님이 운영한 간화선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인연을 맺었다. 2년 뒤 수불 스님은 “불교와 사회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담론을 논의할 전문 연구소를 만들고 싶은데 그대가 맡을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곧바로 수락했다. 이것이 밝은사람들연구소의 시작이다. 

2006년 문을 연 밝은사람들연구소는 창립 2년차 때부터 획기적인 기획으로 불교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14일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주제의 첫 학술연찬회는 불교학뿐만 아니라 서양철학, 생물학 등 인접학문까지 영역을 넓혀 ‘욕망’의 실체에 접근하려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매회 연찬회장은 가득 찼다. 수불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한 학술연찬회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그리고 이를 끌어온 사람이 담천 박찬욱 밝은사람들연구소장이다. 

“수불 스님의 원력 구현하는 일꾼”
연구소를 20년 가까이 이끌며 박 소장은 총 20권의 총서를 기획·출간했고, 관련해 스무 번의 연찬회를 개최했다. 그에게 소회를 묻자 “(간화산)수행으로 인연돼 ‘수행’으로 연찬회까지 하게 됐다”면서 “저는 수불 스님의 원력을 실무적으로 구현하려 한 일꾼”이라고 술회했다. 스스로 ‘일꾼’을 자처하며 겸양했지만, 20권의 총서와 20회의 학술연찬회를 이끈 중심에는 박 소장이 있다.

밝은사람들연구소도 처음에는 여느 학회와 비슷했다. 2006~2007년까지는 1년에 2회 학술세미나를 열고, 행사장에서 학술자료집을 배포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이 대회장에서 나와도 널리 전해지지 못했고, 자료집은 방치됐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밝은사람들 총서’ 발간이다. 연찬회 주제에 맞는 전문학자를 섭외해 논문 원고를 청탁하고 이를 총서로 묶어 출간해 연찬회의 자료집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학술자료집이 방치되고 내용이 유포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방식으로 바꿨죠. 저자 이름으로 총서가 출판되니 책임감이 커지고 논문 완성도도 자연스레 높아졌습니다. 이 방식이 총서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핵심이었고, 연찬회의 질도 함께 올라갔죠.”

총서를 발간하기 위해서는 주제도 변화해야 했다. 키워드 같은 주제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필진도 불교 외에 철학, 심리학 등 인접학문으로 확장됐다. 

“불교는 ‘괴로움과 그 탈출’이라는 인간학적 문제를 다룹니다. 욕망, 몸, 행복, 죽음, 마음 등은 불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류 전체의 이슈지요. 그 실체에 다가가려면 철학·심리학·정치·문화 등 인접 학문과 같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연구소의 사업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펜데믹을 연구소도 피해갈 수 없었다. 

“코로나라는 파고를 넘기 위해서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습니다. 그렇게 팬데믹을 버텼죠. 하지만 끝난 뒤도 원상회복은 어렵네요. 본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공연장의 240석을 가득 채웠는데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편하게 보게 되니 현장 참여가 좀 줄었어요. 그래도 100여 명 이상은 꾸준히 연찬회장을 찾습니다. 주위에서는 별도의 학회원이 없는데도 이 정도 학술연찬회에 사람들이 찾는 것은 선방하는 거라고 합니다.”

‘수행’ 주제 총서는 오랜 숙원
올해 20회 연찬회의 주제는 ‘수행, 초탈인가 치유인가’로, 밝은사람들연구소는 ‘수행’을 대주제로 3년간 학술연찬결사를 진행한다. 11월 29일 동국대 남산홀에서 열리는 올해 연찬회에는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 스님, KAIST 명상과학연구소장 미산 스님을 비롯해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 권석만 서울대 명예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수행 전반에 대해 조명한다.

“밝은사람들 총서 20권의 주제를 ‘수행’으로 하겠다는 계획은 오래전에 세워놓았습니다. 총서 20권을 ‘수행’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권으로 끝내기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아까웠어요. 앞으로 3년간의 학술연찬회와 총서 발간을 통해 수행의 뿌리부터 한국불교의 전통까지 체계적으로 펼쳐 보고 싶습니다.”

올해 연찬회가 ‘수행’의 면면을 큰 틀에서 다뤘다면 내년부터는 세부적인 접근이 이뤄진다. 2026년 11월에 열릴 연찬회에서는 ‘지관, 따로 닦나 함께 하나’를 주제로 초기·대승불교와 티베트·중국·한국불교, 종교학, 심리학 등의 관점에서 불교 수행의 핵심인 지관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2027년 11월 개최되는 연찬회에서는 ‘간화, 전통의 계승인가 창발적 혁신인가’를 주제로 초기·선불교와 불교학, 종교학, 심리학 등의 연구를 통해 간화선의 면면과 그간의 연구 현황들을 조명한다. 연구소가 추진하는 3년간의 대장정에는 월암 스님, 미산 스님을 비롯해 정준영·이필원·권석만·박성현 교수 등이 주요 발제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수행을 어떻게 개념 짓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초기불교의 ‘바와나’는 마음 개발(Bhvan)을 뜻하며, 현대 명상(Meditation)은 사유 또는 치유 중심입니다. 서구 명상 역시 자본주의 영향 속에서 치유·스트레스 관리에 중심을 두고 있죠. 그래서 ‘맥마인드풀니스’와 같은 비판도 함께 수반되는데, 최근 서구 심리학계 역시 한계를 인식하고 자비·지혜 쪽 논의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 같은 내용들을 연찬회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박 소장에게 “‘수행’을 끝으로 총서를 회향하냐”고 물었다. 그는 “수불 스님의 최종 결정에 따르겠다”면서 조심스레 “3권을 더해 총 25권으로 총서 발간 불사를 회향하고 싶다”고 서원했다. ‘수행’과 연관·확장된 주제로 총서를 더 내보고 싶다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수행입니다. 수행의 스펙트럼은 넓어야 합니다. 기사 쓰는 것도, 축구도, 연애도 마음 자세에 따라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만 수행이다’라고 하면 불교를 스스로 좁히는 것이지요. 삶 전체가 수행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싶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총서나 연찬회, 동영상을 접해 삶이 개선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연구소를 창립하신 수불 스님의 원(願)이며, 저의 원이기도 합니다.”

밝은사람들 이끈 주역들

‘이고득락’ 화두, ‘수행’으로 새 장 열다
20번째 총서연찬회…3년간 수행 주제로

밝은사람들연구소의 총서 발간과 연찬회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1월 14일 서울 안국선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김시열 운주사 대표, 박찬욱 소장, 수불 스님, 미산 스님, 한자경 교수(왼쪽부터).
밝은사람들연구소의 총서 발간과 연찬회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1월 14일 서울 안국선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김시열 운주사 대표, 박찬욱 소장, 수불 스님, 미산 스님, 한자경 교수(왼쪽부터).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몸, 마음 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 “깨달음, 궁극인가 과정인가.”

밝은사람들연구소(소장 박찬욱, 이하 연구소)는 2008년 총서 첫 책과 연찬회를 시작으로 매년 불교에 바탕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 왔다. 

올해는 스무 번째를 맞아 ‘3년 결사’를 선언했다. 11월 ‘수행, 초탈인가 치유인가’를 시작으로 내년 ‘지관(止觀), 따로 닦나 함께 하나’, 2027년 ‘간화(看話), 전통의 계승인가 창발적 혁신인가’를 주제로 ‘수행 3부작’ 연찬회를 개최키로 한 것.

그간 총서 발간과 연찬회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11월 14일, 서울 안국선원에 모였다. 2006년 연구소 설립을 제안한 수불 스님(안국선원장)과 실무를 맡고 있는 박찬욱 연구소장, 초대 연찬회 좌장이자 발제자로 참여하고 있는 미산 스님(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 현 연찬회 좌장인 한자경 이화여대 명예교수, 총서 출간을 맡고 있는 김시열 운주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수불 스님은 “불교가 사회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을지, 종교와 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연구소를 설립했다”며 “20여 년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건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원력 덕분”이라고 인사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수불 스님은 특히 간화선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스님은 “간화선으로 올바른 지혜가 열리면 대긍정의 사고가 가능해지고, 대긍정의 사고로 화합의 바탕을 열 수 있다”며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간화선으로 통찰력을 기르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지혜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산 스님은 “1회부터 4회까지 좌장을 맡은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인문사회자연과학적 핵심어들을 불교 전통 내에서 다룸으로써 학문 간 소통을 시도해 보고자 했고, 충실하게 내용을 채워 왔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특히 수행자로서 불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에서 무심(無心)으로 지원해 주신 수불 스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찬욱 소장은 연구소의 지향이 ‘이고득락(離苦得樂)’임을 분명히 했다. 박 소장은 “스무 번째 연찬회 주제를 ‘수행’으로 선정한 것은 수행 전통을 살펴보고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수행 방편을 모색함으로써 각자에게 알맞은 수행은 무엇인지 사색해 보기 위함”이라며 “이러한 작업이 우리의 인생 항로의 나침반을 점검하고 이고득락으로 나아가는 걸음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자경 교수는 ‘수행, 초탈인가 치유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수행은 초탈과 치유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중도”라며 “초탈의 지향점이 곧 치유의 출발점이 되고, 치유의 완성점이 곧 초탈의 출발점이 된다. 초탈 없이 치유는 불가능하고 또 치유 없이 초탈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진속불이(眞俗不二)의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의의를 짚었다.

연구소는 여타 학술단체와 달리 책을 먼저 출간한 후 연찬회를 연다. 참가자들이 미리 발제문을 읽고 현장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그동안 스님과 불교학자뿐 아니라 종교학심리학물리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총 63명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각 분야 최고의 필진”이라는 연구소의 소개처럼, ‘밝은사람들 총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세종도서 학술부문,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또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연찬회 주요 장면을 유튜브로 공개해 논의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번 연찬회는 불교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한편, 11월 29일 오전 10시 서울 동국대 남산홀에서 열리는 연찬회에서는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불교학과 교수가 ‘수행과 명상의 현대적 의미’, 월암 스님(한산사 용성선원장)이 ‘선의 수행과 깨달음’, 미산 스님(KAIST 명상과학연구소장)과 엄성민 데이터리퍼브릭 대표가 ‘불교수행과 명상과학: 초탈과 치유의 메타 융복합적 통합’, 성혜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신성한 독서(Lectio Divina)와 수행 전통의 통합적 이해’,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구도적 수행의 심리학’을 발표한다. 
여수령 기자 spero0821@hyunbul.com

밝은사람들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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