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정진력

인류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날씨 이야기 이다. 아무리 낯선 자리라 해도 서로 가장 편한 대화가 날씨이기 때문이다. 웬 폭우가 전국을 강타한단 말인가. 만약 비가 시나브로 내렸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쉼 없이 거푸거푸 내린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낳았다.

우리말에 ‘낙숫물이 섬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다. 일을 함에 중단 없이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그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정진의 위대함을 역설한 것이라고 본다. 레크레이션은 단순히 오락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단어의 구성으로 보아 재창조 라는 뜻이다. 이미 세상에 나왔거나 이룩된 것을 유용하고 이익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레크레이션이 의도하는 바 일 것이다. 또 rebirth를 보자. 재생이나 환생이란 말이다. 삶의 대열에서 낙오되었다 본 궤도에 오를 경우 다시 태어났다고도 한다. 같은 육신을 놓고 어떠한 정신이 부여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정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여실히 드러낸 말이 정진이 아닐까 한다.

도량에 복숭아나무 두 그루가 봄이면 담홍색의 자태를 드러낸다. 요사이는 열매를 맺어 매일 크기와 굵기, 색의 농도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연약한 꽃잎이 변하여 열매를 맺었다. 거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저 복숭아 똘기는 언젠가는 불그스름한 빛깔로 익어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긴 시간도 필요하고 온도와 습도도 조절해 갈 것이다. 마침내 수밀도(水蜜桃)가 되어 복숭아화채로 올려 질 것이다. 여기서 또 부단한 정진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정진(精進)을 범어로 vīrya 라고 한다. ‘용기, 용맹, 힘’을 뜻한다. 정진력의 력(力)은 bala 이다. ‘힘, 정당함’의 뜻이다. 동사는 bal 로 ‘숨쉬다, 곡식을 저장하다, 부를 지키다’는 뜻이 있다. 힘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잘 단련된 근육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흔한 숨 쉬는 행위가 힘이라니 인도인의 사유세계가 우리의 석고화된 머리를 일깨운다. 단순한 숨, 들숨과 날숨이 어찌 힘이 될까.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부처님의 수식관을 상기시키면 의구심은 쉬 풀린다.

정진력이란 곧 숨쉬기에서 용기와 용맹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 어원 풀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밀림이나 설산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그 단순한 호흡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만끽해 본다. 정진의 힘은 단순히 악을 쫓고, 선을 닦기 위한 노력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의기는 세상을 뒤덮을 만 하다는 뜻의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한 항우(項羽) 장사가 육체의 힘을 드러냈고, 로마 공화국의 최후를 빛나게 한 위대한 정치가 키케로(Cicero)는 말의 힘을 보였다. 그리고 침묵으로 정진력을 드러낸 부처님의 정신의 힘은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갖는다.

인도에서는 인생에는 네 단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젊음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젊음을 그들은 가장 재미없다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초연함이다. 세상사에 초연하고 생존 경쟁으로부터 벗어나 진리를 탐구하고 삶의 근원을 공부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도인이 되는 것이다. 걸림 없는 삶이다. 인도인들은 태생적으로 광대한 우주의 섭리를 거역하고자 하지 않았다. 생노병사의 싸이클에서 벗어나고자 허둥거리지도 않았다.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 순환의 법칙을 숭고하게 수용하였다. 슬기로운 인간의 예지가 엿보인다.

정진이라고 하면 채워지지 않았던 것을 채우게 된다고 가감법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또 뭔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의 충만함으로 이해하려고만 할 일도 아니다. 참된 정진이란 채우는 작업만이 아니라 가득 찼기에 포만감으로 주변을 볼 수 없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없었던 우치함을 일깨우는 각성제쯤으로 이해해 보자. 그렇게 되면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충족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모든 경기장에서 승리하고자 출발점에 서 있는 선수의 모습을 그려 본다. 얼마나 가슴이 콩닥거리며 전신에 식은땀이 흐를까. 반면에 관중석에 앉아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의 여유로움에서 느끼는 기쁨은 더 클 수도 있다.

허영심에 의해 수요가 발생하는 현상을 베블린 효과(Veblen effect)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베블린의 설이다. 예컨대 다이아몬드는 비싸면 비쌀수록 여성의 허영심을 사로잡게 된다고 한다. 우리사회가 점점 짝퉁이 범람하고 있는 현상도 다름 아닌 허영심을 부추긴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본다. 정진의 힘은 베블린 효과도 이내 잠재울 수 있는 묘약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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