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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붓다를 만나다] 22.순헌 황귀비가 피워 낸 연꽃
흑백 사진 속에는 화려한 두 폭 가리개를 배경으로 궁중 예복을 입은 여성이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서 있다. 어여머리를 하고 홍원삼에 대란 치마를 착용해 예를 갖춘 모습이다. 사진 속 인물은 만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궁녀로 입궁해 황귀비라는 조선 시대 내명부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위에 올랐던 순헌 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이 여인의 지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구한말 역사의 파고를 정치적 감각과 영민함으로 헤쳐 나가며 나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11-14 10:43 -
[그녀, 붓다를 만나다] 21.개금불사로 드러난 나인의 발원
궁녀(宮女)는 궁중에서 제왕과 그 가족을 시중하고 각종 사무와 살림을 맡았던 여성 관리를 일컫는다. 궁 안에서 일하는 관리이기에 궁관(宮官), 여성의 몸으로서 녹봉을 받는 관리이기에 여관(女官)이라고도 불렸다. 궁녀는 어린 나이에 입궁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궁궐의 각 처소에 배치돼 왕실의 일상생활을 책임졌다. 그뿐만 아니라, 궁녀는 왕실 식구들의 종교 생활에서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왕실의 명을 받아 도성 안 구중궁궐과 심산유곡의 사찰을 왕래하며 불사의 매개자로서 활약하는 한편, 규제와 금기 속에 살아가는 삶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10-31 10:20 -
[그녀, 붓다를 만나다] 20. 불화로 피어난 ‘금지옥엽’의 마음
‘황금 가지와 옥 잎사귀’, 이처럼 귀하고 어여쁜 존재가 또 있었을까. 바로 임금의 딸들을 일컬음이다. 조선 시대 임금의 딸은 왕비가 낳은 적녀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로 구분됐다. 이들은 태어난 직후에는 아기씨라 불리다가 예닐곱 살이 되면 정식으로 봉작됐다. 열 살 무렵이 되면 혼례를 올리고, 성년인 16살쯤 되면 궁을 나와 남편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공주는 ‘왕실 여성’이라 하면 바로 생각나는 존재지만 의외로 내명부(內命婦)가 아니라 외명부(外命婦)에 속한다. 공주는 왕과 왕비, 대군과 마찬가지로 품계를 초월한 무품(無品)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10-17 15:52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9. 왕후의 붓, 사경 불사로 여물다
한국미술사에서 여성 참여와 흔적이 가장 많이 확인되는 분야는 단연코 불교미술이다. 각종 불교 조형물의 조성 기록에는 후원자로서 동참한 여성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불심이 깊고 큰 재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왕실 여성들 역시 불사의 대시주(大施主)로서 발원문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점에서 인목 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1632)는 매우 특별하다.첫째, 인목 왕후는 남성 문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서예로 이름이 높았던 명필이었다. 둘째, 그녀는 사경(寫經)을 발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손수 서사(書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9-26 11:28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8. 복장이 되살려 낸 잊힌 왕후
1622년(광해 14), 임진왜란의 병화가 휩쓸고 간 조선의 수도 한양 도성에서는 재건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해 봄, 한양 도성 안의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 역시 큰 불사(佛事)의 회향을 앞두고 분주했다. 무려 불상 11존과 불화 7점을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 장인들이 동시에 조성해 봉안하는 장대한 규모의 불사였다. 그러나 도성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이 대불사는 당대의 문헌에는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역사에서 잊힌 이 불사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인 2007년의 일이다. 2007년 당시 서울 종로구 창신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9-12 10:20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7. 탑 안에 깃든 간절한 기도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雲吉山) 자락에는 수종사(水鍾寺)라는 아담한 사찰이 있다. 수종사의 창건주나 연혁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1459년(세조 5)에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에 거둥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왕실과 관련이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사람들에게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수종사를 찾아 수려한 경관을 노래하고 붓으로 남긴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또한 수종사는 다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8-29 10:15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6. ‘암탉이 울 때’: 문정 왕후와 불교 중흥
“사신은 논한다. 윤씨는 천성이 강한(剛狠)하고 문자(文字)를 알았다 …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尹氏)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4월 6일 임신 두 번째 기사)1565년(명종 20) 4월 창덕궁 소덕당에서 문정 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1565)가 승하한 날, 사관들은 위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문정 왕후가 누구인가. 문정 왕후는 조선의 제11대 왕인 중종(中宗)의 계비(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8-15 09:51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5. 소혜 왕후의 사홍원과 불서 간행
의경 세자(懿敬世子)의 빈, 세조(世祖)와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맏며느리이자 성종(成宗)의 어머니, 그리고 연산군(燕山君)과 중종(中宗)의 친할머니로 기억되는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동시에 공혜 왕후(恭惠王后), 연산군의 모후인 폐비 윤씨(廢妃 尹氏), 중종의 모후인 정현 왕후(貞顯王后)의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바로 인수 대비(仁粹大妃)로 더 잘 알려진 소혜 왕후(昭惠王后, 1437~1504)다. 부계, 그것도 왕계를 기준으로 짜인 이 촘촘한 관계망 속에 그녀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며느리, 어머니이자 시어머니, 그리고 할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7-25 10:43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4. 금하지 못한 왕실 여성의 ‘불심’
“나라에서 행하는 불사는 내가 이미 파(罷)하였으나, 궁중의 부녀들이 그 아들의 수(壽)를 연장하기를 바라서, 사재(私財)를 써서 혹은 예참(禮懺)을 베풀고 혹은 수륙재를 행하니, 금하고자 하나 금하지 못한다.”( 권1, 태종 1년 1월 17일 정축).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시독(侍讀, 경연에서 경서를 읽고 강론하는 역할을 담당한 정5품 관직) 김과(金科)에게 위와 같이 고충을 피력했다. 태종 즉위 원년, 즉 1401년 1월의 일이니 조선이 건국한 지 불과 10년도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7-11 10:40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3. 궁궐 깊숙한 곳의 불교 신앙처, 내원당
성리학을 기치로 건국된 조선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부처에게 기원하고 부처의 나라에 다시 태어나기를 꿈꿨다. 조선을 세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야말로 이를 제일 잘 보여주는 인물일 것이다. 태조는 1394년 한양부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새 수도에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종묘와 궁궐, 성곽 등을 건설하는 한편, 부처에게 왕실의 복을 비는 크고 작은 원찰(願刹)을 건립하도록 했다. 왕실 원찰은 수도의 건설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성리학자 신료들의 구상에는 없었던 불교 공간이었지만, 궁궐 안에는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6-27 10:25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2.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바치는 노래
유교를 국시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수십 차례 인쇄되고, 널리 읽힌 불교 경전이 있다. 바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하 〈부모은중경〉)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는 경전’이란 제목과는 달리, 〈부모은중경〉은 중국에서 불교가 토착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립된 위경(僞經)이다. 삭발과 출가, 그리고 왕과 부모에게 예경을 올리지 않는 불교의 모습은 효(孝)를 중시한 중국인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의 불교도들은 효를 강조한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했고, 당나라 초기에 이르면 유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6-13 10:27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1. 미륵 세상을 꿈꾸며
1932년 산불 저지선 공사가 진행 중이던 금강산 월출봉(月出峰)에서 한 석함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석함 안에는 금속과 백자 기물 등으로 구성된 사리장엄구가 모셔져 있었는데, 그중 백자발 한 점의 안쪽에는 대명 홍무 24년(1391년, 공양왕 3년) 4월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미륵을 기다리며 금강산의 비로봉(毗盧峯)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함께 발원하여 봉우리에 사리장엄구를 모신 사람 중에는 후일 조선을 건국하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그의 둘째 부인인 삼한국대부인 강씨(三韓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5-30 10:25 -
[그녀, 붓다를 만나다] 10. 모든 차별 넘어 부처님 나라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복장(腹藏)은 의례를 통해 조형물인 불상 안에 부처를 모시는 일이다. 의례의 결과 불상 안에 모셔진 여러 물목들도 복장이라고 부른다. 복장을 지닌 고려시대의 불상은 현재 20여 건에 달하며, 불상의 복장 조사가 지속됨에 따라 향후 그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복장에서 발견되는 기록유산은 전적과 사경(寫經), 다라니(陀羅尼), 발원문(發願文) 혹은 조성기(造成記)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 불사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역시 발원문이다. 복장에서 발견되는 발원문에는 통상 발원의 목적, 불보살의 존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5-16 11:09 -
[그녀, 붓다를 만나다] 9. 불상 안에 담긴 그녀들의 마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발원문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기슭에 자리한 장곡사는 독특한 가람배치로 유명하다. 산골짜기라는 지형을 따라 위, 아래에 각각 대웅전이 배치되어 있다. 골짜기 위쪽 상대웅전에는 불상 3존이, 조선시대에 건축된 하대웅전에는 불상 1존이 모셔져 있다. 그중 하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은 고려후기인 14세기 중엽에 조성된 약그릇을 든 약사여래이다. 균형감 있는 신체 비례와 단아한 상호, 눈 밝은 이들이 ‘한국 최고의 미남불상’이라고 부른 것이 절로 납득이 되는 불상이다. 어디 외모뿐이던가. 불상은 뛰어난 역량의 장인이 주조한 듯, 내외부에 주조과정에서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4-28 18:00 -
[그녀, 붓다를 만나다] 8.향을 사르며 올리는 기도: 고려 왕후가 발원한 향완
여러 불교 경전에서는 불보살에게 올리는 대표적인 공양물의 하나로 향(香)을 언급한 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향을 피우는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아도기라(阿道 基羅)’ 조에서 볼 수 있듯이 향은 불경, 불상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 의례, 문화, 신앙 행위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불에 사르면 풍겨 나는 강한 향내는 신성(神聖), 곧 삼보(三 寶)에 정성을 통하게 할 만큼 효과적인 공양 물로 여겨졌다. 불자들에게 있어 향 공양은 반드시 영험을 얻을 수 있는 방편이라 널리 믿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4-11 09:23 -
[그녀, 붓다를 만나다] 7. 모든 여성의 수행이 용녀와 같기를: 어느 고려 귀부인의 염원
〈묘법연화경〉(이하 〈법화경〉)은 모든 존재에게 방편을 베풀어 성불의 길로 이끄는 경전이다. ‘경전의 왕’이라는 별명이 바로 수긍될 정도로 수승한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와 비유를 통해 누구에게나 그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법화경〉의 묘한 이치이기도 하다. 수많은 불교 경전 중 〈법화경〉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가장 널리 믿어졌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게다. 〈법화경〉을 이루는 총 28품(品)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중 제19품인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에서는 〈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3-28 10:09 -
[그녀, 붓다를 만나다] 6. 수만 개의 조각에 담긴 불심: 원나라 황후와 고려 나전경함
위로는 왕실에서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고려 사람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불교를 숭상했다. 거란과 몽골 등 외적들의 잦은 침입은 고려 사람들이 불교에 절실하게 귀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의 공덕으로 국난(國難)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고려 현종(顯宗, 재위 1009-1031) 때에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大藏經)을 최초로 판각하여 인쇄, 간행했다. 이 대장경판이 고종(高宗, 1213-1259) 때인 1232년에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금 경판을 마련하여 대장경을 간행하는 국가적인 대불사가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03-14 10:38 -
[그녀, 붓다를 만나다] 5. 사찰에 깃든 여왕의 향기: 분황사와 선덕여왕
경주 분황사(芬皇寺)는 634년에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에 의해 창건되었다. ‘분황’이란 독특한 사명에 대해서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절’, ‘세상의 괴로움과 번뇌에 물들지 않은 분타리(芬陀利, 흰 연꽃)와 같은 부처님의 도량’, ‘향기로운 임금의 절’, ‘여왕의 사찰’과 같은 다양한 풀이가 있다. 어느 것이나 이 절이 선덕여왕을 위해서 건립되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창건 당시 분황사 옆에는 왕실과 나라를 위해 창건된 황룡사가 이미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되는 해, 선덕여왕이 막대한
이승혜 리움 큐레이터02-28 11:02 -
[그녀, 붓다를 만나다] 4. 백제 왕후 ‘여신성불〈女身成佛〉’ 발원 담아 사리 공양하다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아래 평탄한 대지 위에는 미륵사지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사는 고대의 다른 사찰과는 달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창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고, 사지의 서쪽 영역에 거대한 규모의 석탑이 남아 있어 일찍부터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미륵사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해방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전면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2001년에서 2010년까지 행해진 미륵사지 서탑 해체보수 조사는 백제의 역사와 미륵사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2
이승혜 리움미술관 큐레이터02-14 12:59 -
[그녀, 붓다를 만나다] 3. 소중한 불사리 공양…20자에 담긴 공주의 마음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의 일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나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흥법편 ‘난타벽제(難陀闢濟)’에 의하면, 외국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晉)나라에서 오니 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이고 공경했다고 한다. 침류왕은 이듬해 봄에 수도인 한산주(漢山州, 지금의 서울)에 절을 세우고 승려 10명의 출가를 허락했다. 비록 짧은 기록이지만 백제 왕실에서 스님들을 외호하고 불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0명의 스님을 출가시킨 것은 백제에서 법등이 이어
이승혜 리움미술관 큐레이터01-24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