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화택

잊을 만하면 화재가 일곤 한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의식주에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불을 이용하여 화식을 하게 되었고 불을 이용하여 극심한 추위를 극복할 수 있었다. 불은 인류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했다. 불은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문화 형태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인도에서 불의 신을 agni 라고 한다. ag에서 나온 말이다. ag 는 ‘꼬불꼬불 움직인다’ 던가 혹은 ‘바람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참 실감이 나는 풀이 이기도 하다. 불을 피워보면 불기운은 똑바로 오르지 않고 하늘거리며 불길이 오른다. 농부가 바람 없는 날을 택하여 논두렁 밭두렁을 태워도 불길만 닿으면 바람이 일어 생각 같이 불길이 가지 않는다. 마침내 실화(失火)로 뜻하지 않게 많은 재산과 인명을 잃기 까지 한다.

경전에서 중생세계를 불타는 집에 비유하여 가르치고 있다. 특히 <법화경> 제3 비유품에서 ‘삼계는 화택(火宅)’이라 비유하여 중생을 구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화택은 범어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ādīp 는 동사로 ‘불타다’는 뜻이다. āgāra 혹은 agāra 는 ‘집’이나 ‘아파트’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위 단어를 합성하여 불타는 집, 화택(ādīptāgāra)이 되었다.

석존은 제자 사리불에게 말했다. 부유한 장자(長者)가 있다. 그 장자의 집은 매우 낡아서 벽과 담장은 군데군데 무너지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나 차츰 집 전체로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이 불타는 집에서 이미 나와서 안전한 곳에 있지만, 아이들은 불타는 집안에서 놀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아이는 불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떤 아이는 알았건만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불이 곧 몸에 닿아서 그 고통을 한 없이 받으련만,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집 밖으로 나오려는 생각도 않았다. 속이 탄 장자는 큰 소리로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나오거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도 변함없이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믿지도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나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또 불이 어떤 것이고 집이란 어떤 것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집은 이미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타고 있으니 저 자식들을 지금 구해내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타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제 교묘한 방편을 써서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어야지 다른 방법이 없구나. 그리하여 장자는 아이들이 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으리라. 진귀한 것이라든가 재미있는 것이라든가, 장난감 따위에는 반드시 마음이 끌리는 법임을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좋아하여 가지고 싶지만 좀체로 얻기 어려운 장난감이 여기 있다.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들이 대문 밖에 있으니 가지고 놀도록 하여라. 너희들이 불타는 이 집에서 빨리 나와서 너희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가지도록 하여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겠노라. 그때 여러 자식들은 장자가 말하는 진귀하고 좋아하는 장난감이 항상 마음속 어디인가에 바라고 있던 것과 꼭 들어맞았으므로 ‘빨리 가야지’하고 서로 밀치며 앞을 다투어 그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왔다. 마침내 아이들은 주신다던 수레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장자는 아무런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소가 끄는 큰 수레를 주었다.

여기서 장자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석존이다. 아이들은 중생이다. 석존은 생노병사, 근심, 고뇌, 슬픔에 휘감겨 있는 중생을 위하여 이 세상에 몸을 나투신 것이다. 불타는 집은 사바세계이다. 사바시계는 고뇌에 의해 불타고 있고 원망과 원한에 의해 불타고 있으며 슬픔에 잠겨 불타고 있다.

<법화경>이 편찬된 시기는 수세기 경과 하였으나 인간의 괴로움은 아마 백팔 번뇌에서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인간이 무심코 저지른 환경오염 문제만 해도 그렇다. 환경오염은 지구 온난화를 불러왔으며 무수히 많은 질병을 유발시키고 말았다. 참 격세지감이 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제 자리에 있건만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잘못 이용하여 물까지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끓여 먹거나 생수를 사서 마시는 세상이 되었다. 자업자득의 이치가 어김없이 통용되는 것이다. 아니, 먼 외국에서 물을 수입하여 마시는 나라가 되었으니 여기서 깊은 각성이 있어야 한다.

어느 위정자는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국격을 높이기 위하여 꼭 무슨 기구가 신설 되어야 하는 것만도 아니라고 본다. 우선 위정자는 국민이 볼 때 눈살 찌푸려지지 않는 바른 언행이 요구 된다. 그런 품격 높은 모습을 본 국민은 대대적인 캠페인이 없어도 그냥 따르게 될 것이다. 교통질서, 공중도덕 모두 그렇다. 부모가 출 퇴근길에 무심코 버린 휴지와 담배꽁초를 학교에 간 자녀들이 길 거리에 나와 줍는 모습을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건물에 불이 붙어 날름거리는 화염은 소방차가 출동하여 진압한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에 치성하고 있는 욕망의 불은 누가 끌 것인가. 마음의 불을 끄는 소방차를 중생은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기다리기만 하다가 그의 삶은 이러구러 흘러 갈 것이다. 기다릴 것이 아니고 내 불은 내가 꺼야 하는 숙제를 누구나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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