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0:52 (수)

[사설] 생명이 최우선인 사회를 향한 ‘경계의 목탁’

시대적 고통 외면 않는 자비 실천
국가 책임 강조실질적 대책 촉구
추모 넘어선 실천, 시대적 책무

지난 10년 동안 하루 여섯 명이 일터에서 귀가하지 못했다는 비극적인 통계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다. 이러한 비극을 더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선언이 조계종이 11월 18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한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였다.

이날 법석은 희생된 모든 이의 이름을 다시 불러 기억하고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불교계의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한국 노동자뿐 아니라 스리랑카·네팔·미얀마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50여 명의 위패가 함께 모셔진 사실은, 우리 사회가 누구의 노동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산재는 국적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회의 약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이날 “생명보다 앞서는 이윤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불교가 시대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나아가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자비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산재 예방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사회 안에서 실천하는 역할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불교계의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종교가 사회적 고통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보여 준 무거운 메시지다.

위령재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국정 책임자가 응답했다는 점이다. 위령재에 앞서 유가족들을 만난 김민석 국무총리는 “일하다 희생된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산재 문제를 개인의 불운이나 사업장의 과실로만 축소해 온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 차원의 인식 전환으로 읽힌다. 유가족들의 간담회 요청에 “직접 듣고 해결할 길을 찾겠다”고 약속한 점도 주목된다.

이번 위령재가 유족들에게는 치유의 한 걸음이었다면, 우리 사회에는 ‘경계의 목탁’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호명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그들의 슬픔은 곧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아픔이자 과제임을 일깨웠다. 유족 대표는 발원문에서 “말이 아닌 실질적인 산재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더 이상 미뤄 둘 수 없는, 정부국회기업시민사회가 함께 응답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불교는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보고, 고통받는 존재 앞에 먼저 다가가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조계종이 산재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희생자와 가족을 위로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행보는 한국 종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제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생명 존중을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세우고, 산재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문화적 변화에 실질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거듭되는 희생 앞에서 추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이번 위령재가 남긴 울림이 산업현장의 현실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또한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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