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6. 대화법 특강: 존중의 햇살 (3)

‘동감’ 아닌 ‘공감’으로 마음 주고받기

속마음 꺼낼 데 없어 관계 단절
안전하게 속마음 꺼낼 수 있도록
주의 기울이고 기다리는 대화여야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

관계 회복을 타이틀로 한 방송국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해 서로 오해가 깊어져 단절된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 말없이 바라보다 어렵게 속마음을 꺼내 놓고는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엉켰던 마음을 풀어냅니다. 하나 신기한 것은 그간 상대를 향했던 분노와 서운한 마음이 속마음을 꺼낸 이후에는 금세 상대에 대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게 한 치의 예외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분노와 슬픔, 외로움은 실은 안전하게 속마음을 꺼낼 데가 하나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속마음을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우리 대화법 특강의 전부입니다. 가시투성이인 밤송이를 자연스럽게 벌어지게 해 알밤을 떨어뜨리는 것은 오직 따뜻한 햇살과 시간뿐입니다. 경청하라는 대화법 안내가 아니라, 그것을 직접 실천할 때만이 따뜻한 햇살이 되기에 굳이 ‘존중의 햇살’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가끔 교실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A4용지 하나를 뭉쳐 종이공을 만듭니다. 그리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캐치볼을 합니다. 강속구와 변화구를 던져 상대를 압도하고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오랫동안 상대와 잘 주고받을까를 궁리합니다. 이런 캐치볼은 마치 마음을 주고받는 일과 같습니다. 그 순간 온전히 상대에게 주목하지 않으면 말속에 담긴 메시지와 속마음을 받아낼 수 없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공감의 의미를 착각해 공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던지려고만 합니다. 자기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서로의 친밀감을 내세워 상대에게 던져버리고는 그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화는 캐치볼처럼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아가는 일입니다. 안전하게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상대의 공을 받지 않고는 자기의 공을 던질 수 없습니다. 

공감은 공명하는 일입니다. 상대가 기타 줄 E를 튕기면 그대로 E의 음을 느끼고, A를 튕기면 그대로 A를 느끼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상대가 튕긴 눈빛, 표정, 목소리 톤의 기타 줄 음에, 있는 그대로를 함께 느끼면 됩니다. 반면 동감은 상대의 의견이나 감정에 동의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공을 던지기 위해 내심 받는 척할 뿐입니다. 상대의 공을 자꾸 떨어뜨리기에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상사에게 친절하게 인사했는데 못 본 척 지나쳐서 속상했어.”라는 말에 “맞아, 맞아. 내가 그 기분 알지.”처럼 어느새 화제의 주체를 자기로 바꿔버립니다. “정말 완전 진상이네.” 같은 말도 잘 살펴보면 감정의 초점을 상대에게서 자기감정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이 한마디면 됩니다.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했는데, 많이 속상하셨겠어요.”처럼 동료끼리 잘 지내고 싶은 욕구를 함께 읽어줘도 좋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요?”라고 확인하면 됩니다. 대화가 어렵다면, 늘 캐치볼을 생각해 보세요. 공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기다려주는 일이 나와 당신을 위한 사랑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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