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으로 소유하는 관계는 ‘왜곡된 사랑’
알콜중독·폭력 가정 자녀, 같은 행위 ‘대물림’
폭력 가정 남아, ‘힘’ 동경… 약한 가족에 투사
‘보이지 않는 충성심’ 구조 파악해야 연쇄 끊어
오늘은 ‘힘’과 ‘연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 상담에는 ‘보이지 않는 충성심’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오랫동안 상담을 하면서 알콜중독, 폭력, 도박, 외도 등 어린 시절 아이를 힘들게 했던 부모의 역기능적 행동을 그 자녀들이 커서 그대로 재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들은 가장 싫었던 부모의 모습을 반복하는 걸까요?
술을 마실 때마다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아이는 커서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커서 아빠처럼 술을 마시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릅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혹독한 비난에 상처받은 딸이 커서는 주변 사람들을 혹독하게 비난하고,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강박적인 아빠에게 자란 아들이 강박적으로 집안을 정리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비논리적인 상황이 ‘무의식’적으로 은밀하게 대물림된다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충성심’입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자기의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동경하고, 여자아이는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합니다. 그래 자기가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약한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힘을 경험하려 합니다. 상대에게 굴종을 강요하며 어린 시절 무기력한 자기를 극복하려 합니다. 여자아이는 커서 매를 맞으면서도 그런 남자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가 꼭 어린 시절 매를 맞던, 세상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불쌍한 자기 모습 같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힘’과 ‘연민’이 이렇게 역기능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합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나무가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자라듯이 존재는 사랑의 햇살 없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약한 존재였을 때,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생명의 햇살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소중한 존재를 닮아가려 합니다. 내가 그를 닮아가면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이고, 그가 준 상처도 그렇게 심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내가 나에게 가한 상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용서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을 닮아갈수록 그들이 나를 수용해 줄 것이라는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생명의 근원인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답니다. 부모님을 미워하는 일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사랑은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한 일입니다. 내가 생각한 사랑이 상대를 ‘힘’으로 소유하는 것이거나 ‘연민’을 갖는 일이라면, 그것이 왜곡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면서 반복되는 역기능적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재연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평생 고민하는 핵심 주제들이 숨어있습니다. 유령처럼 출몰하는 고통과 충동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일이 바로 고통의 반복과 재연을 멈추는 길입니다. 더는 이유도 모른 채 무명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고 또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랑의 출발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