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빛이 되는 산책
문학서 시는 ‘창의성의 꽃’
나와 세계를 하나로 연결
자기 성찰로 주인된 삶을
오늘은 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창의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마 저마다 다른 정의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창의성이 서로 거리가 먼 것을 연결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틱낫한 스님의 문장을 한번 읽고 시작해 볼까요?
“그대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는 이 종이 안에 구름이 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 구름이 있다. 이 종이의 존재는 구름의 존재에 달려있다.”
어떤가요? 이제 여러분도 종이에서 구름이 보이시나요?
‘종이’와 ‘구름’이라는 서로 거리가 먼 사물들이, 그 사이에 ‘비’와 ‘나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힘이 바로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시 쓰기’야말로 창의성을 키워주는 가장 멋진 방법입니다.
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시는 A와 B 사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를 찾아 연결해 줍니다. 이것을 ‘은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징검다리는 거리가 너무 멀면 건널 수 없고, 또 너무 가까우면 시시해서 재미가 사라집니다. 어떤 돌을, 어떤 간격으로, 어떤 모양으로 놓아가느냐가 바로 상상력이고 설득력입니다. 거기에서 지은이만의 고유한 사연과 스토리텔링이 드러납니다. 창의성뿐만 아니라 뜻밖에 치유의 효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소설은 갈등과 대립,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 질문에 대답하게끔 합니다. 평론은 작품에서 받은 감동의 이유를 찾아 제시하고, 수필은 시와 소설과 달리 말하고자 하는 ‘원관념’을 형상화를 통해 에둘러 전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문학에서도 시는 창의성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시는 음악과 수학처럼 패턴의 과학입니다. A와 B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고유한 패턴이 생기고, 그동안 이름이 없어 호명되지 못했던 패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은 새로움과 색다름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변신합니다. 시와 음악과 수학이 과학이자 예술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시는 삶을 예술로 만드는 한 방법입니다. 사물 A와 사물 B를 연결하듯, 나와 사물, 나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이 제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시가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길 기도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학원수업과 숙제에 치여 사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길 기도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로, 글로 쓰는 것은 삶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일입니다. 비록 시를 이야기했지만, 실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음미할 때만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이 삶은 빛이 되는 산책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