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예절 준수, 미래 순례자 위한 보시

시코쿠 순례자들이 자주 묵는 다케시마 대사당. 최근 술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는 등 예의 없는 순례자들로 인해 무료로 숙박할 수 있도록 개방된 대사당들이 줄어들고 있다.

아직 밖이 어슴푸레 한데 난데없는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조금 넘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살짝 여니 할머니 한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다.

“오늘은 순례자님이 묵으셨구만!” 시만토 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다케시마 대사당(竹島 大師堂)은 도보순례자들에겐 유명한 숙박 포인트다. 지역에선 오랫동안 주민들이 신행활동의 중심으로 삼아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관리인을 자처하는 할머니는 대사당에서 묵는 순례자들이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조금 어안이 벙벙해 있으려니, 할머니는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장바구니에서 꽃과 과일을 꺼내 불단에 공양을 올리고 합장을 했다. 그제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건다.

다케시마 대사당서 만난 할머니
“예불은 가능하냐” 물어본 이유
예절 없는 순례자 선별하기 위해

술 먹고 고성방가 등 폐해 심각
무료 대사당 폐쇄로 순례자 피해
최소한 예의를 보여야 공생 가능


“순례자님, 혹시 불경 외울 줄 알아요?” 묘하게 말에 가시가 박혀있다. 뭔가 시험을 당하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예, 압니다. 같이 예불 모시겠어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조금 움직여 옆 자리를 내어 주셨다. 불단에 초와 향을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마침 실내이고 하니 먼저 삼배를 올린 후, 좌종을 한 번 치고선 항상 88개소에서 하던 것처럼 예불을 모셨다. 회향문까지 모두 독송하고선 할머니께 합장을 하고 인사를 올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이렇게 예불을 모시나 봅니다.”
“제가 뭘 안다고…. 그저 향 올리고 꽃이나 바꿉니다.”
“그것도 큰일이지요. 덕분에 이렇게 대사당이 깨끗한 걸요.”
“아침부터 대사님이 칭찬해 주시니, 앞으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할머니는 ‘순례자(오헨로상)’이 아닌 ‘대사님(오다이시상)’이라고 나를 부르며, 방금 전까지 가시 박힌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 이유를 들려줬다. 시코쿠의 노인들은 순례자가 곧 코보대사의 화신이라고 믿어 종종 순례자를 공손히 부를 때 ‘대사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요즘 대사님처럼, 제대로 순례하는 이들이 드물어요. 언제부턴가 대사당이 무료 숙소처럼 소문이 나서 며칠을 죽치고 앉아있거나 부처님이 계시든 말든 술을 잔뜩 마시곤 난동을 피웁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덴 이렇게 경을 다 외우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 경도 못 외우면서 법당에서 자느냐고 쫓아내지요!”

순례를 하면서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시코쿠 주민들의 온정에만 기대어 순례자 행색을 한 무전여행자나 노숙인들, 혹은 예의 없는 순례자들로 인해 순례자들에게 열려있던 작은 불당들이나, 무료 숙소들이 상당수 폐쇄됐다. 어느 불당은 본존으로 모시던 불상이 순례자로 가장한 도둑에게 도난당해 순례자들은 물론이요, 그냥 참배하러 가는 것도 막힌 곳이 있다고 들은 적 있다.

할머니는 불단에서 퇴공한 과일과 음료수를 오셋타이라며 보시하시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갔다. 아침 해가 눈부시게 빛나는 가운데 순례가 다시 시작됐다. 38번 콘고후쿠지(金剛福寺)까지는 약 40km, 꼬박 하루를 부지런히 걸어가도 사찰이 열려있는 시간에 도착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다.  

곧장 시만토강을 건너 38번을 향할까 하다가, 여유롭게 걷기로 하고 잠시 딴 길로 샌다. 길을 거슬러 40분정도를 걸어 고츠카 대사당(古津賀大師堂)을 향한다. 전날 치카 씨의 카페에서 꽤 오랜 시간을 죽치고 있었던 터라 참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38번 사찰인 콘고후쿠지를 향해 걷는 순례자의 모습.

야트막한 동산에 감춰진 고츠카 대사당은 다케시마 대사당처럼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는 불당중 하나다. 다만 다케시마 대사당과는 달리 전기나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없고, 편의점도 근처에 없단 이유로 꽤나 외면 받고 있다.

2011년 첫 순례 때 이곳에 묵기위해 나를 포함 세 사람의 순례자들이 이곳에 갔을 땐 이미 초로의 순례자가 짐을 풀어 두었다. 세 사람이 겨우 잘 수 있는 고츠카 대사당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케시마 대사당을 권한 그는 한국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곤 말을 걸었다.

“자네 행색을 보니, 중인가?” 그 순례자는 알고 보니 시코쿠 순례를 수행으로 서원해 12년째 걷고 있던 스님이셨다. 한국에서 왔고, 출가자는 아니지만 불교를 공부하고 있단 간단한 내 소개를 들은 스님은 단박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한국이라, 그렇다면 자네 눈엔 일본 중은 중 같지가 않겠구만?” 뜻밖의 물음에 잠시 당황해 있으려니 스님이 말을 이었다.

“일본 중들은 술은 기본이요, 제일 좋아하는 건 육식에, 여자까지 안아서 아들한테 절을 물려
주지. 그래도 한국은 청정히 계를 지키니, 그런 만행은 없지 않은가.”

스님은 속세에서 일본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부인이 죽고서야 삶이 무상하단걸 깨닫고는 그길로 퇴사하여 출가했다고 이야기했다. 스님은 “젊은이가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 드물다 열심히 정진하라”라고 말하고는 모든 정진의 근본은 지계에 있음을 역설했다.

자리를 떠나기 직전 스님은 내 염주를 가지(加持)해 주셨다. 그때 염주를 이리저리 묶어 기묘한 매듭으로 만들어 돌려주시면서 염주금강저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학인 시절에 우리 은사께 배운 것이지. 요즘 젊은 스님들은 잘 모르는 거라네. 순례하는 동안 조심하게나.”

만약 그날 같이 걷기로 한 일행들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불편해도 그곳에서 스님과 좀 더 이야길 나누고 싶었는데 여의치 못했다. 그런 추억이 깃든 대사당이니 그 어떤 절들을 순례할 때보다 찾아가는 길이 기대됐다.

고츠카 대사당은 전날 아무도 묵지 않았는지 적막감이 감돌았다. 대사당 안의 노트에는 3일전에 누군가가 묵었다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불단에 향을 하나 올리고 합장했다. 잠시 그때 스님이 역설했던 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향이 삼분의 일쯤 타들어 갔을 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38번을 향해 걸어갈 시간이다.

시만토 강을 건너는 시만토 대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38번으로 향하는 기분이 든다. 다리를 건너고선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다. 특히 어제까지 북적이는 인파나, 교통량이 많은 길 옆을  지나다가 한적한 길을 만나니 더욱 적적한 느낌이 든다. 민가나 가게가 드문드문 있지만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길이다.

그럼에도 38번을 향하는 길가로 간간히 떠들썩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해수욕장이나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길가에 보이는 가게나 숙박업소들에도 이를 광고하는 간판들이 제법 보인다.

이 해수욕장들은 시코쿠 순례를 홍보하는 화보에도 자주 등장한다. 푸른 바다 옆으로 펼쳐진 모래사장을 걷는 흰옷의 순례자는 제법 멋있는 그림이다. 나도 그 그림에 혹해 따라해 보자고 해수욕장을 따라 조금 걷다가, 모래의 복사열에 기겁을 하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순례길은 321번 국도를 타고 쭉 내려가는 외길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보면 순례자들과 많이 마주치게 된다. 이런 외길에서는 인연이 됐던 순례자들을 종종 만나는 경우가 많다.

시만토 대교에서 11km 정도 걸어온 곳에 이는 편의점 앞에 잠깐 배낭을 내리고 쉬려니 편의점에서 한 쌍의 순례자가 나온다. 무심코 봤다가 서로 반색을 하며 웃었다. 36번 근처의 국민숙사에서 같은 묵었던 히로시마 부부였다.

“어머 박상! 또 만나네요!”
“그러게요. 정말 인연입니다. 어제는 어디서 묵으셨어요?”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순례자씨! 또 보내요!”

이번에는 누구인가 하고 돌아보니, 아주 점입가경이다. 일전에 자동차 오셋타이를 권한 할아버지였다.

“네, 이번만큼은 못 봐줍니다. 38번까지 태워드릴 테니 타시죠!”

자동차 오셋타이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지만, 이미 같은 사람에게서 한 번 거절했던 전적이 있어 다시 거절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그래도 조금 망설이고 있으려니 아예 내 배낭을 들어서 차로 앞장서신다. 오늘은 결국 이 보시를 받아야 하는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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