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 코보대사가 잠들어 있다

코보대사 노숙한 다리 ‘토요가하시’
“하루가 열흘 같았다”해서 붙여져
다리 위선 지팡이 안 짚는 풍습도

잠시 쉬어가려 들른 길가 대사당서
1920년대 한 순례자의 납경장 발견
시간 달라도 모두 ‘한 길’ 걷고 있다

코보대사가 열흘 밤 같은 하룻밤을 보냈다고 전하는 다리 ‘토요가하시’의 모습. 아래에 코보대사를 모신 제단이 보인다.

순례자들에게 무료 숙소 츠야도를 제공하는 ‘토요가하시(十夜ヶ橋)’는 ‘에이토쿠지(永德寺)’라는 사찰의 별명이다. 토요가하시를 우리말로 옮기면 ‘열흘 밤의 다리’라는 뜻이다. 사찰의 연기 설화에 따르면 코보대사가 시코쿠를 돌던 어느 날 마땅한 잠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다리 밑에서 밤을 지새우게 됐는데 그 하룻밤이 마치 열흘 밤과 같이 길게 느껴졌다고 해서 ‘열흘 밤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리 밑에서 코보대사가 잠을 잔다는 전설에서 시코쿠 순례의 독특한 풍습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다리 위에서는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여 지팡이가 두들기는 소리에 곤히 잠에든 코보대사를 깨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순례자의 지팡이도 코보대사의 화신이라고 믿는 풍습도 같이 전하는 것이다. 함께 순례했던 한 친구는 “지팡이도 대사이고, 다리 밑에 자는 분도 대사면 대체 대사가 몇 명이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이야기를 들은 또 어떤 순례자는 “대낮엔 일부러 지팡이를 두들기며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해가 중천인데 중생을 돌보지 않고 자는 게 대사님이냐”고 맞장구로 너스레를 떨었다.

코보대사가 하룻밤을 지냈다는 전설의 다리는 바로 이곳 에이토쿠지 바로 뒤에 있는 작은 다리로 전해진다. 대사가 비단 이 다리 밑에서만 노숙하지 않았겠지만, 일단 시코쿠 전체에서 특별히 다리 한 곳이 코보대사와 인연이 있는 성지로 여겨지는 곳은 이곳뿐이다.

지금은 비록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걸린 다리이지만, 다리 밑에는 잠들어 있는 코보대사의 상이 모셔져 있다. 대사상 위론 사람들이 이불을 공양 올려 두었는데. 두껍게 쌓인 이불에 도리어 대사가 불편하진 않을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지역에선 코보대사상에 올려두었던 이불을 받아 덮거나 배개로 쓰면 병이 낫는다는 신앙이 있다. 그래서인지 대사상 옆에 “이불이 필요하신 분은 에이토쿠지로 와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 종종 코보대사와 함께 자겠다며 이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는 순례자도 있다고 하는데, 자리를 살펴보니 모기가 많고 비둘기나 짐승의 오물이 여기저기 많이 있어 현실적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다리 밑의 대사님을 뵙고선 츠야도로 돌아와서 아침으로 편의점에서 사온 두부와 김치를 먹는다. 일본에서도 한식이 인기여서 김치 정도는 편의점에서 평범하게 팔고 있다. 다만 맛으로 따지자면 매운 맛이 덜하고 짠맛이 강하다.

간소한 아침을 먹고서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약 32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대사당까지가 목표다. 순례자들이 잘 수 있는 대사당이 있고, 시설도 좋다고 들은 적이 있는 곳이다. 갈길이 머니 서둘러 출발한다. 아침 해가 뜨고 나면 곧 햇살이 따가워 걷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비를 피하기 위해 일찍 움직인다.

일기예보에 점심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왔기에 비가 오지 않을 오전 중에 최대한 거리를 뽑아둬야 한다.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뿌릴 듯 우중충하기 그지없다.

출발한지 한 시간정도 되었을까? 일기예보는 야속하게도 내 바람을 어기고 비를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으려고 배낭을 내리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우산을 든 사람이 드문 것을 보곤 그냥 비를 좀 맞으며 걷기로 한다. 아마도 잠시 지나는 비겠거니 하곤 마음을 다독여 본다. 다행히 비는 조금 내리고 그쳤지만 그 뒤로도 계속 내리고 그치길 반복해 조금씩 발걸음이 무거워져 간다.

한 4km 조금 더 되게 걷고선 순례자 휴게소에 잠시 배낭을 풀고 쉬기로 한다. ‘칸난도(神南堂)’이라 이름 붙은 이 휴게소도 여타의 휴게소들처럼 순례자들이 노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셀프 목욕탕이 한 쪽에 갖춰져 있다는 것인데, 그 목욕탕이라는 것이 커다란 무쇠 욕조에 물을 채우고선 아래 아궁이에 장작을 떼서 물을 데우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두고 ‘고에몬부로(五右衛門風呂)’라고 부른다. 이는 전국시대에 유명한 도적이었던 고에몬이라는 사람이 팽형(烹刑, 삶아 죽이는 형벌)을 당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장작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아궁이 옆에 쌓여 있었는데 모두 이슬과 비를 맞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누군가 목욕을 시도하다 실패한 듯 타다만 신문지와 그을린 장작 몇 개비가 아궁이에 들어 있었다.

토요가하시 밑에 모셔진 잠자는 코보대사상.

휴게소를 한 바퀴 휘휘 둘러보곤 다시 출발하려는 찰나,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어제도 출발하면서 무지개 구름을 보았는데, 오늘도 길을 나선지 얼마 안돼선 무지개를 보노라니 무엇인가 불보살의 가피가 함께한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무지개를 향해 잠시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곤 다시 길을 나선다.

다시 한 시간 반 동안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도중에 우치코(內子)라고 하는 오래된 마을을 관통해 지나는 순례길을 택해 걷는다. 중세부터 번성한 마을이라 옛날의 모습을 유지한 골목이나 오래된 가부키 극장들이 있어 잠시 옆길로 빠져 구경하기 좋지만, 역시나 빗속에 지친 발걸음에 다른 곳을 들리고픈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대신 국도 옆으로 있는 미치노 에키(道の?)에 들려 구경을 대신한다. 미치노 에키란 우리나라의 국도휴게소나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은 개념으로 지역의 홍보하거나 특산품을 팔곤 한다. 순례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편의시설중 하나로 노숙 포인트로도 왕왕 사용된다.

미치노 에키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려니 여기저기 쉬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다들 비를 대비해서 우비를 입고 있거나, 기능성 웃옷들을 입고 있었다. 개중엔 어디선가 몇 번 마주쳤던 순례자도 있어 서로 고개만 까딱하곤 인사를 한다. 결국 구경이 질려 길을 나서려던 찰나 미치노 에키로 들어오는 홋카이도팀과 마주쳤다.

우치코에 들어설 무렵 길이 엇갈려 헤어졌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자기네들은 우치코의 가부키 극장을 구경하고 왔단다. 오늘 묵는 장소를 물어보니 내가 묵는 대사당보다 한참 더 가서 있는 휴게소까지가 목표라고 말한다. 서로 빗속에 조심하자고 격려하곤 다시 순례길에 오른다.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안개비가 계속 내리기에 결국 길가에서 우비를 꺼내 뒤집어쓴다. 옷이야 좀 젖어도 상관없지만 배낭이 젖으면 매우 곤란하다. 배낭안의 여벌옷들은 물론, 침낭이 젖어버리면 편안한 잠은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빗속에 앉아 쉴 곳도 여의치가 않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땅만 보고 걸어 나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기예보처럼 폭우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걷는 지역이 다른 곳 보다 산이 깊어 산마루에 비구름이 걸려서 그런 듯하다.

결국 7km를 더 걷고서야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순례길에 바로 면해있는 센닌야도 대사당(千人宿大師堂). 대사당 바로 앞의 우동집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1천여 명의 순례자가 묵어가길 발원하며 세웠단다. 배낭과 우비를 벗어 마루에 기대어 걸어 두고 푹 쉬었다가 가기로 한다. 이곳에서 오늘 목표로 삼은 대사당까지는 다시 약 7km정도. 한 3시간정도 더 걸어가면 되는 거리인데 빗속에 쉬지 않고 걸었더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듯하다.

대사당에 모셔진 코보대사상을 향해 3배를 올리고 살펴보니 다기의 물이 모두 말라 먼지가 껴있었다. 아마 오랫동안 순례자들이 찾지 않은 모양인 듯했다. 다기를 내려 깨끗이 씻어 새로 청수를 올렸다. 코보대사상 주변으로도 순례자들이 올린 오사메후다며, 두고 간 경전들이 어지러워 한데 모아 정리하다보니 의외의 물건이 튀어 나왔다.

다이쇼(大正) 13년(1924)이라고 쓰여진 오래된 납경장이 종이봉투에 담겨 코보대사상 뒤에 놓여있었다. 약 100여년 전의 후쿠오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순례자가 88개소를 참배하고 받은 납경장이었다.

안을 찬찬히 살펴보니 88개소는 물론 시코쿠 여기저기의 신사와 사찰의 주인이 찍혀 있었다. 마침 비도 보슬보슬 오고 인기척도 없는 대사당에서 오래된 기록들을 보노라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 옛날 코보대사가 걸었고, 100년 전 순례자가 걸었으며, 나도 걷고 있는 이 길의 오래된 기억을 살며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귀중한 순례의 자료가 이런 곳에 방치되듯이 놓여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오래된 납경장의 경우 수집가들 손에 비싸게 거래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보니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한순간 앞으로 가는 44번 사찰로 모시고 가야하나 하고 생각도 했지만 괜한 내 욕심 같아 다시 잘 싸서 한 쪽에 감추어 두었다.

슬슬 출발할까 하고 밖을 내다보니 마침 비도 그쳐있었고 우비도 말라 있었다. 혹시 모르니 계속 우비를 쓰고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나아가기로 한다. 어차피 이 앞으로 오래 걸을 것도 아니고, 최종 목적지까지도 얼마 멀지 않으니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인연에 맡기기로 한다. 내일은 날씨가 맑기를 바라며 다시 한걸음씩 길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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