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힘내서 걷겠습니다”

1,250km 험준한 시코쿠 순례길
몸·마음 지치고 악연을 만나기도
따뜻한 정성의 오셋타이에 ‘눈물’
유대·배려 넘치는 ‘살아있는 길’

일상이 어려워질 때 생각한다
“나는 시코쿠의 오헨로상이다!”

시코쿠 순례자들의 마지막 회향처인 고야산 전경. 고야산은 일본 밀교를 상징하는 성지이기도 하다.

이틀간 마츠야마에 묵으며 그간의 여독을 풀고, 관광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색하지만 근처의 유명한 장소나 먹거리도 즐겼다. 한 달여 가까이 걸었던 습관이 몸에 배여 새벽같이 눈이 떠지고, 가까운 거리는 다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곤 숙소주인이 “아예 고야산까지도 걸어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다시금 흰옷을 입고 순례자로 돌아갈 시간이다.

도고온천 본관의 옥상에는 매일 아침 6시 온천의 개장을 알리는 북이 있다. 순례길이 이어지는 온천 앞 삼거리에서 짧게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선 걸음을 시작한다. 상점가는 대부분 닫혀있거나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다. 발걸음도 가볍게 여기저기 숨은 빨간 화살표를 보며 순례길을 나아간다. 아침의 부산함이 보이는 주택가를 조금 빗겨나자 내 발걸음과 지팡이 소리만이 자박자박 울리는 고요한 길이 이어진다. 조용한 아침 길을 걸으며 시코쿠 순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코쿠 순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순례길에 오른다. 깊은 신심에서 우러나와 순례길을 찾은 이, 관광 삼아 순례하는 이, 마음속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오는 이, 우연한 기회에 순례를 시작한 이. 저마다 다양한 동기로 순례길에 오르지만 모두 하나의 공통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순례자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불가에 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전단나무로 중생의 모습을 만들고, 여래와 보살의 모습도 만든다. 비록 만개의 얼굴과 천개의 머리가 각기 달라도, 만약 향기를 맡아보면 하나의 향기이다.”

흰 옷을 몸에 걸치고 손에는 투박한 지팡이를, 머리에는 삿갓을 쓴 모습에서 순례자들은 신기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 어떤 사연도, 마음도, 성별도, 나이와 국적도 따지지 않는다. 다만 같은 순례를 하고 있는 동료라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한다. 초면의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눈다.

88번 오쿠보지로 가는 마지막 고갯길. 시코쿠 순례는 살아있는 길이다.

12번 쇼산지 아래에서 만난 한 중년의 순례자는 “회사 공금을 횡령하다 발각됐다”며 초면의 나에게 순례의 계기를 풀어 놓은 적 있었다. 그와 같이 횡령했던 동기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아, 몇 달 간 술만 마시고 사는 것을 보다 못한 장인이 시코쿠로 보냈단다.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눈에서 슬픔과 불안이 보였다. 그러나 한 달여 뒤 고야산까지 도착했다고 온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굳은 결의가 보였다. 

22번 뵤도지에서 만난 부부는 이번에 태어난 손자의 호신불이라며 작은 문수보살상을 품에 안고 순례하고 있었다. 두 손에 작은 문수보살상을 정중히 올리곤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연히 51번 이시테지에서 다시 마주쳤는데, 문수보살을 손자가 모시자 안좋은 일들이 다 풀렸다며 감사의 의미로 순례한다고 웃어보였다.

76번 도류지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차량으로 편하게 순례하는 죄책감’이 있다며, 순례를 마치고 고야산을 참배할 때 같이 참배하자고 권했었다. 심지어 뒤의 8-번의 코쿠분지 본당 앞에 종이박스를 잘라 쓴 편지에 연락처까지 남겨선 다시금 같이 고야산 참배를 권했다. 결국 그 인연으로 고야산을 함께 올랐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필자가 만난 많은 순례자들의 이야기와 사연만 풀어도 몇날며칠이 걸릴 것이다. 그냥 다른 순례 중의 단순한 추억으로 끝날 수 있으련만, 모두 같은 순례자라는 유대감 하나만으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또 순례자의 행색은 순례자 간의 경계뿐만 아니라 시코쿠의 사람들과도 만남의 열쇠가 된다. 단지 순례자라는 이유로 다가오는 깊은 온정은 그동안 잊고 있던 감사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한다.

순례길에서 만난 한 초로의 순례자는 “순례자의 옷을 입고 있으면,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상대편에서 먼저 미소로 인사를 해온다”며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느껴서, 마음이 울적해 지면 다시금 시코쿠로 순례를 온다고 말했다.

필자도 지쳐서 길가에 앉아 있을 때 걱정과 격려의 목소리를 수없이 받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집에 자고 가라는 한 할아버지의 권유에 응해 하룻밤 신세를 진적도 있다. 그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는데 “오늘 순례자 한 분을 집에 모신다”며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전화를 거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88번 사찰에 남겨진 순례자들의 지팡이. 순례자들의 유대가 느껴진다.

더욱이 첫 번째 순례에서 마지막 88번을 사찰을 향하던 기억은 나의 모든 시코쿠 순례를 통틀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추억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발걸음이 무거운 데 그간에 받았던 오셋타이가 하나하나 생각났다. 그 무거운 은혜와 감사함이 한순간 물밀 듯 몰려오자 결국 눈물 뚝뚝 흘리며 걸어갔다. 오셋타이에 대한 감사함이 기억나자 이번엔 부모님이, 이 길을 만든 코보대사가, 또 불법승 삼보의 은혜가 하나하나 떠오르고 마침내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며 88번 오쿠보지를 향했다.

보통 순례자의 흰옷은 원래 일본에서는 수의, 즉 사자(死者)의 복장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농담으로 ‘시코쿠(四國)순례가 아니라 시코쿠(死國) 순례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례자들에게 이 길은 ‘살아있는 길’이다. 순례자간의 유대와 사람들 간의 온정이 끈끈하게 다가오는 가슴 따듯한 길이다. 그동안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수행의 길이다.

물론, 최장 1,250km의 시코쿠 순례길은 언제나 편한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계속되는 일정에 몸과 마음이 지치거나,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갯길을 넘어 멀리 탁 트인 풍경을 볼 때, 저 멀리 사찰의 산문이 보이기 시작할 때 다시금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희심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또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다시금 나를 순례자로서 시코쿠에 서게 한다.

생각이 깊어 가는데 어디선가 나는 향 내음이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길가의 작은 지장보살상에 누군가 아침 일찍 공양을 올렸는지 향 연기가 가물 대고 있다. 나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향을 하나 뽑아 사른다.

“늘 감사합니다. 오늘도 힘내서 걷겠습니다.”

두 손을 모아 지장보살님께 말씀을 올리고는 다시 길을 나아간다. 순례가 끝났을 때 이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몇 가지 답이 있을 것이고 모두 그럴 듯 해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순례자로서 이 길에 있었다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기쁠 때 마다 언제나 마음에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나에게 말할 것이다.

“난 시코쿠의 오헨로상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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