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만난 희유한 인연들

우라노우치만을 끼고 걷는 순례길. 36~37번 사찰로 가는 길이다. ‘경치는 아름다우나, 그것뿐인 길’이라며 잘 걷지 않으나 충분히 걸을 만한 매력이 있다.

아침 7시. 숙소에서 순례자들은 36번 쇼류지 산문까지 차로 배웅해 준다고 해서 차를 타기로 한다. 히로시마에서 왔다는 부부와 오카야마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나까지 4명이 차를 신청했다. 차를 탈 사람들은 9시까지 로비로 모여 달란다.

시간이 되어 주차장으로 나간다. 어제 노천탕에서 본 광경이 아침 해에 눈부시게 펼쳐진다. 모두 멋진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니 차에 시동을 걸던 직원이 설명한다.

“저기 멀리 보이는 곶이 24번 사찰이 있는 무로토입니다.”
모두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 말은 우리가 모두 저기서부터 걸어왔단 건가요?”
“세상에나, 우보천리라더니!”
“장하다 내 다리, 앞으로 좀 더 힘내자!”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서로 오늘의 목표를 이야기한다. 36번 쇼류지에서 37번 이와모토지까진60km 남짓한 거리. 도보로는 이틀 정도 걸린다. 히로시마에서 온 부부는 36번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절반 정도 이동한 후 오늘 중으로 37번 도착을 목표로 했다.

시코쿠 순례 용어 ‘카케즈레’
순례에서 만난 ‘길동무’ 의미

묵어갈 휴게소서 만난 순례자
누추한 모습에 직업순례자 오인
중얼거리는 말은 ‘보협인다라니’
매일 1만번 염송하는 출가사문
자신의 분별심에 참회 또 참회

오카야마에서 왔단 할아버지는 도보로 갈수 있는데 까지 걷다가 해가 지면 노숙, 나는 중간지점인 휴게소까지를 목표로 삼았다.

내리막길을 한 번에 내려오니 귀가 먹먹하다. 모두 배낭을 주섬주섬 등에 매고선 출발을 준비한다. 부부는 어제 쇼류지의 납경을 받지 못했다며 납경소로 올라가고, 오카야마 할아버지는 나와는 다른 루트로 길을 잡는다. 하룻밤 같은 지붕 아래서 잤지만 모두가 다른 길이다. 순례길 위의 인연이니 모두 언젠가 다시 보자며 각각 걸음을 옮겼다.

37번으로 향하는 길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36번 쇼류지가 자리 잡은 요코나미 반도와 섬 사이에 생긴 우라노우치만(浦內灣)을 끼고 바닷가를 빙 둘러가는 길이다. 옛 기록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걷지 않고, 배를 타고 이동했다고 되어있다. 실제 순례 중에 만난 토박이 할아버지는 차도가 생긴 후에야 순례자들이 이 길을 다닌다고 말했다.

다른 도보 길로는 어제 묵은 숙소에서 출발해 산 위의 길을 걸어 내려가는 길이다. 다만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경치는 아름다우나, 그것뿐인 길’이라며 걷질 않는다. 실제 딱 한번 지인의 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봤는데, 자판기도 쉴 곳도 없이 오르내림이 상당한 드라이브 코스였다.

만을 끼고 걷는 길에 들어서니 들리는 것은 파도소리, 바닷새 소리요. 보이는 것은 그저 간간히 있는 어항이었다. 최초로 시코쿠를 순례할 때는 이 단순함이 너무나 싫어 너무나 고통스러운 길로 기억했다. 그러나 몇 번 이 길을 걷다 보니 이 길만큼 또 좋은 길도 없다.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이 소박한 길이야 말로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명상의 길인 것이다. 시코쿠 순례길 위에는 이렇게 소박하고 단조로운 길이 많다. 그 길이 숲속일 수도 있고, 마을 가운데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바닷가일 수도 있다.

볼거리가 없다고, 심심한 길이라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나 자신, 명상과 사색에 훌륭한 수행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이래서 옛 스님들께선 “한 생각에 달렸다”고 말씀하셨나 보다.

한 40분 남짓을 걸으니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아까 쇼류지에서 헤어진 히로시마 부부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분들이 어찌된 일인가 하고 놀라서 인사를 한다.

“박상! 또 만나네요!”
“네, 아니 근데 어떻게 벌써 도착하셨어요?”
“납경을 받고 내려오는 데, 숙소 직원분이 정류장까지 금방이라면서 다시 태워줬어요.”
“아이고!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저도 탈 걸!”
“박상은 도보가 수행이잖아요. 부지런히 걸어야하지요.”
“수행은 수행이고, 몸이 피로한건 또 별개지요.”

서로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는다. 부부는 버스를 한 대 놓치는 바람에 오늘 목표가 조금 틀어졌다고 말했다. 예약했던 이와모토지의 슈쿠보를 취소하고 근처의 다른 숙소를 잡았단다. 서로 조심히 순례하자며 다시 순례에 올랐다.

참 인연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이렇게 순례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헨로 용어 중엔 ‘카케즈레(掛け連れ)’라는 말이 있다. 순례길 위에 만난 사람들끼리 길동무가 되어 걷는 것을 말한다. 나도 몇 번 카케즈레로 순례를 하면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도 있다. 한 친구는 최근에 시코쿠 순례를 계기로 불문에 귀의해 출가했다고 연락이 왔다.

우라노우치만 순례길은 총 13km 남짓. 만을 끼고 여기저기 있는 작은 어촌들을 연결하는 연락선 정류장들이 순례자들의 휴게소로 쓰인다. 순례길의 절반 쯤 와서 어깨를 쉴 겸 배낭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며 정류장을 서성이려니 트럭 한 대가 와서 말을 붙인다.  

“저번에 셋케이지에서 묵지 않았습니까.”
“예. 셋케이지 츠야도에서 묵었습니다.”
“삿갓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맞네요.”

시코쿠 순례를 할 때는 인사동에서 한국 삿갓을 사서 쓰고 다닌다. 일본 삿갓과는 모양이나 만듦새가 다르다보니 어디 삿갓이냐고 자주 질문을 받는다.  

“이것도 인연인데 오셋타이하죠. 타세요.”

간혹 자동차로 태워주는 오셋타이를 받는 경우가 있다. 오셋타이를 거절하는 것은 큰 실례이기에 절대 거절해선 안 되지만, 자동차 오셋타이 만큼은 정중하게 거절 할 수 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걷는 것을 수행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거라도 받아가게!”

할아버지는 조수석에 놓인 봉투에서 컵라면을 하나 꺼내 줬다. 덕분에 오늘 저녁거리가 해결된 셈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목표로 하는 휴게소까지 10km 정도 남았다고 알려주시곤 다시 트럭을 몰고 갔다.

시간을 가늠해 보니 생각보다 빨리 걸었다. 10km면 내 걸음으로 3시간 안에 넉넉히 도착하는 거리인데 이제 점심 조금 전이니 발걸음을 잠깐 멈추기로 한다. 배낭에서 점심거리를 꺼내먹으면서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놓곤 발의 열기가 모두 빠지고서야 다시 출발한다.

길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편히 쉬어 발에 힘이 생기니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거의 달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길을 지나간다. 어차피 갈림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니 망설일 것도 없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스사키시에 도착했다는 안내판이 나왔다.

목적지인 휴게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가량. 잠자리가 어디 있는지 가늠해 본다. 원래 휴게소 한켠에 있는 농산물 직판장에서 노숙이 가능했지만, 근래에 도난 사건이 생긴 이후론 노숙이 금지 됐다. 조금 아까운 일이긴 하지만, 휴게소 전체에 노숙금지가 아닌 게 어디냐며 스스로 달래 본다.

멍하니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 꾀죄죄한 순례자가 들어온다. 시꺼멓게 때가 탄 백의에 장바구니를 개조해 만든 짐차를 보니 직업 순례자다. 그도 나를 봤는지 내 근처로 다가온다. 직업 순례자들 가운데엔 무례하거나 강압적인 사람이 많아 긴장을 하곤 경계했다.

내 옆에 앉은 직업 순례자는 귀에 보청기를 낀 초로의 순례자였다. 입으로 쉴 새 없이 무엇인가 중얼거리기에 순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인가 하고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 긴장과 경계를 풀고 참회할 수밖에 없었다.

“나막 실지리야 지미가남 살바 다타아다남….”   

순례자가 입으로 끊임없이 외우는 것은 ‘보협인다라니’였다. 일본에서 ‘보협인다라니’에 대한 신앙이 유행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염송하는 사람은 처음 만난다. 이야기를 붙여보니 자신도 오늘 여기서 노숙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으로 도보 노숙순례 37회째, 은퇴 후 출가하여 순례길 위에서 죽을 것은 발원하고 순례 중이라고 한다. ‘보협인다라니’는 출가 당시 은사 스님께 전수받아 매일 지송하며, 하루에 최소 1만 독을 염송하며 살아생전의 악업을 참회하는데 회향중이라 한다.

오늘도 재미있는 하루다. 어떻게 맺어질지 모르는 순례길 위의 인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법명도 알려주시지 않은 스님은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다라니를 염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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