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교차한 하루에도 깨달음이…

순간의 잘못으로 산길 헤메
엉뚱한 대상에 화풀이 ‘참회’
44번엔 백제 전래 관음상이
길 위엔 항상 깨달음이 있다

44번 사찰 다이호지 본당 전경. 이곳에는 백제 전래 11면 관음상이 주불로 있다.

노소도게길을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거친 자갈 시멘트로 포장한 길이 끊기고, 거친 자갈길들이 이어진다. 그래도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기 위해서인지 차가 다닌 바퀴자국이 길 여기저기 나 있었고, 계곡 옆으로도 축대를 쌓아 낙석 등에 대비한 모습도 보인다. 고갯길이라고 하지만, 시코쿠에서는 나름 지대가 높은 지역이라서 해발 3~400m 가량의 야산을 넘는 길인데도 험하지 않아 마음 편히 길을 나아간다.

자갈길을 나아가진 얼마 안 되어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지금껏 걸어온 것과 같은 길이 이어지고, 하나는 얼핏 봐도 가팔라 보이는 산등성이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산등성이를 향해 오르는 길로 올라갔다. 아마 당시의 나는 ‘노소도게길은 산 고개를 넘는 길’이라는 생각이 가득했기에 자연스럽게 산을 오르는 길을 택한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을 꾸역꾸역 오르기를 근 한 시간. 갈수록 험해져가는 길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앞서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기에 순례길의 한 갈래겠거니 하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결국 숲이 아닌 나무가 드문드문한 산중턱에 이르러서야 잠시 짐을 내려놓고 지도를 펼쳤다. 손가락 마디를 자 삼아 지도의 구불구불한 길들을 재어보고, 지도에 보이는 산등성이들과 지형들을 비교해보니, 그제야 내가 걸어온 길이 전혀 다른 엉뚱한 길이란 걸 깨달았다.

“야! 나쁜 사람들아!”

멀리 산을 향해 왜 갈림길에 이정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애먼 순례자를 고생시키느냐며 이 길을 걸었을 선배 순례자들을 향해 한바탕 욕을 한다.

“아니, 길이 갈림길인데 왜 이정표를 안 세워둬! 또 지도는 왜 이렇게 대충 그려져 있는거야!”

불과 몇 시간 전 오셋타이와 함께 출발했던 감사한 아침이 비지땀과 분통으로 날아가 버렸다. 화가 나니 어젯밤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구시렁댄다.

“아니 명색이 관리를 하는 대사당이라는데 마당은 꺼져있고, 부처님 시봉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그렇게 배낭을 둘러매고 염불하듯 구시렁 구시렁 한참을 올라온 산길을 도로 내려오다 보니 마음속에 맺힌 불만을 다 내 뱉었는지 어느 순간 입이 딱 멈춘다. 잠시간의 정적 속에 산길을 걷노라니 저 산등성이에서 온갖 불만과 욕을 내뱉은 게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생긴 일을 누구에게 돌린단 말인가. 단지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인연이 없는 대상이란 이유로 온갖 구업과 의업을 지어댔다. 순례길 위의 여러 고난이야말로 오히려 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겨낼 수 있는 가피인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럭 화부터 낸 것을 보면 ‘아직은 중생심이 가득하구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책망해 본다.

산을 다 내려와 처음의 갈림길까지 돌아오니 이미 몸은 기진맥진이다. 배낭을 길 한가운데에 풀어 놓고선 어깨를 크게 돌리면서 길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까 그 갈림길에서 대여섯 걸음정도 바른 길로 들어서자 수풀 사이로 노소도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떡하니 서있다. 다시금 마음이 허탈해지면서도, 스스로의 부주의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설마하니 나처럼 또 길을 헤맬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내친김에 돌을 모아 길에 화살표를 하나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잠시 배낭을 길옆으로 치워두고 적당히 무거우면서 좀 밝은 색깔의 돌을 모아 화살표를 만든다.

옛날 오대산의 구정 선사라는 선지식은 인욕을 시험받으며 가마솥을 아홉 번을 고쳐 걸었고, 티베트의 대스승 밀라레빠는 살인죄라는 악업을 참회하기 위해 9층탑을 짓고 허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내 어리석음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거기에 대해 다른 엉뚱한 대상에 대해 욕을 퍼부은 악업이 얼마나 정화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순례자들이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정성들여 돌 화살표를 만들어 길 안내를 보탠다. 붉은 유성펜 같은 게 있다면 더 확실하게 길 안내가 되겠으나 필기구라곤 볼펜 하나, 붓펜 하나뿐인지라 붓펜으로 굵게 순례길이라고 써둔다.

다시 배낭을 짊어 메고 순례길로 나아간다. 아까의 고생이 무색하게 편안한 자갈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노소도게 고개의 정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생각했던 고갯마루와는 달리 그냥 폭이 넓은 산길이 정상이라니 순간 황당했지만 그 곳을 기점으로 내리막일 시작되는 것을 보니 어느새 고개를 다 오른 게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시멘트로 거칠게 포장된 길을 3km가량 내려가니 산길 너머로 큰 차도가 보인다. 44번 다이호지가 있는 쿠마고원을 가로질러 에히메현의 중심지인 마츠야마(松山)으로 이러지는 33호 국도다. 국도 건너편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어느새 곧 44번 다이호지(大寶寺)가 나타날 것 같아 몸과 마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마치 뛰는 듯이 산길을 내려가 국도를 따라 40분가량 걸으니 곧 44번 다이호지 산문에 이르렀다. 비록 내가 예상한 시간에 비하면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44번 다이호지는 순례자들에겐 아마 특별한 감정이 드는 사찰일 것이다. 며칠을 걸어 깊은 산골을 빠져나와 만나는 44번. 88곳의 순례지의 한 가운데에 해당하는 44번 사찰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

사찰의 연기 설화에는 백제에서 온 스님이 11면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수행하는 작은 암자를 지었는데, 세월이 흘러 암자는 스러지고 보살상만이 남아 있던 것을 사냥꾼 형제가 발견하여 초당을 세워 다시 중창한 것이 다이호지의 시작이라고 전한다. 본존인 11면 관세음보살상은 비불(탚佛)로 공개되지 않지만 백제에서 모셔온 불상이라고 하니 또 괜히 친근감이 간다.

조금 좁은 산길을 따라 산문을 오르고,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본당과 대사당이 나란히 서있다. 차례로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받으러 내려가려는데 본당 앞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큰소리로 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린다. 목에는 유이가사(結袈裟)라고 부르는 법의, 손에 든 염주와 석장은 분명 평범한 순례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석장을 흔들면서 본당과 본당 건너편의 작은 불당을 오가며 외우는 경전은 <관음경>이었다. 흥미로운 모습에 잠시 지켜보다 할아버지가 쉬는 틈을 타 이야기를 걸어 본다.

“안녕하세요, 지금 외우시는 건 <관음경>이신가요?”
“아, 대사님 안녕하세요. 네, 매년 이날이면 다이호지에 와서 <관음경>을 외웁니다.”
“그렇군요. 오늘이 11면 관세음보살 재일인가요?”
“아니요, 오늘은 저기 모셔진 ‘호리다세 관음(掘り出せ?音)’님이 세상에 나온 날이랍니다.”
“특이한 이름이네요? ‘파내줘(호리다세) 관음’이라니?”
“대사님 몰라요? 꽤 유명한 이야긴데?”

할아버지를 따라 본당 좌측, 나무사이에 숨듯이 서있는 작은 불당을 향했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불당 안에는 작은 금동불 몇 구가 모셔져 있었다. 가장 큰 불상은 보관에 정병을 든 영락없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이었다. 고요한 모습에 가만히 합장하고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설명을 한다.

“80년도 전에 일이에요. 마을에 살던 어느 신심 깊은 할머니가 다이호지를 참배하고 내려가는 길에 이곳의 가람신인 우두천왕이 몸이 들려서 ‘나는 스고산(菅生山)에 있다! 파내어다오! 파내어다오’하고 계속 말하게 됐어요. 스고산은 바로 이곳의 산호(山號)랍니다. 할머니는 경내의 가람신 사당 옆을 파게 해달라고 계속 주지 스님에게 부탁했지요. 스님도 괴이하게 생각해서 할머니가 말한 곳을 인부들을 시켜 파내었더니 저렇게 7분의 부처님과 백 수십 장의 돌 경판이 나왔답니다.”

후에 납경소에 물어보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재 전문가들의 조사결과 금동불은 모두 12세기 때 조성된 것으로, 이전 대화재로 사찰이 소실될 때 스님들이 화재를 피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날이다. 힘든 밤을 보내고 났더니 아침 먹을거리를 오셋타이 받고, 길을 헤매고 구시렁대다가 다시 참회하고, 또 그 덕에 예상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니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

일비일희가 교차하는 하루. 그럼에도 마음속엔 기쁨이 더 생각나는 것은 분명 이 길 위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모두 내 마음에 작은 깨달음으로, 새로운 가르침으로 와 닿기 때문이리라. 마음 한 쪽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음 사찰을 향해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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