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의 길 시코쿠] 27. 41~43번 사찰까지 여정 〈上〉
[정진의 길 시코쿠] 27. 41~43번 사찰까지 여정 〈上〉
  • 박지산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8.25 2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례, 내 안 ‘佛心’ 찾는 여행

시코쿠 유명세로 순례자 급증
포장도로 실망하는 사람 많아
주위 풍경 관심은 반쪽 순례

41번 류코지 ‘신불습합’ 전형
신사에 사찰 속한 神宮寺 해당
부처님께 더 다가기 위한 신앙
41번 류코지 전경. 계단 위의 신사가 본래의 본당으로 일본 특유의 ‘신불습합’ 신앙을 보여준다.
41번 류코지 전경. 계단 위의 신사가 본래의 본당으로 일본 특유의 ‘신불습합’ 신앙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면 꽉 차는 좁은 휴게소에서 4사람의 순례자가 다닥다닥 붙어 잠을 청했다. 우와지마(宇和島)시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츠오 터널 위의 순례자 휴게소는 앙증맞은 벽화로 곧잘 시코쿠 순례 서적이나 지도에 등장하는 곳이다.

88번에서 1번을 향하는 역순례(逆打ち)를 한다는 초로의 순례자는 아직 밤이 물러가기도 전에 조용히 자리를 정리해 나갔고, 홋카이도 콤비와 나는 6시쯤 되어 부스스 일어났다. 오늘은 33km 정도 떨어진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까지가 목표다.

예로부터의 순례길은 휴게소를 끼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지만 하루에 평균 30km를 무거운 짐과 함께 걷는 노숙순례자로서는 아침부터 힘을 빼고 싶진 않다. 길을 내려가 터널을 통과해 순례길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옛 순례길을 따라 걷고 싶어 각 사찰이나 지역주민들께 물어가면서까지 옛길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중세에 각 지역을 연결하던 가도(街道)가 순례길로 사용되었고, 근대가 되어 그 길이 차도로 포장이 되면서 옛길을 찾아 걷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그냥 차도 옆을 따라 걷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어진다. 정확힌 어느 길을 걸어도 순례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에히메현 어딘가에서 만난, 도보 120회째라던 초로의 도보 순례자는 “어느 길을 걸어도, 부처님의 마음과 함께 한다면 그 길이 바로 순례길”이라며, 시코쿠 순례를 뜻하는 단어 ‘헨로(遍路)’란 시코쿠의 가장자리를 걷는 길이라는 뜻이 있다고 말해 줬다. 실제 시코쿠 순례지도 전도를 보면 시코쿠 섬의 둘레를 따라 둥근 원이 그려져 있다.

시코쿠 순례길이 유명해 지면서 국내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순례길이 소개 됐다. 또 그 모습을 보고 시코쿠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순례길이라는 이미지에서 고즈넉하고, 흙이 깔린 자연의 길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품고 온 이들의 후기는 하나같이 “기대와는 다른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라는 말이 나오길 마련이다.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도 시코쿠처럼 많은 길이 포장도로란 말을 들은 적 있다.

물론 산길이나 도시를 우회하여 걷는 길 가운데는 옛 길이 그대로 남은 곳도 있고, 지자체나 마을이 가꾸고 보존하는 길도 있다. 개중에는 기록에만 남은 길을 다시 복원해 만든 곳도 있다. 하지만 단지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고즈넉함을 느끼기 위해서만 이 길을 찾는다면 ‘순례’의 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순례의 가치란 바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영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그 순례를 위한 중요한 도구가 바로 ‘길’이다. 선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본다”는 말이 있다. 즉, 순례길이란 순례의 가치를 찾게 하는 도구인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길과 그 주변 환경만을 보고 시코쿠 순례를 떠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결여된 반쪽자리 여정이다.

터널을 나와 3km 쯤 더 걷자 주택가 한 가운데에 마메키다이시(馬目木大師)라는 대사당이 나온다. 옛날 코보대사님이 당신의 나무지팡이를 꽂은 것이 싹이 터 나무가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휴식을 가질 겸 배낭을 풀어 내린다.

어깨를 풀며 주변을 둘러보다 대사당 앞에 어지럽게 떨어진 낙엽이 신경 쓰여 발로 쓸어 본다. 그걸 본 코에이씨가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어디선가 대빗자루를 가져왔다. 남자 셋이서 비질을 하니 5분도 안되어 경내가 깔끔해 졌다. 내친 김에 처마에 낀 거미줄도 치우고, 지저분해진 향로와 촛대도 최대한 정리를 한다. 청소를 끝내고 예불까지 모시고 나니 아침부터 뿌듯한 마음으로 힘이 생긴다.

우와지마 시내를 지나는 길은 이정표가 잘되어 있고, 시가지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 길을 헤맬 일이 없지만, 역시 도시를 지나는 길은 조금 머리가 아프다. 산길이나 시골의 순례길에 비하며 앉아서 쉴 곳이나, 그늘이 드물어 힘들다. 특히 골목골목을 지나는 길들이 이어지다보니 답답한 마음까지 생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들 사이에서 기가 죽을 무렵 다시금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교외로 빠져나가니 이번엔 극단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길이다. 그저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41번 류코지(龍光寺)로 안내한다.

41번 류코지는 일본불교의 특징 중 하나인 신불습합(神佛習合)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찰이다. 신불습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의 산신과 칠성처럼 ‘민간신앙이 불교로 흡수된 것’ 정도로만 말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민간신앙, 내지는 전통종교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일본의 신사와 신토(神道)는 역사와 규모가 거대한 종교다.

류코지에서 부츠모쿠지로 향하는 언덕길.
류코지에서 부츠모쿠지로 향하는 언덕길.

신토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동북아시아판 힌두교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神)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이 종교로 발전한 것이 신토이다. 야오요로즈(八百万)라는 말이 많이 오해 되는데 실제로 제신이 800만 위(位)가 있다는 뜻이 아닌, 그만큼 많은 신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도시나 시골을 물론하고 길가 여기저기에 작은 사당과 신사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신토는 6세기경 불교가 들어오면서 한차례 사상적, 의례적인 면에 변화가 되고 여기서 일본만의 독특한 신앙인 신불습합(神佛習合), 본지수적(本地垂迹)설이 생겨난다. 즉 일본불교에도 신토가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불교와 문화에 중요한 축으로 근대에 까지 내려오게 된다.

신불습합에서 중요한 사상인 본지수적설의 골자는, 너무나도 높아서 범접하기 어려운 부처님(本地)이 민중을 위해 다가가기 쉬운 형태인 신의 모습(垂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일왕가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은 밀교의 본존불인 대일여래(大日如來;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무예의 신인 하치만(八幡)은 아미타불등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또 여기에 더해 권현(權現)이라는 일본만의 존격도 생겨난다. 권현이란 중생들을 구제하는 방편을 가지고 임시로 나타난 모습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일본 신토의 신들을 불교에서 말하는 신중, 또는 호법신으로의 위상을 가지게 됐다. 그리하여 사찰에서 신사를 모시고 관리하거나, 신사에서 불상을 모시고 예불을 올리는 등의 모습이 생겨났다. 절에서 신사를 관리할 경우 그 절을 벳토지(別뎠寺), 반대로 절이 신사에 속할 경우 진구지(神宮寺)라고 불렸다.

41번 류코지는 바로 진구지에 해당하는 사찰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코보대사께서 시코쿠를 돌던 중 이 지역에서 볏단을 짊어진 백발노인과 마주다. 젊은 장정들도 들기 힘든 볏단을 가뿐히 들고 가던 노인은 코보 대사를 보곤 “나는 이곳에 사는 이인데, 불법을 지키고 백성들을 이익을 주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곤 홀연히 사라졌다.
이에 대사는 오곡의 신인 이나리(톀荷)신이 화현했음을 알아차리고 노인이 사라진 곳에 류코지를 창건, 시코쿠 88개소 전체를 수호하는 도량으로 삼았다. 이러한 연기설화로 인해 류코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산문은 신사의 문인 도리이(鳥居)가 서있고 인왕상 대신에 고마이누(좤犬)라 하는 사자상이 모셔져있다.

이렇듯 불교와 신토가 평화롭게 공존하던 신불습합은 근대 들어 산산이 깨어진다. 메이지 유신으로 들어선 신정부는 일왕의 권위를 세우고 그 옛날 일본의 역사에 나오는 제정일치의 이상을 세우기 위해 일왕의 신성성을 강조, 새로운 일본의 정신적 중심을 세우기 위해 국가신토(國家神)가 탄생하게 된다. 그 내용은 한국에서 흔히 언급되는 신토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일왕은 살아있는 신이며, 일본은 일왕이 다스리는 신의 나라. 이러한 내용이다.

이러한 일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신토는 정부의 지원 하에 전통적인 신토 신앙에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다. 또 그동안 당연시 됐던 신불습합과 본지수적설을 폐지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불분리령(神佛分離領)’. 이로 인해 벳토지와 진구지는 아예 폐사되거나 절 혹은 신토 한 곳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이에 사라진 사찰과 법당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파괴된 불상, 불경, 법구 등이 해외로 반출되기도 했다. 시코쿠 88개소 가운데에도 이때 일시 폐사됐던 사찰이 다수 존재한다.

류코지도 이때 신사와 사찰이 나뉘게 되었다. 본래 본당이었던 전각이 이나리 신사로 전용되었고, 바로 아래 대사당이 있던 곳에 본당을 새로 세워 새로운 류코지가 세워졌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곳을 순례 왔을 때엔 사찰이 아닌 신사라고만 생각해 눈앞에 두고도 찾질 못했었다. 한편 분리된 이나리 신사는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 분위기가 물씬 났다.

사찰측에 문의해보니 이미 별개의 종교로 분리가 됐고,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은 다른 동네에 살면서 제사가 있을 때만 신사를 들린다고 한다. 또 신사와는 별개로 본당의 한 쪽에 이나리신을 모시고 있다고 하니 신불습합의 옛 모습이 돌아 온듯했다. 실제 시코쿠 순례길 외의 지역에서도 옛날 신불습합 시대의 모습을 부활시키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에서도 현대불교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금주의 베스트 불서 8/30 ~ 9/5

순위 도서명 저자 출판사
1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김원수 청우당
2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스님 수오서재
3 요가 디피카 B.K.S.아헹가/현천스님 선요가
4 팔천송반야경
(산스크리트 원전 완역)
전순환 불광출판사
5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정진원 조계종
출판사
6 염불수행대전 주세규 비움과소통
7 도해 운명을 바꾸는법 석심전/김진무 불광출판사
8 유식,
마음을 변화시키는 지혜
요코야마 코이츠/안환기 민족사
9 청송골 수행기
(교도소에서 온 편지)
편집부 지혜의눈
10 도해 람림,
깨달음의 길을 말하다
쟈써/
석혜능
부다가야
※ 제공 : 불서총판 운주사 02) 3672-7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