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순례길 끝엔 부처님이…

코보 대사 감화된 홋케선인 위해
대사가 45번 사찰 이와야지 창건
옛 순례길은 고되지만 풍광 좋아
‘44번 소속된 말사’ 設 사실 아냐

45번 사찰 이와야지의 대사당. 화재로 소실돼 재건됐다. 그러다보니 본당보다 당우가 크고, 서양건축 양식이 도입됐다.

45번 사찰 이와야지(岩屋寺)는 시코쿠 88개소 가운데 가장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찰소다. 이와야지가 자리잡은 이와야산은 바위 여기저기가 움푹 파인 바위굴이 많은 데서 ‘바위집(이와야)’이란 이름이 붙었다. 특이한 바위 절벽 사이에 안기듯 자리 잡은 이와야지는 그 이름대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사찰의 연기 설화에는 코보 대사가 수행을 위한 장소를 찾던 중 이 산에서 수행하던 홋케선인(法華仙人)이라는 여성 수행자와 만나게 된다. 오랜 수행 끝에 얻은 신통력으로 산을 지키고 있던 홋케선인은 대사의 수행력과 덕망을 보고선 자신이 관리하던 산을 코보 대사에게 공양 올렸다.

이에 코보 대사는 홋케선인이 수행하던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나무와 돌로 부동명왕을 한 구씩 조각하여 나무로 된 상은 본당의 본존으로 안치하고 석상은 오쿠노인의 바위굴에 비불로 모셔 돌산 전체를 본존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다 보니 더욱 산 전체가 영험한 느낌이 든다.

깊은 산골에 있다 보니 이와야지를 순례하는 길도 도보 순례자들에게는 조금 버거운 길이다. 보통 다음 사찰로 계속에서 길이 이어지는 순례길이지만, 이와야지만큼은 편도 10km 가량의 길을 왕복하고서야 46번으로 향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로는 44번 사찰의 뒷산을 넘어 45번으로 향하는 길이 옛날에 있었지만 산사태 등으로 무너진 지 오래고 지금은 그 길이 어딘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결국 두 다리가 고생해야 한다.

44번 사찰을 참배하고 나와,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타고 고개 몇 개를 넘어 깊은 계곡 속을 향하는 순례길은 호젓하고 조용하지만 꽤나 외롭고 심심한 길이다. 새롭게 뚫린 차도를 따라 걷는다면 좀 편하게 걸을 수 있지만 옛날의 순례길을 택한다면 산 능선을 타고 올라야하는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다만, 경치와 산세가 좋아 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은 일부러 옛날 길을 택해 걷곤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도보 순례자들이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보통 45번 사찰로 들어서는 초입이나 길 중간에 숙소를 잡고 짐을 맡겨둔 채 몸만 다녀오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이런 숙소들 중엔 묵지 않아도 오셋타이로 잠시 짐을 맡아주는 곳도 있다. 또 어떤 순례자들은 이미 밟은 길을 밟고 싶지 않다며 이와야지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기도 한다.

물론 노숙을 하는 방법도 있다. 45번으로 향하는 길 중간 몇 곳에 노숙하기 좋은 장소들이 있다. 나는 보통 44번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다녀오는 방법을 택했다. 필자도 첫 번째 순례 때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근처 24시간 편의점에 부탁해 짐을 맡겨두고 몸만 다녀왔었다. 하지만, 역시 도보 순례자가 배낭이 없으니 뭔가 헛헛하고 안정감이 들지 않아 어색했다.

어느 도보 순례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배낭의 무게로 주름 잡힌 어깨, 땀으로 누렇게 되고, 엉덩이에 시커멓게 때가 탄 백의야 말로 도보순례자의 상징이지”라며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심지어는 44번을 참배하지 않고 45번을 먼저 참배한 후, 길을 나오면서 44번을 참배하는 순례자들도 생각보다 많다. 한때 이를 두고 도보 순례자들 사이에서 “45번은 원래 44번 사찰의 오쿠노인(奧院)으로, 아무리 편의를 위해서지만 산내암자와 같은 45번을 먼저 참배하고 본사인 44번을 참배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순례자들 사이에선 꽤나 회자되었던 이야기로, 요컨대 45번 사찰의 정통성 내지는 위엄과 관련된 문제라 45번 측에서는 해당 이야기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다. 후에 학자들이 나서고야 일단락 됐다.

일본불교의 혼란기였던 메이지 시대에 시코쿠 88개소 순례도 일시적으로 쇠퇴했는데, 이때 화재로 사세가 기운 45번 이와야지의 납경과 참배안내를 44번 다이호지에서 일시적으로 맡은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마을 주민과 순례자들이 이와야지가 다이호지에 소속된 말사처럼 인식하게 된 것이 해당 이야기의 근거라는 것이다.

어찌 됐던, 45번 이와야지는 순례자들에게 힘들긴 해도 기억에 남는 사찰이다. 본존인 부동명왕께 기원하는 붉고 푸른 깃발이 빼곡하게 자리한 참배로를 따라 울창한 숲을 올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바위벽이 나타난다. 그 웅장한 모습을 보노라면 힘겹게 걸어온 보람을 느낀다. 물론 그 바위벽 가까이 올라가야 다시 본당이란 사실이 조금 지치긴 한다.

또 이와야지는 약 120여 년 전 대화재로 단 두 곳의 전각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돼, 후대에 재건했다. 그러다보니 조금 특이한 구조를 취하는데, 먼저 대사당이 본당보다 크다는 점이 특색이다. 시코쿠 순례에서 각 사찰의 본당을 참배한 후 대사당을 참배하게 되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전각 크기만을 보고 대사당을 본당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100여 년 전에 재건된 대사당은 그 규모도 거대하지만 서양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외관과 구조는 전통적인 사찰 구조를 따르면서도 공포와 기둥의 장식에 서양건축의 요소를 채택해 일본의 근현대 건축에 독특한 예로 꼽힌다.

이에 반면 본당은 바위벽에 바싹 붙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코보 대사가 산 전체를 본존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에서 근거한 것으로 바위와 하나가 되는 양식으로 지어졌다. 본당 옆으로는 사다리를 타고 바위굴로 올라 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연기설화 속의 홋케선인이 수행했던 자리라고 전한다.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나무로 조성된 오륜탑(五輪塔)이 본당과 대사당을 바라보고 있다.

홋케선인이 수행한 동굴까지 모두 참배하고, 납경을 받고서 다시 산을 내려간다. 막 경내를 빠져나가려는데 순레자들이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지팡이로 세게 땅을 치고 있었다. 무슨 난리인가 싶어 어깨 너머로 쳐다보니 커다란 살무사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지르고 있다.

아무리 사람들이 소리를 내고 땅을 울려도 아랑곳 않고 느릿느릿 기어가다 보니 모두들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5분 정도 기다리고서야 순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코쿠 순례길 중간에 곧잘 ‘살무사 주의’라는 표지판을 보긴 했지만, 직접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길을 내려오면서도 괜히 또 다른 살무사를 마주칠까 일부러 발을 크게 구른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이와야지로 가는 길. 옛 길은 고되지만 풍광이 좋다.

오늘 참배할 사찰은 다 순례했으니 이제는 잠자리를 향해 갈 일만 남았다. 사실상 시간에 쫓길 것이 없으니 느긋하게 걷는다. 간혹 지나는 차를 제외하곤 인기척이 드문 길이다. 전반적으로 시코쿠 순례길은 시골이나 교외의 마을길을 지나치는 길이 많다보니 한적한 것도 있지만, 너무 한적해서 정말 사람이 사는 곳인지 의아한 경우도 많다. 특히 이런 산골을 지나칠 때는 누가 봐도 빈집인 경우도 많아 더욱 그렇다.

시코쿠에 거주하는 지인의 말로는 다른 곳들에 비해 시코쿠의 인구가 적은 것도 있고, 빈집들도 점점 나오고 있단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들은 더욱 조용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순례길 옆으로 있던 오래된 여관들의 경우 후계자를 찾질 못해 그대로 폐업해 버리는 곳도 많은 현실이다.

실제 시코쿠 섬은 일본의 주요한 다른 섬들에 비해 이렇다 할 산업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섬  안을 일주하는 교통편도 미비하다. 심지어 아직 고속철도인 신칸센도 뚫리지 않았다. 조금 심하게 말해 발전이 덜 된 동네다.

이렇게 외진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15만 명의 사람이 시코쿠를 찾는 것은 오직, 88개소를 순례하는 ‘오헨로’ 때문이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깡촌이 먹고 살라고 대사님이 순례길을 만들어 두셨다’고 하지만 코보 대사가 이곳 시코쿠에 순례길을 만드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시코쿠가 당신의 고향인 까닭도 있겠지만 이런 외지고 힘든 곳이야 말로 수행으로서의 순례를 떠나온 이들에게 의미가 있어서라는 생각해 본다. 시코쿠 순례길을 뜻하는 단어 ‘헨로(遍路)’도 옛날에는 외진 가장자리를 뜻해 ‘헨로(邊路)’로 쓰던 예도 있으니 아마 틀린 생각은 아니니라.

고행을 통한 자아성찰은 순례에 오른 수행자들에겐 당연한 것이다. 옛날 원효 스님께서도 <발심수행장>에 “절하는 무릎이 얼음 같아도 불을 그리워 말며, 주린 배가 끊어질 듯해도 먹을 것을 구하는 생각을 말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고달프고 힘든 순례길이라도 그 끝엔 부처님과 보살이 있고, 코보 대사의 자취가 남은 사찰들이 있다. 또 그곳에 남은 설화들과 가피들이 순례자의 신심을 북돋아 준다. 다시금 신심으로 가득 찬 순례길은 길 위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시코쿠 순례길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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