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의 길 시코쿠] 29. 토요가하시 가는 길
[정진의 길 시코쿠] 29. 토요가하시 가는 길
  • 박지산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9.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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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보대사 함께 하는 ‘同行二人’ 순례길

풍찬노숙으로 몰려오는 피로에
잠시 혼자서 걷게 된 순례길
자청한 고행… 불평보단 감사해
길의 끝에선 새로운 나를 만날까
43번 사찰 메이세키지 전경. 시코쿠 순례 사찰의 연기 설화는 코보 대사가 상서로운 구름을 보고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것이 많다.
43번 사찰 메이세키지 전경. 시코쿠 순례 사찰의 연기 설화는 코보 대사가 상서로운 구름을 보고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것이 많다.

밤새 차가워진 산속의 공기는 새벽이 되자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떨어졌다. 방한 대책으로 몇 없는 옷을 껴입고, 판초우비로 침낭을 감쌌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막기 어려웠다. 몇 번을 몸을 뒤척이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먼 새벽동이 틀 무렵 일찌감치 자리를 정리했다. 최대한 몸을 크게 움직여 밤새 굳은 몸을 풀며 부스럭거리고 있으려니, 홋카이도 팀의 텐트에서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텐트 안에서 아직은 잠에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상 잘 잤어? 안 얼어 죽었지?”
“살아있어요! 아직 대사님이 올 때가 아니라고 하시던데요?!”

서로 농담을 하며 시작하는 아침, 홋카이도 팀도 간밤에 꽤나 추웠다며 손으로 온몸을 문지르면서 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들 여기저기 몸이 굳은 채로 손만 놀리는데, 한창 텐트를 해체하던 오바 씨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다들 하늘 좀 봐! 무지개가 떴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옅은 아침 구름사이에 무지개가 어려 있었다. 정확히는 무지개 구름이었다. 마침 딱 우리가 노숙을 한 그 자리 바로 위로 구름이 뜬 것이다. 코에이씨와 나는 바로 손을 모으곤 기도를 했다.

“채운(彩雲, 상서로운 구름)이라니! 아침부터 길상하네!”
“뭔가 부처님이 돌보시는 느낌이네요.”

시코쿠 순례처들을 돌다보면, 각 사찰의 연기설화를 자주 보게 된다. 그 중에 흔하게 보이는 내용이 ‘코보대사가 이곳에 오셨다가, 상서로운 구름(紫雲)을 보곤 이곳이 불연이 깊은 땅임을 알고서 가람을 세웠다’ 내지는 그 ‘상서로운 구름이 있는 곳에서 불상 등을 발견하고 그 불상을 모실 당우를 세운’ 것이 사찰의 연기인 경우가 많다.

막상 노숙을 한 다음날, 그것도 순례지인 사찰에서 노숙을 했는데 상서로운 구름이라고 불리는 무지개 구름을 친견하니 뭔가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든다. 이 앞으로도 힘내서 순례하라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불보살들의 격려를 받는 느낌이다.

시코쿠의 사찰들은 오전 7시부터 사무(寺務)가 시작된다. 납경을 받자 말자 출발할 생각으로 먼저 참배하기로 한다. 아침에 본 길조에 기분이 좋아 모두 목소리에 힘을 실어 예불을 올린다. 본당과 대사당에 예를 올리고 겸사겸사 본당과 나란히 서있는 신사로 가본다. 작은 사당들은 모두 문이 열려 있었고 작은 청동 거울들이 하나씩 모셔져 있었다.

신토(神道)에서는 보통 자연물을 신이 깃든 신체(神體)로 삼지만 이 외에 거울을 신체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신토의 최고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이 태양신인 점에서 거울이 비추는 태양과 그 반사되는 빛을 아마테라스의 모습으로 여겨 신체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신사에 모셔진 거울들은 모두 뿌옇게 녹이 슬어 있었고, 일부 거울은 본래의 자리에서 떨어져서 방치된 것도 있었다. 얼핏 보아도 신사의 지붕이나 기둥 등에 이끼가 잔뜩 껴있거나 벌레 먹은 자국이 역력하여 전혀 관리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신불분리 이후로 사찰측에서 관리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 신앙의 상징과 대상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는 모습에 마음 한쪽이 착잡했다. 또 모셔진 신들도 일본불교에선 불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쿠마노(熊野) 신사의 신들이라 더욱 그랬다.

풍찬노숙 후 만난 보인 무지개 구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풍찬노숙 후 만난 보인 무지개 구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침 첫 납경을 받기 위해 납경소로 향했다. 납경소의 직원 분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납경을 써줄 준비를 모두 하고 앉아 계셨다.

“방금의 힘찬 예불은 여러분이었군요!”
“앗, 예불소리가 들리셨나요?”
“네, 작긴 해도 들렸답니다. 여기까지 들릴 정도니 꽤나 힘내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아침 7시 30분이 되어서야 메이세키지를 나선다. 보통 이 시간쯤이면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한 둘 쯤 길에 보이기 마련인데 산사는 아직 적막 속에 잠겨있다. 어제 노숙한 자리 근처를 지나며 다시 괜히 하늘을 한번 본다. 새벽녘의 무지개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흩어지고 아침볕에 붉은 구름만이 옅게 퍼져있었다.

다음 사찰인 다이호지(大괜寺)까지는 약 70km. 다이호지가 있는 쿠마(久万)고원을 넘어가면 에히메의 중심인 마츠야마(松山). 마츠야마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대부분 찰소들이 평지에 있고, 또 거리들도 가까운 편이라 하루에 진도가 금방 나아간다.

오늘의 목표는 25km 가량 떨어진 토요가하시(十夜ヶ橋). 이 곳도 시코쿠 순례의 전통과 관련된 설화가 전하는 사찰로 순례자들을 위한 츠야도(通夜堂)이 마련되어 있다. 25km면 그리 힘든 거리도 아니고, 또 길도 56번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이니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하지만 어제 아무 것도 없는 노지에서 노숙해서 일까? 몸이 생각만큼 움직여 주질 않았다. 여기저기서 뻐근한 몸이 비명을 지른다. 결국 함께 걷는 홋카이도 팀의 걸음을 따라가기가 힘들어 도중에 갈라지자고 했다.

“그래, 박상 어제 완전 길바닥에서 잤잖아. 우리도 오늘 토요가하시까지니까 느긋하게 따라 오라구!”

홋카이도 팀이 먼저 떠나가고 오래간만에 나 홀로 순례자로 돌아왔다. 혼자가 되니 다시금 보이는 소리와 풍경들이 있다. 지팡이가 길을 끄는 소리와 그림자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조용한 길 위에 펼쳐졌다. 계속해서 즐겁게 떠들던 입이 오래간만에 닫히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아간다.

풍찬노숙이 몸에 익은 순례길이지만, 그래도 몸에 쌓이는 피로는 어찌 할 수가 없다.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지팡이에 의지해 한발 한발 나아간다. ‘대체 왜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하는 물음을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꼭 되뇌고 만다. 그럼에도 힘을 내어 걷는 것은 이 고행 끝에 만날 새로운 나의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느 스님께서 우리는 불단의 금빛으로 빛나는 부처님만을 봐와서 6년간 피골이 상접하게 수행하신 부처님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또 그 전에 수겁 동안의 생에 걸쳐 수행과 공덕을 쌓아 오신 부처님은 알지 못한다고. 스님의 방에는 파키스탄 박물관에서 찍으신 것이라며 그 유명한 고행상 사진이 걸려있었다.

인도의 힌두 수행자들 중에도 몸의 고통이 강할수록 전생과 이생의 업장이 소멸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거친 음식과 잠자리만을 고집하고, 심지언 몸을 채찍질하며 걷기도 한다. 옛 중세의 가톨릭 신자들도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죄인인 자신을 벌한다는 뜻에서 스스로 채찍질하거나, 뾰족한 징이 안에 박힌 신발 등을 신고 순례를 나섰다고도 한다.

시코쿠 순례길도 역시 자신이 나서서 하는 고행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88곳의 사찰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는 고난의 길이다. 과연 이러한 고행으로 나의 업장은 얼마나 소멸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내 마음과 입에서 불평보단 감사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나 보다. 머리로는 잘 몰라도 몸은 무엇인가 배워 나가고 있음을 안다.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걸어가다 조금 졸려서 잠깐 길가네 앉는데 따스한 볕이 기분 좋아 금세 까무룩 잠이 든다. 그렇게 한잠을 좀 자니 발에 힘이 돌아왔다. 시코쿠의 사찰들이 업무를 마치는 오후 5시 전까지 토요가하시에 도착해야하니 조금 힘을 주어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길이 평탄하게 잘 닦여 있어 그리 힘들지 않았고 어느새 저 멀리 홋카이도 팀도 보였다.

다시 세 사람이 모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코앞이 토요가하시였다, 시간도 적당히 오후 4시쯤에 도착할 듯 했다.

“박상, 혼자 걷는 길은 어땠어? 안 외로웠어?”
“어휴, 외롭긴요! 코보 대사님이 함께 걸어 주셨는데요!”

시코쿠 순례길은 코보 대사가 항상 순례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의 길. 나 홀로 걷더라도 외롭지 않은 배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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