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장이 모이고 이어져 공명하면 온누리를 흔든다

▲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법정스님 글 ‘미리 쓰는 유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스님 말씀처럼 유서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백서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답은 이미 스님이 주셨다. 언제 어디서건 순간순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라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제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발을 막 내딛었을 때였어요. 출퇴근하면서 불교방송을 날마다 들었는데 어느 날 법정스님이 ‘맑고 향기롭게’ 시민운동을 하신다는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입회를 했어요.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시작한 이듬해인 95년이었어요. 처음 한 일이 산에 버려진 쓰레기 줍는 활동이었었어요. 나가보니까 의무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어른은 저하고 학생들을 이끌고 온 지도법사 선생님들 몇 분밖에 없었어요. 쓰레기를 줍고, 맑고 향기롭게 스티커 나눠주는 일을 했지요.” 느낌이 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살아있는 맑고 향기롭게 역사 설송雪松 백지현(법원 사무관, 55)거사 말씀이다.

“법정스님은 그로부터 두 해쯤 뒤, 김천 직지사에서 수련회를 할 때 처음 뵈었죠. 그 뒤로 5~6년을 계속 수련회를 다녔어요. 돌아가신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이나 맑고 향기롭게 이사이신 이계진 선생님도 수련회 동기입니다. 부안에서 농사짓던 윤구병 선생님도 김천 직지사 수련회 때 오셔서 수련회를 같이하면서 강의도 해주셨어요. 그즈음에는 어른스님과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하셨어요. 수련회 끝나고 수계식 때 스님께 받은 법명이 설송雪松입니다.” 눈 속에서도 푸른 기상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푸르게 살라는 뜻이 담긴 법명은 늘 한결같은 백지현 거사에게 안성맞춤이다.

“윤구병 선생님은 자연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일러주셨어요. 설거지 할 때도 세제를 쓰지 않고 쌀뜨물로 설거지하고, 빨래할 때도 절대 빨래비누를 쓰지 않는다는 말씀, 책을 낼 때도 재생용지를 쓴다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 때 부안으로 3박4일 자원활동을 가겠다고 신청했는데 날짜가 맞지 않아서 가지 못했어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쉬워요. 하여간 자연과 함께하는 삶. 지금은 대안학교라 하지만 그때는 무슨공동체학교라고 했는데 거의 초창기 대안학교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선생님이 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으며 강의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변산공동체학교 이야기다. 변산공동체학교는 학교가 따로 있지 않고 마을 전체가 학교다.

평상 밑에 삐져나온 비닐을 당기니
라면봉지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관악산 쓰레기를 꽤 여러 해 동안 치웠어요. 산에 갔다가 툇마루처럼 놓인 평상이 있잖아요. 그 곳에 앉아 쉬다보니 평상 밑에 라면봉지 같은 게 삐죽 나와 있어요. 뭔가 싶어서 당겨보니까 라면봉지, 과자봉지 따위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나와요. 나무 꼬챙이로 파보니까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오더군요. 거의 10년이 넘은 쓰레기들이었어요. 옛날 라면봉지라던가 라면땅 봉지, 과자봉지, 그리고 통조림 깡통이 많았죠. 그 다음에 소주병, 막걸리병 순이었어요. 먹고 난 뒤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지 않고 그냥 버려둔 것이지요.”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산을 관리하는 이들이 가지고 내려오기 귀찮으니까 구덩이를 파고 쓰레기를 묻고는 흙을 덮고 나서 평상을 놓았다는 말이다.

“라면봉지라던가 라면땅봉지, 통조림, 술병엔 모두 제조연월일이 쓰여 있으니까, 학생들은 ‘앗! 이건 내가 갓난아기 때 쓰레기다. 이건 몇 살 때 쓰레기다.’면서 깔깔댔어요. 맑고 사무국 김자경실장네 자제들이 어릴 때 많이 따라다녔어요. 걔들한테 ‘이게 너희들보다 나이를 더 먹은 쓰레기’라고 하면서 웃곤 했죠. 딴 사람은 산에 갈 때 배낭을 메고 가는데 저는 곡괭이를 가지고 갔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면서 ‘산에 가는데 왜 곡괭이를 가지고 가냐고. 물었어요. 평상을 치우고서 쓰레기를 들어내야 하는데, 땅이 단단하게 굳어서 삽질을 해도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아 곡괭이로 캐내야 했지요. 학생들이 늘 40∼50명 함께 갔었는데요. 한 사람 앞에 쓰레기를 큰 비닐봉지 하나 가득 채워 내려왔어요.” 보통 평상 하나에 쓰레기가 1톤 트럭으로 하나씩은 나왔다. 그 일을 한 3년 남짓 했다. 그런데 학생들 의무봉사활동시간이 줄어들자 나오는 학생이 줄어 쓰레기 캐는 일이 어려움에 부닥쳤다.

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에서는 산에 쓰레기만 캐러가기보다는 회원 산행모임을 만들어 산을 타면서 산에 버려진 쓰레기도 주우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도랑 치고 가재 잡자는 얘기. “의기투합해서 산행모임을 만들어 이름을 ‘맑고 향기롭게 산행모임’이라고 지었어요. 99년도든가? 동두천 소요산에서 첫 산행을 시작했어요. 산에 갈 때 집게하고 비닐봉지는 꼭 챙겨갔습니다. 그렇게 산에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운 햇수가 한 6∼7년 됩니다. 관악산에서 학생들과 쓰레기를 캐던 일까지 보태면 10년이 넘도록 쓰레기를 치웠어요.” 꾸준히 이어지다보니 산에 자주 오는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퍼져서, 회원들이 쓰레기를 주우면 산행을 하는 분들이 수고한다면서 먹을거리도 나눠주곤 했다. “이런 얘기 드리기 쑥스럽지만 그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정부에서 홍보도 하다 보니 등산로 둘레 눈에 띄는 곳에 있던 쓰레기가 차츰 사라졌어요. 그 뒤로 저희는 외진 곳을 찾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웠죠.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저희 산행 모임 식구들이 쓰레기를 줍는 일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어요.” 무슨 일이든지 처음은 작고 소박하다. 그러나 낙숫물이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작은 파장이 모이고 이어지면서 함께 공명共鳴하면 온누리를 흔든다. 쓰레기가 줄어들자 맑고 향기롭게 공식 산행모임은 해산했다. 그렇지만 모임식구들이 그대로 남아 산행을 하며 자연을 느끼는 친목모임으로 성격을 바꾼 지도 4~5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들 산행에는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와 집게가 늘 함께한다.

꾸준히 자원 활동 다니고, 또 수련회 때 가서 거들곤 하는 설송거사를 지켜보던 법정스님이 지금 길상사 지장전 자리, 조그만 건물에 있던 맑고 향기롭게 사무실로 부르셨다. “스님은 ‘이렇게 젊은 사람이 맑고 활동을 열심히 돕고 애쓴다며 고맙다’고 말씀하시곤 스님 책 <산에는 꽃이 피네>에다 사인을 해주시며 격려해주셨어요. 제겐 더없는 영광이죠.”

스님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 “신문에 실린 스님 칼럼과 <무소유>를 읽고 ‘참, 청빈하고 수행이 깊으신 스님’이라고 느꼈어요. 그 때 이미 결혼을 했을 때인데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출가해서 스님마냥 살아봤으면 진짜 좋겠다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스님 덕분에 '맑고 향기롭게'와 인연 맺게 되어 고맙죠.” 설송거사는 ‘맑고 향기롭게’ 취지가 너무 좋아 둘레 사람한테 많이 권했다. 함께하자고. ‘묘희원’ 모둠에는 그때부터 함께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설송거사가 95년도 불교에 처음 입문할 때, 제대로 배우자는 생각에 조계사 불교대학을 2년 동안 다녔다. 졸업을 하고 나니까 지도를 했던 스님이 포교사 고시를 한번 보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권했다. 공부했으면 되었지 무슨 포교사냐 싶어 펄쩍 뛰었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마지못해 시험을 봤는데 떡 붙었다. “그즈음 포교사단을 새로 결성할 때였어요. 말이 어눌한 편이라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는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하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얼굴을 내밀었죠. 그러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하는 불교사회복지 강의를 한 해 동안 들었어요.”

마침 설송거사와 함께 사회복지 강의를 들은 도반 가운데 자재정사(지금 묘희원)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있었다. 그 인연으로 그곳을 봉사처로 삼아 포교사단에 포교봉사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포교사들하고만봉사를 갔어요. 2000년이었어요. 그 때 자재정사에선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려고 밭농사를 한 3,000여 평 지었는데 우리는 밭일을 도왔어요.” 그렇게 몇 해 지난 어느 겨울 신규 포교사들이 왔다. 여자 포교사들도 꽤 있었는데 마침 겨울철에는 농사일이 없으니까, 외양간에 가서 모아놓은 거름을 경운기에다 싣고 밭에 가서 뿌리는 일을 했다. “겨울에 일하자니 여간 춥지 않습니까? 냄새도 몹시 나니까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들도 감당하기에 벅찼어요. 너무 힘드니까 포교사들이 한둘씩 빠지더니 분위기가 흩뜨려졌어요.”
사람이 빠진 자리를 메울 길은 없고, 손은 달려서 고민하던 설송거사는 하는 수 없이 맑고 향기롭게 산행모임 식구들한테 “내가 포교사를 하면서 자재정사라는 곳에 나가서 농사를 짓는데 손이 모자라서 그러니, 생각이 있는 사람은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처음에 두 사람이 쫓아오더라고요. 그랬는데 다녀오신 분들이 ‘거기 가니까 공기도 좋고 일할 맛이 나더라.’면서 부추겼어요. 그래서 맑고 향기롭게 산행모임 식구들이 여럿 동참을 하게 되었죠.” 맑고 산행모임 식구들은 자꾸 늘어나니까, 포교사들은 더 위축되어서 나오지 않아 자재정사 포교봉사팀에는 설송거사 혼자만 남게 되었다. 자연스레 포교사단 포교봉사팀은 해체되고, 맑고 향기롭게 나눔모둠이 되었다. 포교사단 포교봉사팀 산파였던 설송거사는 뜻하지 않게 맑고 향기롭게 묘희원 나눔모둠 산파역도 한 셈이 되었다. 물이 골 따라 흐르듯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난다.

▲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풀과 꽃, 나무를 가로지르는
빛 한 줄기를 모으면 마법이

“자재정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곳인데요. 자재정사가 묘희원이란 사회복지법인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맑고 향기롭게 봉사자들이 가면 따뜻하게 맞아 주셨어요. 봉사자들이 가면 재가자들이니까, 절이지만 일할 때 막걸리를 먹어야 힘이 난다면서 막걸리를 받아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으시곤 했어요. 그 때 계시던 총무스님이 진짜 집처럼 편안하게 해 주셨어요. 냉장고나 주방에 가서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꺼내다 먹으라고 그럴 만큼. 새참으로 과일이나 막걸리 주전자를 스님이 손수 갖고 오셔가지고 농삿일할 때는 배가 든든해야 한다면서 따라 주시곤 했어요. 가을걷이를 할 때는 한 해 동안 뼈 빠지게 애썼는데 맛이라도 조금씩 봐야 된다고 봉사자들한테 무를 한 두 개씩이라도 꼭 챙겨 들려 보내셨어요. 그냥 간다고 손사래를 쳐도 땀 흘리고 농사지었는데 이런 보람이라도 있어야지. 그냥 가면 당신 마음이 편치 않아서 안 된다고 그러셨어요.”

농사는 한 철이다. 농사철에는 농사짓지만, 여름에도 비가 온다든가 가을걷이 끝내고 겨울에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방청소나 주방청소도 해드리고, 할머니들만 계신 곳이니까 여자회원들은 어르신들 목욕도 시켜드리고, 김장할 때 양념도 미리 만들어 드리고, 장 담글 때는 메주를 풀어서 장 담글 준비해드리고, 일 년에 한 차례는 사무국 지원을 받아 버스 대절해서 어르신들 모시고 여행을 가기도 했다. “지난해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양온천에 가서 온천욕을 하는 행사를 했습니다.”는 설송거사, 17년을 한결같이 몸으로 말해왔다.

“그림은 그저 부분 합이 아니다. 소는 그냥 소이고, 초원은 그냥 풀과 꽃이고 나무를 가로지르는 햇빛은 그냥 빛 한 줄기지만, 모두 모으면 마법이 벌어진단다.” 영화 ‘플립Flipped’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이르는 말이다. 화엄경華嚴經은 본디 잡화경雜花經이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을 줄인 말로 들판에 한껏 피어난 화려하거나 소박하고 이름 없는 꽃들이 공명共鳴하는 그림이다. 그처럼 ‘맑고 향기롭게’란 모두가 평등하여 제 나름대로 핀 자태와 향기가 어우렁더우렁 공명하도록 디자인하고 실천하는 삶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은 높낮이 없이 어우러지는 공평한 세상을 일컫는다.

(지난 연재 김용태 교수는 김영태 교수, 1989년은 1994년 잘못이었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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