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노경일 목사 ②
[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노경일 목사 ②
  • 글=법정 스님 자취를 더듬는 변택주
  • 승인 2011.06.0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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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나누면 두 배, 눈물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웃음을 나누면 두 배, 눈물을 나누면 절반이

웃음을 나누면 두 배 되고
눈물을 나누면 절반되듯
기쁨으로 나누는 우리는 하나, 하나~

너와 나 서로를 이해하고
너와 나 서로를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는 하나, 하나~ 친구

“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에 가신 뒤 광주에서 뵌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혼자 사시는 스님이 걱정이 되어 ‘손전화기 하나 사드릴 테니까, 아플 때 전화나 하시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무슨 손전화냐며 손사래를 치시더군요. 스님은 제가 무례하게도 ‘외로우시면 결혼이라도 하시라’는 농담도 건넬 만큼 친근하게 보듬어주시던 정감어린 분이셨어요. 나이가 조금 조금씩 들면서 느끼는데 사람답게 사는 일이, 일상에서 거짓말 덜 하고 남에게 피해 덜 주고 상식에 맞게 살고, 시대 흐름을 너무 무시하지 않고, 지나치게 냉소하거나, 애써 좋은 척하지도 않는 삶. 굳이 말하면 중도이라면 중도이고, 자연스러움이라면 자연스러움인데, 그렇게 잘 정연되어 계시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저도 일부러 수준 높여서 다가서려 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해도, 그대로 받아들이셨어요. 상대를 받아내는 부분이 훌륭하다기보다는, 그냥 상대방이 편안하게 해주셔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한 분 없다, 그런 느낌보다는
사람은 저렇게 살다 가야겠다구나

“워낙 자연스럽게 대해주셔서, 스스럼없이 이어져 왔어요. 세상을 두루 꿰시는 어른이, 끈 짧은 제 말씀을 듣고도 ‘거 참, 그 이야기 좋네.’ 하시고, 제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이야길 해도 웃으면서 잘 받아주셨어요. 단점도 많으세요. 틀린 꼴 못 보시고. 아니면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어요. 우린 그 분이 위대한 성자이길 기대한 적도 없고, 외려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지내놓고 보니까 ‘그만한 분이 없다.’ 그런 느낌보다는 ‘사람은 저렇게 살다가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삶에 큰 지표가 되는 어떤 그림이랄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그림 가운데 하나가 스님이죠.” 담담하게 털어놓은 노일경 목사 눈매가 선선하다.

법정 스님은 돌아가시기 두 해 전, 노일경(55) 목사에게 FTA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농민을 생각한다면 FTA는 문제가 있다. 4대강 파헤치기는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말씀했다.
“스님이 참 고마워요. 스님은 이 정권이 짜증나리만큼 의도를 가지고 한쪽으로 몰아가는 사회 문제에 거칠게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FTA가 농민들에게 뭐가 좋겠느냐? 4대강 사업이 자연에게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느냐?’ 하나하나 되짚으시며 자연스럽게 말씀하시는 통찰력을 가지고 계세요. 스님은 쉬운 말로 글을 쓰지만, 그런 글이 절대 평범한 사고만으로 나오지 않잖아요. 글이 펄펄 살아 숨 쉬는 까닭은 복잡한 생각을 다 거치고, 많은 고민과 깨우침을 끝에 나온 결정체이기 때문이거든요. ‘그건 아니지.’ 하는 말씀은 치열한 검증을 거쳐서 나온 말씀이에요. 세게 말씀하든 부드럽게 말씀하든, 시냇물이 흐르듯이 사회에 건강한 생각이 계속 흐르게끔 늘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목회는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저는 중학교 시험을 마지막 보던 세대에요. 학교나 부모 제게 심어준 가치관은 ‘죽어라, 공부해서 성공하라!’였어요. 저는 그런 가치관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어요.”

하늘을 나는 새나 들꽃은
수고도 않고 길쌈도 않지만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회를 갔는데 이제껏 귀에 박히게 들어온 얘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 하늘을 나는 새를 봐라. 들판에 핀 들꽃을 봐라. 그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차려입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답이라고 하는데도 있구나.’ 충격이 컸어요. 그랬어도 그냥 그뿐이었어요. 오래도록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내왔는데…. 제가 80년 5월 30일에 군에서 제대를 했어요. 고향에 돌아와 보니까. 처참했어요. 제 고향이 광주거든요. 돌아와서 쉬어야 할 안식처인 고향이 다 부서져 내렸어요. 이 정권, 전두환 이 사람을 향한 분노에 앞서 사람이 있을 데가 없다는 허탈감. ‘아, 사는 일이 참 힘든 거구나. 산다는 게 뭘까?’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세상일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강요하는 질서나 가치에 의해 나란 존재는 그저 끌려갈 뿐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남북갈등 동서갈등으로 쪼개진 겨레가 또 참담한 역사를 기록하는구나.’하는 마음이었어요. 다 망가지고 처절하게 부서져 내린 고향 앞에서 저 또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노일경 목사는 이제 남는 일은 가장 기본이 되는 생계,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싶었다. 그러나 물질 가치는 얼마든지 추구하면 된다지만, 몰아닥치는 정신 가치 공황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헤매는데, 누가 <꿈을 비는 마음>이라는 문익환 목사님 시집을 줬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많은데 어려워마라…’ 이렇게 시작되는 통일 시였다. 그 시가 젊은 노일경 사유를 뒤흔들었다.
“큰 울림이었어요. 그동안 제가 다니던 교회는 예수를 열심히 믿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사랑도 하고 착하게 살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좋은 삶이라고 가르쳐왔어요. 현실 갈등과 겨레가 겪어야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늘 현실과 동떨어지게 좋은 인간을 지향하는 도덕만 알리고 실제 삶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5. 18 같은 큰 재앙이 있을 때 과연 무엇을 했을까?’ 되돌아봤어요. ‘교회란 그냥 허울 좋은 장식에 불과할 뿐이구나.’ 실망하면서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갑갑증을 어떻게 할 줄 몰랐어요. 그랬는데 문익환 목사님 시를 보고 예수 삶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통일 문제를 신앙 과제로, 인생 과제로, 기독교인 과제로 여겨 하나님 뜻을 말할 수 있는 이런 고백이라면 참 멋지다. 돈이야 언제든지 악착같이 벌려고 덤비면 벌 수 있으니까. ‘존재 공허함을 뚫고 나가려면 신학을 한 번 해봐야겠다.’ 마음먹고는 한신대를 갔어요. 문익환 목사님이 한신대에서 교수로 계셨거든요.” 5.18을 겪어 황폐해진 청년 노일경 가슴에 문익환 목사가 뿌린 씨가 삶을 뒤바꿨다.

“지나고 보니 기독교 안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삶이 참 쉽지 않더라고요. 기존 종교에 등을 돌린 채, 아주 급진 혁명가가 되어 혁명에 가까운 삶에 뛰어들기도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혁명을 지향하는 신학자는 있어도 삶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지가 않죠.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기는 더 어렵고, 갈등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85년도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하지 않았어요. 7년 여 동안 공무원 노릇도 하고, 사업도 하고, 사회과학도 공부를 했어요. 딱히 방황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가려던 길을 가다 멈추고 덤빈, 돈 버는 일이나 직장생활 모두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런 노일경 목사에게 부인 김학희 여사가 말한다. “아무래도 당신은 교회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그때 노 목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예수를 떠올렸다.

“예수와 만남은 제겐 큰 분기점이었어요. 학교도 부모도 세상도 내게 줄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심어준 인물 예수.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나를 설득하는 인물이라면 기꺼이 같이 가보자. 싶었어요. 꽃이나 새, 바람 같은 자연과 통합되고 가장 살기 어려운 사람이랑 통합되는 사랑이 대안처럼 느껴졌어요. ‘출세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남을 짓밟고 눌러서 뭘 어쩌자는 거지?’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저도 남한테 지기도 싫고, 부딪히면 이기고 싶은 사람이지만, ‘나한테 깨진 사람은 또 어떻게 되나?’ 싶었고 저도 그렇게 깨지면 참 살맛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때 젊은 예수가 던진 말씀은 아주 서투른 설교들이었을 텐데, 저한텐 큰 감동이었어요. 그 여진이 여태까지도 남아있어요. 그게 종교 원류라면 남을 깎아내리고, 적으로 돌리고, 증오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없거든요. 그래서 92년도에 돌아왔죠.” 결국 노일경 삶을 뿌리째 뒤흔든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였다. ‘만남은 눈뜸이다!’

▲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교회로 돌아온 노일경 목사는 먼저 섬으로 가 전도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도시로 돌아와 부목사 생활을 6년 한 뒤, 시골교회 목회를 맡아서 7년 동안 봉직했다.
“서울에 온지 한 10년쯤 됐어요. 돌아와서 뭐 특별하게 큰 교회나 작은 교회 지향하려 들진 않았어요, 세상과 종교, 사회에 대해 환멸을 거친 뒤니까, 이제는 무엇인가를 비난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보다 성실하고, 그게 작든 크든 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차근차근 하나하나 일궈나가려고 해요.”

사람 예수를 쏘옥 빼닮은 십자가
사람 냄새나는 도타운 예배 풍경

2월이 저물어 가는 어느 일요일. 노일경 목사가 목회를 하는 월곡교회를 찾았다. 차도 들어가지 않는 좁다란 골목 안에 있는 교회에 들어서면 예배당 앞 화단에 십자가가 땅에 뿌리 내리고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교회 십자가는 지붕 위나 높다란 벽에 걸려있는데, 이렇게 땅을 디디고 서있는 ‘사람 예수’를 쏘옥 빼닮은 십자가를 만나기는 처음이다. 새롭다. 예수님을 가깝게 뵙는 느낌이다. 교회라고 해봐야 작은 건물 두 동이 전부다. 그 가운데 조금 큰 건물이 예배당이고, 그 곁에 딸린 두어 평 남짓한 작은 건물이 식당이다. 신도로 등록된 가정이 모두 50여 가구 남짓한 자그마한 교회다. 교회 안에 들어서니 마주치는 신도들마다 밝은 눈인사로 나그네를 맞는다. 그 살갑고 푸근함에 처음 간 곳이란 사실을 잊고 오래도록 친숙한 이웃을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단출하고 소담스런 성가대가 찬송을 이끄는 대로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소박한 예배 풍경이 정겹고 도탑다.

월곡교회는 1955년 8월 15일에 시작해 57살이나 된 역사 깊은 교회로 처음부터 독재와 불의에 맞서 ‘빨갱이 교회’라고 낙인찍힐 만큼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왔다. 2005년 5월부터 목회를 이끄는 노일경 목사는 ‘신도들이 스스로 어깨동무하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4년부터 ‘창동노인복지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이 교회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을 연지 올해로 19년째로, 2007년부터 공부방을 월곡지역아동센터로 바꾸어 노일경 목사 부인 김학희 여사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지역 안에 사는, 소득이 적거나 결손 가정, 맞벌이 가정 자녀를 보듬어 안아 방과 후 공부방을 열고, 급식을 해주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라고 해서 따로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배당 옆에 딸린 두어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이 바로 지역아동센터다. 어린이 책을 비치해 놓은 도서관이기도 한 이곳은 평일에는 어린이 놀이방이자 방과 후 공부방이고, 일요일에는 어린이 예배를 보는 작은 예배당으로 바뀐다. 또 이곳 어린이들은 모두 큰 예배당을 피아노교실이라고 부르는데 예배당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예배당이고 지역아동센터고 모두 변신 잘하는 트랜스포머다. 어린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틈틈이 배우고 갈고 닦은 솜씨를 해마다 지역아동센터 생일을 맞아, 서툴면 서툰 대로 잘하면 잘 하는 대로 솜씨 자랑을 한다. 올해로 열아홉 돌을 맞은 월곡지역아동센터 생일 잔칫날,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은 입 모아 ‘우리는 친구’를 불렀다.

웃음을 나누면 두 배 되고
눈물을 나누면 절반되듯
기쁨으로 나누는 우리는 하나, 하나~

너와 나 서로를 이해하고
너와 나 서로를 용서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는 하나, 하나~ 친구

친구들아 손에 손 마주잡고
한 소리로 높은 꿈을 노래하자
친구들아 불타는 태양을 향해
파도처럼 춤을 추며 달려가자

어두운 바다의 등대처럼
광막한 사막의 생수처럼
희망으로 빛나는 우리는 하나, 하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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