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낮음, 앞서고 뒤섬이 이끌고 받쳐주는 세상돼야

▲ 노일경 목사. 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높고 낮음, 앞서고 뒤섬이 이끌고 받쳐주는 세상

있고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쉽고 어려움은 서로 이루어주며,
길고 짧음은 상대를 드러내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 다하게 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화답하고,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른다.
- 가을저녁에 목회 일에 헌신하고 있을 노일경 목사에게

봄이라기에는 아직 일러 따사로운 햇볕이 반갑고 그리운 2월 중순 오후. 한신대 음악감상실에서 만난 월곡교회 담임 노일경 목사(55)는 법정 스님이 보내 주신 글이라며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씀을 잔잔히 읊는다. 반쯤 감은 그윽한 눈에 스님이 가득했다. “목회란 높고 낮음, 앞서고 뒤섬이 서로가 이어져있음을 일깨워주는 일이거든요. 저는 개신교가 추구하는 성장 동력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지만, 무엇을 위하고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과연 지금 추구하는 성장이 바람직한가? 적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공동체들이 자유롭게 행복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스님이 주신 노자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요.” 앞뒤나 높낮이, 음과 소리가 어우렁더우렁 서로 이어주고 받쳐주는, 세상 본디 면목을 드러내고 알리는 일이 목회라는 말씀이다.

장독 뚜껑에다 짐승 밥을
놓아둔 모습이 인상 깊어

법정 스님은 언제 처음 뵈었을까?
“스님은 우리한테는 그냥 좋은 어른이었어요. 젊은 시절, 저희 부부가 아직 결혼하기 전, 5.18을 겪은 지 서너 해쯤 지나 스님이 쓰신 책 <서있는 사람들>을 읽고 나서 가뵈었어요. 집사람이 스님을 워낙 따르고 존경해서 집사람을 따라. 스님을 뵈러 가면서 시국은 어수선한데 당신 혼자만 이런 멋진 암자에서 홀로지내는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져 계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어요. 물론 불일암에 살기 전에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셨다지만, 그 뒤로 적극 나서지 않아 시큰둥함이 마음 한 켠에 깔려있었지요. 저는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기질을 가졌어요. 그래서 사람을 딱 보면 ‘아, 이런 사람이구만.’하고 단정 짓는 버릇이 있는데다가 별로 예의 바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스님은 그런 저를 무장 해제시키셨어요. 편안했어요. 그래서 좋아했어요.”

노일경 목사가 불일암에서 받은 첫 인상은 무척 가지런하고 깔끔했다. 암자 뒤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부엌은 정갈하고 깨끗했으며, 후박나무 옆에 ‘빠삐용 의자’라고 일컫는 스님이 손수 장작으로 만든 걸상이 놓여있었다.
“스님은 거기 앉아서 명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티내지 않고 격이 없는 스님 모습이 좋았어요. 우리도 특별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저 자연스럽게 뵈었죠. 종교 얘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어요. 집사람은 그때는 가톨릭이었고 저는 개신교 신학생이었는데….”
노일경 목사는 종교란 자기를 둘러싼 울타리고.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선택하게 된 문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종교란 살다보니까 주어진 면이 많다고 봐요. 스님도 살다보니까 스님이 되셨을 테고, 저도 그렇죠. 처음 뵌 스님은 세상에 대해서 초연하시고 약간 냉소 띤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암자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가지런하고 정갈한 모습에 ‘아, 이렇게 사는 분도 있구나.’ 싶었죠. 특히 화단에 장독 뚜껑 엎어서 짐승밥을 까치밥 주듯이 놓아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 뒤로 한 해에 한 두어 번씩 뵈었죠.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지내왔어요.”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다
용서·친절·사랑이 하나로 통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그 무엇이 긴 세월 동안 스님과 관계를 잇게 했을까?
“좋아했죠. 서로. 아니, 저는 그랬어요. 뵙는 횟수가 늘고 나이가 들면서 깔끔하고 정갈한 스님 성정이 이해도 되고. ‘아, 사람이 이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냥, 스님을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스님은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를 퍽 오래 전에 번역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이 분이 학구열이 대단하시구나.’하고 느꼈어요. 불교인이 볼 때 어떨지 모르지만 젊어서 원전을 그렇게 풀어낼 정도라면 학구파시잖아요. 법구경을 번역하셨다면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법구경하고 복음서하고 비슷하지 않아?’ 그 말씀을 듣고 나서 견주어 보니까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스님은 종교에 대해 생각이 자유로우세요. <일기일회>인가요? 스님 법문집. 거기서 ‘종교란 친절이다.’는 말씀을 하셨던데요.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윤리인 용서, 친절, 사랑과 스님 말씀이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스님과 만남에 거리낌이 없었어요. 종교 관점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싸울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면 고백 문제이고, 자기 지향 문제로 서로 처지가 다르고 지향점이 다를 뿐이지요. 모두가 친구가 되는 일이 자비이고, 사랑일 텐데 굳이 엇나갈 일은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스님하고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구요.”

▲ 노일경 목사.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장이 근승랑
어느 해 부부가 불일암에 막 들어서는데 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노일경 목사는 “아니, 스님 무슨 공부하셨어요? 독경하셨어요? 아직도 초보운전이세요?”하고 농담을 던졌다. 그랬더니 법정 스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더 초보운전을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국어책을 읽었지.”하셨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확인해보니 우리 기독교에도 그런 전통이 있더군요. 모든 종교 전통을 훑어 올라가보면 소리 내어 낭송을 하잖아요. 그게 말로 울리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새기고 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종교 기본훈련임을 알았죠.”라며 기억을 되살리는 노일경 목사. 선선한 눈매에 스님을 향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스님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읽었다는 말씀은 나그네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으며 스님이 수계를 받은 하안거 해제 날이 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늘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며 초심을 되살린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긴 세월 동안 일 년에 한 두 차례 만남은 주로 어디서 했을까? “스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도 뵙고, 시내 나오시면 뵙기도 했어요. 제가 시골 교회에 있을 때 두어 번 찾아오셨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제가 없어서 뵙지 못했어요. 오셔서, 불교에는 도량을 돌면서 하는 의식이 있잖아요? 그 의식을 해주고 가셨다더라고요.” 도량석이다. 노일경 목사가 있는 시골 교회 도량석을 하면서 스님은 어떤 축원을 하셨을까?

93년 법정 스님은 노일경 목사 부부에게 선禪 수련회에 동참해보라고 권하셨다. 스님 말씀에 따라 노 목사 부부는 일주일 동안 송광사에서 선 수련을 했다. 이 일이 노일경 목사가 평소 자기 종교에 대해 느꼈던 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선 수련이 단순한 수련이 아니구나.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존재 중심을 찾아가는 수양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개신교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지만 깊이 있는 수행법이 별로 없어요. 그냥 교회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새벽기도를 한다든가 십일조를 드린다든가 주일을 성실하게 잘 지키면 마치 교인 본분을 다한 양 여길 뿐. 자기 관리, 내면 문제나 상처를 보듬기 위한 수행과 성찰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는 게 늘 아쉬웠어요. 기도원 가서 막, 소리 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고…. 내면에 대한 성찰이 저희들한테 모자라는데 불가에는 그게 있더라고요. 진정 기독교인다우려면 더 열려 있어야 하잖아요? 자비나 사랑이나 말이 다를 뿐이지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죠. 교회에도 그런 전통이 있는지 살펴봤더니 가톨릭에 ‘피정’이 있더라고요. 향심기도, 구심기도가 있고요. 유달리 약한 게 개신교에요. 개신교도 하자면 못 할 것도 없죠. 특별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기도와 선도 맞물릴 수 있을 테고요. 일주일동안 발우공양을 체험을 해보면서 먹는 문화, 먹는 태도를 바꿀 대안이구나 싶었어요. 수련회를 통해서 불가가 가진 좋은 점들을 많이 느꼈어요.”

예수, 부처가 세월을 넘어 만났다면
열반이니 구원이니 논쟁을 벌였을까?

노일경 목사는 시골교회 목회를 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있는 서낭당을 보면서 생각한다. 서낭당은 민간무속문화인데 개신교에서는 왜 죄악이라며 깎아내리고 무시할까? “그런 민속은 우상숭배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일 뿐인데. 그 대상이 나무나 돌이 됐던 짐승이 됐던 사람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고마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어요? 자기들만이 정통이고 유일하다고 얘기하며, 종교를 빌미로 권력을 휘두르고 자본주의와 맞물려 탐욕스럽게 돌아가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개신교 행태가 외려 바벨탑 쌓기고 우상숭배지. 일반 사람들이 뭔가를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떻게 우상숭배라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가끔 그런 설교도 해요. 우리가 믿는 예수가 그렇게 남을 깎아내리고 욕하도록 가르쳤는가?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철저하게 이방을 배제했던 까닭은 약소민족이 살아남으려고 친 몸부림이에요. 상대를 철저하게 배격해서 자기를 일으켜 세우려는. 자기 종교, 야훼 종교를 살아남게 하려는 몸부림과 우리가 오늘날 다른 종교를 대하는 자세가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종교가 서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어요?”
언젠가 ‘예수와 부처가 만났을 때’란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노일경 목사 ‘두 사람이 만났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고 말씀한다. 두 사람이 오백년 세월을 뛰어넘어 만났다 치면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을 거다. 상대가 고수인지를. 서로 진면목을 알아차린 두 사람이 과연 요즘 사람들처럼 자기 떼거리를 몰고 와서 열반이니 구원이니 하면서 논쟁을 벌였겠느냐? 서로 법담을 나누는 좋은 도반으로 지내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를 했단다. “그렇게 보면 불교와 기독교가 싸울 일이 없지요.” 법정 스님과 노일경 목사가 스스럼없이 통하는 까닭을 알았다.

“스님이 얼마나 깊이가 있고, 얼마나 대단한 사상가인지는 잘 모르지만, 받아들이기 쉬운 보통 말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편안하고 편견 없이 만나주셨어요. 저도 그렇게 큰 감동이나 감정 없이 스님을 만났고요. 제가 만난 모든 사람 가운데 당신이 하신 말씀과 가장 닮은 사람. 당신 말처럼, 글처럼 사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사람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나도 멋진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저 어른은 글이 멋있음을 떠나서 글만큼 사는 대단한 양반이다.’고. 어찌 보면 참 대단하고, 어찌 보면 그저 세상 이치에 맞게 살다 가신 어른이시죠. 그게 좋았어요. 바쁘던 바쁘지 않던 간에 내키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기 싫잖아요. 글을 잘 쓰는 유명한 분은 곳곳에 많으니까 굳이 법정 스님이 아니어도 되죠. 스님을 뵈면 스님도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나절 나누기도 하고, 서너 시간 동안 나누기도 했죠.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아요. 어떤 특별한 사상이나 인연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고, 소소하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젊었을 때 같으면 저도 이야기 가운데서 뭘 끌어내려고 했겠죠. ‘시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쭈었을 텐데, 이젠 그런 이야기가 싫고 좋은 어른 뵈었는데 편안하게.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댈 텐데 우리라도 편안하게 해드리자.’ 싶어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가만히 들었고, 스님도 우리한테 그냥 일상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들 걱정도 해 주시고, 저희아들도 스님을 할아버지처럼 생각해 가끔 같이 찾아뵙곤 했죠. 서른 해 가까이 스님과 만남이 저희 부부에게는 복되고 좋은 일이었어요.” 잔잔하게 털어놓는 노일경 목사 말씀을 들으며 이들 부부에게 살짝 부러움이 일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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