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젊은 분들도 그렇거니와 애들서부터 어른까지 다 알아야 할 인생관, 인생이 어떻게 해서 자기한테 주어졌고 어떻게 조화가 돼서 돌아가는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화원의 꽃이 저렇게 한데 합쳐져서 조화가 이루어졌듯이, 또는 산의 고목이나 벌레 먹은 나무들, 짧고 긴 나무들, 풀 등도 각기 모습이 다 다른 것들이 같이 모여 있기에 조화를 이룬다는 것, 산골마다 물도 좋고 돌도 있고, 그 여러 모습들이 조화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눈에 비추어진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것도 역시 그와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질문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어렴풋이 이해는 가지만 확실히 몸과 마음이 각각 있는데 어찌 둘이 아니라 하시는 것인지요. 답변 우리가 항상 몸을 보시면 아신다고 그랬죠. 몸을 보실 때 공체죠. 간단히 말해서 공체로 우리가 살죠. 그런데 딴 사람도 공체란 말입니다. 딴 사람도 공체고 나도 공체고 전부 여기 있는 분들 다 공쳅니다. 공체고 공생이고 공심이고 공용을 하시고 사시고 또 공식으로서 우리가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공식으로서 그냥 들이고 내고 삽니다. 그러니까 “모두 전체가 공해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3(남) 저는 스님 법문에서 주인공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그 주인공은 제 몸속에 있는 것인지, 또 우주의 허공 법계에 꽉 찬 것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과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그러면은 염불이나 기도는 꼭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주인공에게 맡길 경우가 된다면 그렇게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여쭤 보는 것입니다.큰스님 뭐, 문은 여기도 많죠. 염불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한층 더 분발해서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 만물이 다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함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물에 가면 싱그럽고 물이 좋죠? 그러니 물은 말없이 날더러 물같이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에 꽃도 나같이 살라고 하는 겁니다. 모진 풀뿌리를 봤을 때도 나를 보고서 지혜롭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체 만물은 다 나같이 살라 하니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모로 봐서 지극하게 믿고, 믿는 것을 바깥으로
살아서 마음 도리 알아야 한다는데질문 스님께서는 살아서 이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 마음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요.답변 항상 여러분한테 생활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교재라고 했습니다. ‘불(佛)’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교(敎)’라는 것은 생활,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이유가 어딨느냐. 사람이 살면서 내 주인공의 줄을…, 이건 근본이기 때문에 움죽거리진 않습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의 줄을 잡고 그 언덕을 넘어서야 된다는 얘기죠. 즉 말하자면, 천야만야한 산을
(지난 호에 이어서)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한다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전부 바깥에서, 지금도 거기 싸우는 나라 어딥니까. 거기 대통령이 말하는 데도 “우리는 알라신이 이기게 한다.” 그러고는 “저렇게 악인들은 다 떨어진다.” 즉, 죽는다 이거죠. 조그마한 쿠웨이트가 기름으로 인해서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삼분의 일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것도 적다고 그냥 뺏어 버린 거 아닙니까? 그렇게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부처님인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페만’이 아니라 ‘패망’이죠. 마음 한생각에
새해가 오자마자 이라크페만 사건이 벌어지고, 뭐, 예견했던 바이지마는 그렇게 속성과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말이 안 되지마는 아무튼 사람들이 많이 놀랐을 겁니다. 예전에도 여러분한테 얘기한 적이 있죠.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 완성을 해야만이 외부의 모든 것들을 다 한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 한마음은 빛보다 더 빠르다고요. 빠르게 오고 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시대는 보는 것도 컴퓨터나 미사일이나 또는 인공위성을 띄워서 두루 하면서 보는 그 견해가 얼마나 많이 발전이 됐는지, 그 먼 거리를 눈앞에 보고 있는 시대
참다운 인생의 길은 간다는 것은질문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하는데 그럼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해야 참다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되는지요. 답변 여러분은 그렇게 겪어 보지 않았고 또 실감 나지 않는 일이 돼서 모르시겠지마는 이런 걸 얘기로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실감 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증명이 되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속에도 그 돌에 있는 그 느끼, 또는 흙의 느끼 그런 것만 걷어 먹고 남하고 싸움하기 싫고, 또 연쇄적으로 잡아먹어 가면서
질문자1(남) 스님,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번 날 냉수를 제가 한 컵 마셨더니만 상당히 시원했습니다. 근데 그 기분에 온 세상이 다 시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에 ‘그 한생각이면 모든 것이 다 같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큰스님 본래 우리가 공생, 공심으로서 공용을 하고 돌아가고 있지요. 그건 대의적인 문제고요. 내가 한생각을 내서 옆의 사람도 못 보던 거를 알게 됐다, 또 내가 물 한 모금 마시면 내가 시원하니까 딴 사람도 다 시원할 거다 하는 것도 내가
올 새해에는 여러분께서 한마음의 도리에 더욱 정진하셔서 가정에 병고 액난이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좋은 일도 있고 언짢은 일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인간뿐이 아니라 만물의 살림살이가 다 그러합니다. 우리 가정만 그런 게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도 그렇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그렇고, 우리 인간도 역시 그렇고, 고통이라는 것은 언제나 뒤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도 슬픔도 괴로움도 아닌 그 가운데서 내 마음을 발현해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 돼야겠죠. 하여튼 제가, 아
여여하게 살고 싶어요질문 저는 생각이 많고 분별심이 많아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여여하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열심히 참선도 해 보고 경전 독송도 해 보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참 부끄럽습니다. 저 같은 이들에게 채찍이 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그래서 사대 성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똥 누러 갈 때도 ‘내가 눠야 될까, 안 눠야 될까’ 하고 가느냐? 똥 마려우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화장실로 가
십 년, 이십 년, 근 삼십 년을 두고 여러분을 접해 왔으나 여러분을 가만히 볼 때마다 참, 내 몸과 같이 아프고, 그 아픈 말은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의학적으로도 발전이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해서 나을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도리가 있었고, 그 후에도 그런 도리가 많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의학적으로 발전이 돼서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지수화풍으로써 형성돼서 미생물이 생겨서 그 모든 미생물로 하여금, 그 생명으로 하여금 수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나투어서
여러분이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고 하시죠? 그 이름만 들어도 자성 삼보라는 그 뜻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나의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과, 움죽거리지 않는다 하면은 또 이상스럽게 듣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레가 돌아가도 중심이 끼워진 주 중심 봉은 움죽거리지 않습니다. 힘만 배려해 줄 수밖에 없는 거죠. 힘만 배려해 준다 이겁니다. 움죽거리지는 않는다. 수레가 돌아갈 뿐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근본도 부동자세한 그 뜻으로서의 힘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배출하는 반면에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서
모든 일이 자기 탓?질문 모든 일이 다 자기 탓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생에 지은 인연에 의해서 닥치는 것인지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답변 우리는 요렇게 짤막짤막하게 한 토막씩 찰나찰나 넘어가니깐 그렇지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바로 일생, 칠십 평생 팔십 평생 넘어가는 이 때에 우리는 그 물에서 떴다가 그 물에 가라앉을 뿐입니다. 가라앉았다 뜨고 떴다가 가라앉고 이렇게 하는 것밖에는, 인생이 그런 거밖에는 안 됩니다. 떴다 가라앉고 떴다 가라앉고 하는 그런 동안에 우리가 일
이날까지 여러분 앞에 두서없으나마 한마디 한마디 이렇게 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종합해서 여러분이 잘 생각해 보신다면 일체 생활에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분이 그렇게 하고 계신 겁니다. 항상 제가 “놔라, 놔라! 놓으시오, 놓으시오, 놓으십시오! 모든 건 주인공에다 일임해서 놓으시고 무조건 그렇게 하십시오. 왜 못 믿습니까? 자기를 수억겁 전부터 이끌어서 몸을 바꿔 가면서, 모습을 바꿔 가면서 이렇게 이끌어 온 그 주인공, 근본 자리를 왜 못 믿습니까?” 하고 여러분 앞에 항상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으로부터 이 세상이
여러분, 오늘 오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증득하지 못하고 오계를 방편으로만 설하고 방편으로만 받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둘이 아니며 둘이 아닌 까닭에 부처님의 온 누리의 그 뜻이 한 찰나에 서리니, 오계를 받은 분들은 앞으로 더 오계를 받을 필요가 없고, 첫째는 악한 병고에 휘달리지 않을 것이고 두 번째, 모든 이 한마음으로서 돌아가는 그 공부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여우 꼬랑지라도 봐 줘야 물리가 터지고 충전이 되듯 우리가 산 뜻이 그대로, 전력과 자력과 통신력
마음공부로 세상이 바뀔까요질문 지금 시대는 크고 작은 삶의 사건, 사고들 속에서 마음 중심이 없으면 정말 살아나가기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중요한 거 같긴 한데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서 정말 세상도 바뀔 수 있을까요? 답변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마음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마음 한 생각 내서 악으로 가느냐 또는 마음 한 생각 잘해서 영생을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공부하는 것도 여러분이 지금 요 내 몸 안에서 이탈을 하고 또 내 가정에서 참 점프해서 나갈 수 있는, 그
여러분, 이렇게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참, 끝 간 데 없이 간다 할지라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한마음 자리에 조금도 에누리 없이, 미래도 과거도 없는 오늘에 한자리를 하게 되는 도리, 또 한자리에서 굴리는 도리, 또는 그 멋진 자유권을 가진 한자리의 도리, 이런 걸 가르치기 위해서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내가 그렇게 걸어온 그 길, 문패도 번지수도 없이 걸어온 그 길 말고도 시간과 공간을 따지고 드는 이 현실 세계에서 근 삼십 년 동안이나 이렇게 여러분하고 씨름을 했습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조금도 마다
(어느 스님께서 성불했느냐고 물으매 말씀하심) 석존이 계실 당시에도 석존의 제자나 석존이 어디 가시면 돌팔매질을 하고 머리를 깨뜨리고 제자를 죽이기까지 했답니다. 그것은 너무 질투가 심하다 보니깐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알고 이것을 논의할 때가 못 됩니다. 또 우리가 잘나고 못나고 이걸 따지기 이전에 모두가 둘이 아님을 안다면 그 또한 나인 것을 왜 질투가 생기는 겁니까? 여자고 남자고 우리 한 집안의 가족이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저 딸이든 이 아들이든 한가족입니다. 누구라도 좀 더 잘해서 잘되기를 바라는 어버이의 마음은
공부에 진전이 없어 답답합니다질문 인간으로 태어나서 금생에 이 마음을 꼭 깨치고 가야겠다고 서원하고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진전이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여러분이 염불하시는 데도 내 마음이, 한마음이 즉 관세음이고 지장이고 독성이고 산신이고 용왕이고, 이렇게 일체가 내 한마음에 들었다고 돼 있죠? 그 한마음에서 그 이름이 나가는 거고 한마음에서 씀씀이가 다 가락대로 차원대로 나가죠. 왜 내가 이런 소릴 하냐 하면, 여러분은 말로만 ‘내가 관세음이고, 내가 부처고, 내가 지장이고, 이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