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이슈가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나 다시 고착화 수순을 밟고 있다. 인종과 국적, 나이, 직업, 성별,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방지하겠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가치인 ‘평등’은 언제쯤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까.
2600년 전 부처님 가르침을 좇아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번 기획의 주인공은 우리사회의 편견과 차별, 혐오를 부처님 가르침을 토대로 극복하고 인식 개선과 사회 변화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을 되짚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 속에 크고 작게 자리했던 편견과 차별을 인식하고,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변하고 하나로 모인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한 평등의 제도화는 물론, 어떤 누구도 차별로 고통 받지 않는 불국토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자주〉
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세상에 던졌다. 카스트 제도로 인한 신분차별이 만연했던 당시의 인도에서 계급을 떠나 누구나 승단에 받아들이는 파격을 행했다.
부처님은 사람의 귀하고 천함은 출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승단 내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한 사람의 수행자였다. 부처님이 이끄는 승단에는 대부호와 귀족 뿐 아니라 천민과 거지, 장애인까지도 함께 공동체를 이뤘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비구승단보다 늦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당시 인도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여성이 아라한을 얻기 위해 가정을 떠나 독립적인 한 사람의 인간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만으로도 파격적이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사회의 여성인권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여성은 독립적으로는 카스트 제도에 편입되지 못했으며 인간으로 존중받기보다 후손과 가정 유지를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여성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2600년이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차별이라는 화두에 직면해 있다. 과거의 선천적 차별은 줄었지만 후천적이고 더욱 세부적인 곳곳에서 차별과 이로 인한 혐오가 드러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발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요구되는 것은, 제도화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기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곧 부처님 가르침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사회에 편견과 차별이 있음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경우에 따라 선택적인 형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주된 근거가 ‘동성애’ 즉 성적지향·정체성 항목에 있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정작 종교와 관련한 차별 항목을 제외하는 등 반쪽짜리 법안으로 종교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만 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표 차별금지법에 대해 ‘개신교계 눈치보기식 꼼수’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는 그동안 일부 개신교계의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번번히 고배를 마신 데 따른 것이다.
2013년 19대 국회의원 51명이 김한길 의원의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회기에 최원식 의원 등 12명이 추가로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했지만 입법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한 결과 일부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10만 건이 넘는 반대의견이 게재되면서 차별금지법은 우리사회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한국교회연합, 한국교회언론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미래목회포럼 등이 연대한 ‘차별금지법독소조항 반대 기독교대책위원회’는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한 전단지 4만 부를 제작, 전국교회에 배포했고 결국 법안을 발의했던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자진철회를 결정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역시 입법예고기간 동안 반대의견 7만여 건이 게재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기대감은 있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차별금지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시각이 고무적인 수준으로 변화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88.5%가 차별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셈이다. 이는 2019년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보다 일보 진전한 결과다. 같은 질문에 대해 당시 찬성의견을 밝힌 응답자는 72.9%로 집계됐다.
차별금지법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성적지향·정체성’ 항목에 대해서도 국민의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며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렇듯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인식수준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차별금지법’ 이슈가 그 자체로 우리사회가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계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26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짚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켜 가야 할지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