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불 사과로 종교평화 본질에 화두 던져
최근 5년간 불교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웃종교인 중 한 명이 바로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다. 2016년 개운사 훼불 사건 당시 개신교계를 대신해 불교계에 사과했고 개운사 복구 불사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파면 무효소송을 제기한 그는 법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았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재임용에서 배제되는 등 고충을 겪었다.
최근 법원은 손 교수의 재임용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손 교수가 강단에 서야 하는 정당성과 명분은 법원을 통해 재차 인정됐지만 그는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후 그는 종교평화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수십 년간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의한 훼불로 고통받던 불교계에는 기대를, 배타적인 일부 개신교계에는 불편함을 주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사회 종교평화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일종의 화두로 던졌기 때문이다.
긴 투쟁의 출발점이 ‘훼불행위에 대한 사과’라는 점에서, 손 교수는 서로 다른 종교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16년 개운사 훼불사건 사과
이후 서울 기독대 교수서 파면
“한국 교회 현 주소 점검 계기”
레페스포럼 등 종교교류 확대
“처음에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행한 일이었습니다. 종교를 교육하는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렇게 긴 시간을 오히려 개신교계와 갈등하게 될 줄은 몰랐죠. 저에 대한 파면 결정은 개인적으로 충격이고 상처였지만, 한국 개신교의 본질적 문제, 또 종교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에 직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손원영 교수는 오늘날 개신교의 현재 모습에 대해 묵직하면서도 냉정한 분석을 내놨다. 개신교 교단이 출범한지 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한국 개신교의 부패와 퇴보는 과거 중세 가톨릭교회의 타락에 견줄 만큼 심각하다는 가슴 아픈 진단이다.
“한국 기독교 초창기 모습은 지금과 다릅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존중했으며 한국의 전통종교와 교류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어요. 당시 선교사들이 수양회를 사찰에서 할 정도로 열린 자세였다면, 지금 일부 교회는 사찰에 가는 행위조차 불편해 합니다. 오히려 18~19세기 배타적인 기독교의 모습으로 퇴보한 셈이죠.”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기도 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군가 잘못한 일을 하면 몇 번까지 용서를 해야 하는 지” 묻자 예수는 “일곱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고 답했다. 490번까지 용서하라는 가르침은 사실상 끝없는 용서를 상징한다.
손 교수는 “우연히 1993년부터 2019년까지 24년간 언론에 보도된 훼불사건을 정리한 논문을 봤는데 408회로 집계됐다”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불교계는 아무런 보복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훼불을 한 측과 이를 용서한 측 가운데 누가 진정한 예수의 제자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의 예언자 정신은 바로 프로테스트(Protests, 저항)의 정신입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의 모습과 전통에 정말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점검하는 것 또한 종교인의 책무인 것이죠.”
종교평화에 대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레페스 포럼(대표 이찬수 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이 대표적이다. 기독교 학자와 불교 학자들이 만나 허심탄회한 종교간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고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다.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하다가 점차 확대되면서 레페스 심포지엄을 개최해 자료집을 정리한 책 〈종교안에서 종교를 넘어〉(2017, 모시는사람들)와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_그 역전을 위한 종교적 대화〉(2020. 모시는사람들)를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일본에서 레페스포럼의 확대 조직인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출범을 위한 창립총회도 열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종교평화 움직임이 아시아권역으로 확대되는 핵심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레페스포럼 심포지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그 시작이 개운사 훼불사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주지였던 천은 스님이 “사찰 복구는 우리 힘으로 할 테니 이 돈은 종교간 이해를 넓히고 종교평화를 이루는 목적으로 사용해 달라”는 당부에 따른 것이다. 손 교수는 스님의 뜻에 적극 공감해 기존 레페스 포럼에 해당 기금을 기탁, 심포지엄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레페스 심포지엄의 정체성이 종교간 교류와 대화에 기반한 이유다.
손 교수가 운영하는 한국영성예술협회도 올해 산하기구로 종교평화원을 신설했다. 예술과 학문을 통해 종교간 이해를 넓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종교교류의 또 다른 창구로 운영될 계획이다.
“훼불로 상징되는 여러 종교갈등은 사실 서로를 잘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교육이 중요합니다. 종립학교 뿐 아니라 국공립학교에서 올바른 종교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깨어있는 많은 종교인들이 고민하고 연구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