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년 전 평등사상 실천한 인류 스승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다. 한 바라문이 부처님이 수행 중인 보리수나무를 지나다 질문을 던졌다.
“수행자여, 고귀한 바라문 중에서도 더욱 고귀하고 최고로 성스러운 바라문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부처님이 답했다.
“인간은 출생에 의해 귀해지거나 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귀하고 천한 것은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 결정됩니다.”
바라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보리수나무를 떠났다. 당시 인도사회에서 바라문은 온전히 출생으로 결정되는 귀족 계층이었다. 바라문에게서 태어나야 할 뿐 아니라, 7개에 걸쳐 순수한 바라문이어야 한다. 이 같은 혈통을 지키기 위해 바라문은 바라문과 혼인해야 하며 특히 바라문 여성은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남성과 결혼해선 안됐다.
이는 인도의 사성계급 ‘카스트 제도’에 따른 것이다. 당시 브라만교는 사성계급이 선천전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믿었으며 힌두교는 영원불멸하는 영혼 ‘아트만’이 존재함에 따라 죽은 이후에도 윤회한다고 믿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도사회가 엄격한 계급구조의 관습과 전통을 따르는 핵심적인 토대가 됐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사회
엄격한 카스트 제도 중심
빈부·지위 고하·성별조차
부처님 승단선 무의미 해
모든 이가 동등한 수행자
평등사회 구현의 본질은
모든 생명이 동등하다는
부처님 가르침 속에 있어
부처님이 시대를 뛰어넘은 진리를 전한 인류의 스승인 동시에, 혁명가로도 평가되는 이유는 이 같은 인도사회의 공고한 계급제도와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고 인간 본질에 주목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신이나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사회적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 결과로 이어질 뿐, 그 본질은 모두가 평등함을 설파했으며 이를 승단의 기반으로 삼아 스스로 행동으로 드러냈다.
부처님이 사왓띠 동쪽 문 밖 미가라마따 상당에 머무실 때의 일이다.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 출신의 청년 두 명이 출가를 허가받고 수행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해질 무렵 부처님이 홀로 걷고 있는 모습을 본 두 청년은 부처님께 다가가 절을 올렸다.
부처님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바라문 태생으로 바라문의 신분을 버리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다른 바라문들이 그대들을 비웃지 않던가?”
와셋타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 바라문이야말로 가장 밝고 청정한 계급이며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유일한 상속자임에도 너희는 어찌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범천의 다리에서 생겨난 비천한 사문이 되려하느냐’라고 비난합니다.”
“와셋타여. 바라문들은 태고적 옛일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어리석은 비난을 하였구나. 바라문 여인들도 다른 계급의 여인들과 똑같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바라문을 낳고 길러낸다. 바라문 또한 다른 계급과 똑같이 여인의 자궁에서 태어나거늘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최상의 계급이라고 말함으로써 거짓말을 하며 공덕이 아닌 행위를 하고 있구나.”
이어 부처님은 당시 인도사회의 4계급인 왕족 끄샤트리아, 사제인 바라문, 평민인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를 예로 들어 가르침을 전했다.
“끄샤뜨리아 중에는 생명을 해치고 삿된 음행을 하며 거짓말을 일삼으며 탐욕과 성냄,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악한 것이다. 바라문과 바이샤, 수드라 중에도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다. 반면 끄샤뜨리아 중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탐욕과 성냄과 잘못된 견해를 하지 않는 이가 있다. 바라문과 바이샤, 수드라 중에도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이가 있다. 이는 선한 행위이다. 네 종류 계급의 사람들은 이처럼 선한 행위를 하는 삶과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한없이 뒤섞여 있다. 네 종류 계급의 사람들 중 누구라도 지극한 수행으로 번뇌를 소멸해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올바르고 완전한 지혜를 얻어 해탈한다면 그를 일러 최상의 존재라 부른다.”
계급구조를 탈피한 파격적인 일화는 적지않다.
석가족 7왕자들이 출가했다. 이들은 부처님의 제자인 사리부트라 존자, 사리불 존자를 찾아가 계를 받았고 수행하던 중 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출가 당시 자신들의 머리를 삭발해 준 이발사 우파리다. 천민계급이자 왕자들의 수발을 들었던 우파리는 이미 집착의 끈은 놓은 채 수행력을 인정받는 스승의 한 사람이 돼 있었다. 7왕자가 머뭇거리던 차 부처님이 말했다.
“우파리에게 절을 하라. 세상에는 4개의 큰 강이 있지만 바다에 가면 하나가 되듯이 세상에는 4개의 계급이 있지만 여래의 법 안에서는 하나로 평등하다.”
출가를 했지만 관습의 끈을 놓지 못했던 7왕자는 우파리에게 절을 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세속의 굴레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7왕자 중 한 명이 바로 부처님의 10대 제자 아난다다.
이렇듯 부처님이 만든 승단은 당시 인도사회를 관통하고 있던 뿌리 깊은 계급의 차별을 혁명적으로 타파한 평등 사회로 볼 수 있다. 부처님 승단의 수행자들은 각자 다른 계급과 집안에서 태어나 출가했지만 모두 한결같이 ‘수행자’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가장 차별받던 존재인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에서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 아니라 남자에 의존해 존재하는 부차적인 존재였다. 당시 바라문이 아닌 계급도 학습에 의해 사문이 되는 경우가 소수 있었지만,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이 사문이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 수행자 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된 것은 부처님의 양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이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면서다.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아들인 부처님과 친아들이 출가했고,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마저도 출가를 했다. 남편이 죽자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출가를 결심했다. 당시 관습 속에서 의존할 남성이 없는 여성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환경이었던 점도 출가를 향한 결심을 굳히는 요인이 됐다. 마하파자파티 부인 뿐 아니라 야소다라 공주를 비롯한 석가족의 많은 여성들이 출가를 원했다,
부처님은 여성들의 출가를 세 번 거절했다. 태생에 따른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 성차별은 당사자의 선택만으로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부처님의 거절은 어찌보면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동시에 여성의 출가 문제가 승단을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두 번째 출가 요청을 거절한 부처님은 가필라성을 떠나 바이샬리로 향했다. 마하파자파티 부인과 여성들은 확고한 의지로 결단을 내렸다, 스스로 머리를 삭발한 채 부처님을 따라나선 것.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 상황이 아닌 독립적인 의지에 따라 소위 ‘단체행동’에 나선 셈이다.
피투성이가 된 발에 삭발한 모습으로 아난다를 만난 이들은 재차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청했다. 아난다를 통해 이를 들은 부처님은 다시 한 번 거절했다.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부지런히 수행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출가할 수 없다면 여성은 수행을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난다의 물음에 부처님이 답했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여성도 법에 귀의해서 바른 수행을 한다면 능히 아라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여성을 승단으로 받아들였고 비구 승단과 비구니 승단이 동등하게 수행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당시 인도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는 그동안 남성에 의존하는 부차적인 존재인 여성도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선언이었다.
계급을 타파하고 지위고하, 성별, 재물의 유무 등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가르침을 설파한 부처님의 모습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60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도 선천적인 차별, 후천적인 차별로 인한 편견, 혐오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본질적인 해결방안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바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진리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