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위, 8월 24일 서울노동청 앞서
진우 스님 "생명 존중 당연-법령 개선"
열악한 노동환경·무관심에 안타까움
차별적인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지몽 스님, 이하 사노위)가 8월 24일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베트남 출신 20대 청년 응오뚜이롱의 49재 및 산재로 떠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재를 봉행하고, 모든 영가들이 안전하고 차별없는 행복한 세상에 태어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길 발원했다.
이날 49재 및 추모재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 보장은 물론 차별적인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를 위해 마련됐다. 사노위는 올해 여름, 이주노동자 사망 현장인 구미와 포항, 고흥 등에서 장례 과정을 함께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권 보장 촉구를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도 8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산업현장에서 이어진 노동자 사망 사고와 이주노동자 차별 및 인권 침해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관련 법령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49재 및 추모재에 모인 불자와 노동·시민단체 활동가, 이주노동자 동료들은 영정 앞에 국화를 올리며 한국사회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응오뚜이롱 씨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산재 이주노동자들의 넋을 기렸다.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은 인사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지몽 스님은 “이주노동자들의 죽음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는 것은 고용허가제를 비롯해 그들의 노동권, 건강권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말로만 산재사망 근절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고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예의와 존엄도 없이 죽음을 맞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들로부터 기업의 착취 사슬을 끊지 않고서는 산재 사망을 멈출 수 없다”면서 지금 당장 구조를 타파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49재 및 추모재에는 이주노동자 단체 관계자들과 재한 베트남 공동체도 참석해 추모의 말을 이어갔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산재 등으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38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고 집계되지 않은 수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것”이라고 실체를 알리고 “노동자 자신은 소중한 인생을 잃었고 유족은 가족을 잃고 파탄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죽으러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면서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노동자 생명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고용허가제란 내국인 인력을 구하지 못한 국내 사업장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비전문 외국인력을 고용하는 제도다. 현행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로, 사업장 변경 없이 농축산업, 어업, 50인 이하 제조업 등에서 종사를 충족하면 추가로 4년 10개월 더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고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재고용이나 이직이 불가능하다. 사업장의 고용 편의만 보장된 것으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며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행정 조치 변경은 없는 상태다.
추모발언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 베트남 출신 각려효 스님은 “근로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해야 사업도 번창하고 국가도 안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면서 “대통령과 관련 기관 수장들이 노동자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안전 대책을 마련해 준다면 억울한 죽음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49재 및 추모재는 추모사, 스님들의 천도의식, 참가자 헌다·헌향, 추모발언, 위패소지 등으로 진행됐다. 의식과 발언 후 동참자들은 고인의 위패를 들고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을 두바퀴 돌았다. 이어 정문 앞에 모여 위패를 소지하고 노래 ‘다시 만난 세계’ 등을 열창하며 추모재를 마무리 했다.
49재 및 추모재를 지켜본 한 시민은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은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이라며 “고용허가제 개선, 언어와 문화 차이를 고려한 안전교육 강화, 그리고 차별 없는 노동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한 불자도 “짧은 기간 한국에서 살다 간 청년을 위해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 헌화했다”며 “앞으로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노위는 49재와 추모재를 계기로 정부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건강권, 산업현장 안전 보장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 노예제도와 다름없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