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서울 조계사 앞마당서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 봉행
이주노동자 등 140여명 위패 모셔
김민석 국무총리‧30여 유가족 동참
진우 스님 “생명 앞서는 이윤 없어”
“사회 약자에 자비시선 놓지 않겠다”
지난 10년 동안 산업재해로 매년 2000명 넘는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120명, 하루 여섯 명 꼴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의 가족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귀한 생명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법석이 마련됐다.
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1월 18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를 봉행했다. 조계종 총무원과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 주최하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위령재에는 안전하고 차별없는 일터를 기원하는 염원이 담겼다.
위령재는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 스님의 집전으로 노동현장 사망 노동자를 비롯해 안타까운 죽음에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의식으로 진행됐다. 영단에는 94명의 국내 노동자와 스리랑카, 네팔, 미얀마 등에서 온 50명의 이주노동자 등 140여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위령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김민석 국무총리, 김영훈 노동부장관,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 환경노동위원장을 비롯해 30여 유가족이 참석했다. 고 김용균 태안화력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민중원 마사회 노동자 부인 오은주 씨, 장덕준 고 쿠팡 노동자 어머니 박미숙 씨, 고 이동우 동국제강 노동자 부인 권금희 씨, 고 홍수연 LG 유플러스 현장실습 노동자 아버지 홍순성 씨, 고 서지윤 서울의료원 노동자 어머니 최영자 씨, 고 정석현 구로역 열차 추돌사고 사망자와 고 윤원모 철도노동자 부모, 고 양준혁 노동자 어머니 심우정 씨 등이 함께했다.
이주노동자 유족으로는 한국에서 15년을 살다 2024년 11월 김제 특장차 공장에서 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고 강태완 노동자의 어머니 앵크자르칼 씨, 지난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현장 중 사망한 25세 베트남 여성 노동자 고 부뿌안의 부모님인 부반승, 응웬티투후엔 씨도 참석했다.
특히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은 세월호, 이태원, 아리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족들도 함께해 아픔을 나눴다.
의식은 추모 타종 5타를 시작으로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헌향, 헌다, 헌등, 추모영상, 추모사, 청혼·관욕, 상단불공, 천도법문, 화청염불, 영단의식, 발원문, 추모의 노래, 유가족 인사 등으로 이어졌다. 체감 기온이 영하를 밑도는 한파에도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이 모두 극락왕생하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발원했다.
헌향과 헌다, 헌등 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정부와 국회, 종교계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산업재해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김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면서 “정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터를 지키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모든 노동자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
“더 이상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업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겠다”며 정부의 노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김 총리는 “정부는 산업재해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지난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기반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영세사업장, 취약노동자 등 안전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 예방에 집중하고 안전 주체로서 노사 양측의 참여를 통해 사고 예방이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종교계 대표로 참석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최종수 성균관장은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더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면서 “살아있는 우리는 고귀한 희생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전과 생명의 가치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도 “일터가 곧 삶터가 되도록,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안전으로 이어지도록, 생명존중의 제도를 더욱 굳건히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억울하게 희생된 노동자들의 평안을 위해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자기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천도법문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부처님 자비 아래 무거운 슬픔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특히 유족들에게 “여러분이 감당해 온 슬픔은 우리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며, 불교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서 “이 자리가 떠나간 이들과 다시 마음으로 만나는 순간이 되고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따스한 숨결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위로를 전했다.
진우 스님은 이날의 추모가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계의 목탁’이라고 했다. 스님은 “생명보다 앞서는 이윤은 없다”면서 “한 사람의 노동이 누군가의 밥이 되고, 안전이 되고, 일상이 된다”면서 “생명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계의 사회적 역할도 다짐했다. 진우 스님은 “조계종은 생명존중의 가르침을 지키는 종단으로서 산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면서 “또한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자비의 시선을 놓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희생 영가들의 넋을 달래는 어산종장 동환 스님의 절절한 ‘화청염불’이 울려퍼지는 동안 영정 앞에 선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고 강태완 어머니 앵크 자르칼 씨는 유족 대표로 낭독한 발원문에서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국내‧이주노동자, 과로와 작업 중 얻은 질환으로 사망한 영혼들이 사고 없고 안전하고 가족과 이별 없이 위험의 외주, 이주가 사라진 세상인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염원했다. 또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지를 안타깝게 잃고 하루하루를 슬픔과 고통으로 살아가는 가족들도 육신과 마음이 일상의 평온함으로 살아가게 도와줄 것을 부처님전에 발원했다.
정부와 국회에는 “산재 없는 세상을 위해 말로가 아닌 구체적인 대책을 확실히 세우길 바란다”고 촉구했고, 사업주들에게는 “탐욕과 이윤의 불구덩이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고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의 부모요 형제로 생각하는 세상이 되길" 염원했다.
위령재는 희생자들의 위패와 종이 옷을 불로 태워 영혼을 보내는 소전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임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