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역사 전통사찰…대웅전 등 전소
임시 건물서 생활하며 삼성각서 법회·기도
등오 스님 “전국 각지 따뜻한 위로에 감사”
“도량 불사 시동…산불 예방 대책 절실”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초속 25m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운람사를 덮쳤다. 대웅전을 비롯한 요사채 2동과 공양간 등 총 6개 동이 불에 타면서 1300년 역사의 전통사찰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다행히 삼성각과 해우소는 불길을 피했지만, 사찰을 지켜온 스님과 불자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산불 발생 두 달을 앞둔 5월 16일 의성 운람사를 찾았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타다 남은 나무들과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들. 불탄 목재들이 곳곳에 쌓여있고 담벼락엔 그을음 자국이 선명했다. ‘삼재 소멸’ ‘건강 발원’이 적힌 기왓장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화마의 잔향은 아직도 코끝을 찔렀다.
운람사 주지 등오 스님은 현재 주차장 한편에 세워진 임시 건물에 머물며 사찰을 지키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집기와 건물이 불에 타 불편함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삼성각에서 법회와 기도를 이어가고, 장독대에 남은 장으로 소박한 공양을 준비한다. 화마를 피한 해우소도 있어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동안 천막을 치고 지내다 열흘 전 임시 건물로 옮겼어요. 전기밥솥에 밥을 지어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됐어요.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기도하고 먹고 씻을 수 있는 여건만큼을 남겨준 부처님께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스님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도 전했다. 운람사는 산 정상에서 불과 10m 아래에 위치해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 스님은 즉시 본사인 고운사에 상황을 알렸고, 고운사 스님들이 급히 달려와 대피를 도왔다. 아미타삼존불과 탄생불, 신중탱화 등 주요 성보는 사찰 인근 의성조문국박물관으로 이운해 피해를 면했다.
산불 진화 직후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고 현장을 정리하던 등오 스님에게 큰 힘이 된 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스님들과 불자들의 따뜻한 위로였다. 모두가 제 일처럼 나서 도왔고, 멀리서도 운람사의 아픔을 함께했다. 무엇보다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의 성금 전달과 진심 어린 격려가 깊은 감동을 안겼다.
“운람사는 지금 큰 수술을 마친 환자처럼 천천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량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불의 위협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등오 스님은 “사찰은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고 산 중턱에 위치해 산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사찰 환경에 적합한 묘목을 심고, 신속하게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지금은 피해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제 관심이 사그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등오 스님은 “처음에는 전국에서 많은 분이 도와주시지만, 같은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된다면 그 손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더 철저하고 체계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한 ‘재건 불사’도 고민하고 있다. 그간 불편했던 공간 구조와 기능을 개선해 실용적인 도량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등오 스님은 “새로 짓는 만큼 더 나은 공간으로 구성해 불자들이 편하게 찾는 사찰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의성 운람사=글/사진 김내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