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분노의 화살을 멈추게 한 부처님, 분노 시리즈 (6)
완벽 강박, 수치심이 만든 방어 전략
타인평가 담담, 수치심 분노 이겨내야
“나를 왜 무시하는 거야?” “어쩌라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이런 말들을 자주 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피드백 혹은 충고를 하려해도 돌아올 분노가 두려워지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작은 충고를 건넸을 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사소한 지적에도 쉽게 분노하며,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분노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수치심 기반형 분노(shame-based anger)’, 즉 수치형 분노라 부른다.
대학교 시절 동아리 선배는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이었지만, 후배가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면 격렬하게 반응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사소한 지적을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배의 반응이 전형적인 수치심 기반형 분노였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한다. 수치심은 단순히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일반적인 죄책감과 다르다. “내 존재 자체가 결함이 있다”고 느끼는 깊은 감정을 동반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즉,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전체를 문제 삼고,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끼는 감정이다.
수치심 기반의 분노는 주로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실수했을 때 남들에게 평가받는 상황, 자신의 부족한 점이 드러날 때, 혹은 타인이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고 생각될 때 촉발된다. 이 분노는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극도의 불안을 동반한다.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수치심은 완벽주의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치심은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반면 완벽주의는 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을 형성한다. 수치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숨기기 위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할 수 없기에, 결국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며 수치심이 강화된다. 완벽주의는 결국 수치심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 되며, 두 감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작동한다.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를 조절하려면, 단순히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수치심의 근원을 탐색하고 이를 다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자신의 사고 과정을 점검하고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면, 그것이 진짜 ‘무시에 대한 반응’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다시 떠올라 자동적으로 작동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수치심을 객관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형성된 ‘내면의 목소리’는 때때로 현실과 다를 수 있다. “넌 부족해”, “너는 항상 실수만 해”, “다른 사람처럼 잘해야 인정받아” 같은 생각들은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왜곡된 신념일 수 있다. 이를 알아차리고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반응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를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내 의견을 반박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무시하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 “나는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로 결정하지 않는다”라는 말 처럼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해 보는 것은 분노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불가촉천민은 가장 천한 신분으로 여겨졌고, 상위 계급과의 접촉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똥을 치우는 일을 하던 사람들은 더욱 심한 차별을 받았다.
어느 날, 부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던 중 한 남성이 그들을 피해 숲길로 들어갔다. 그는 똥을 나르는 일을 하던 니이다이였다. 부처님은 그를 보고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직접 찾아가셨다. 그러나 니이다이는 부처님을 피해 급히 도망치려다 넘어져 똥물을 뒤집어썼고, 부처님의 옷에도 튀고 말았다.
두려움에 떨던 니이다이에게 부처님은 조용히 냇가에서 옷을 빨아오도록 하셨다. 니이다이가 깨끗한 옷을 입고 돌아오자, 부처님은 “옷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니이다이는 “깨끗해졌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본래 더럽거나 깨끗한 것은 없다. 더러워졌다면 씻으면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태생에 의해 귀하거나 천한 것이 정해지지 않는다. 스스로 천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린다면 누구나 해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분이나 출신에 의해 인간의 존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는 대신 스스로 본래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