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하성미의 심심톡톡] 수치심 밀려올 때 아이는 밀치고 소리친다

40 불가촉천민 니디를 바꾸신 부처님, 부모 교육 ‘자존감’ (5)

실수는 행동이 아닌 마음의 언어일 뿐
교정보다 필요한 건 감정에 대한 공감

자존감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니디를 다시 떠올려 보자. 똥치기를 하며,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 다니던 그.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어떤 관계도 꿈꾸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길 위에서 부처님과 마주쳤다. 그 만남 하나가 그의 삶 전체를 바꾸었다.


부처님을 만나 놀란 니디는 허둥대다 손에 들고 있던 똥통을 기울였고, 악취 나는 똥물이 부처님의 옷에 튀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는 온몸이 굳고 숨이 막혔다. ‘나는 또 실수했어. 그것도 부처님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고, ‘나는 이런 놈이야. 이래서 모두가 날 피해.’라는 자기 비난 속에 웅크렸다.
니디의 행동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충동적인 아이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과 행동 패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예기치 않게 만난 부처님의 존재에 놀라 당황했고, 사고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충동성이 강한 아이들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자극에 즉각 반응하며, 수치심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고 행동으로 표현한다.


말이나 판단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도 전형적인 충동성의 특징이다. 충동적인 아이들은 감정이 치솟는 순간,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친구를 밀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고 나서야 ‘내가 왜 그랬지?’라고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감정은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후회가 아니라, 더 깊은 수치심과 자기 비난이다. 반복되는 실수와 질책은 반성보다는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니디는 “모두가 날 피하고 싫어해”라고 생각한다. 이는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고다. 충동적인 아이들도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낙인화 되고 “선생님이 나만 미워해”,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같은 말을 하며, 관계 안에서 자기 존재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결국 니디의 실수는 단순한 행동의 실패가 아니라 충동성과 수치심, 자기비난, 타인에 대한 해석이 뒤엉킨 복합적인 정서 구조의 결과였다. 이 장면은 충동적인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이다. 어른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그 실수 이면에 감춰진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나는 괜찮은 존재일까’라는 서글픈 질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노여워하지 않으셨다. 조용히 니디에게 다가가셨다. 실수한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눈빛,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따뜻한 말 속에서 니디는 실수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부정과 부끄러움 속에 갇혀 있던 니디는 ‘나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고,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태도는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깊이 일깨워 준다. 똥물이 튀었지만 부처님은 얼굴을 찌푸리거나 비난하지 않으셨다. 조용히 다가와, 실수한 그 순간 그대로의 니디를 마주하고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부모 역시 아이가 실수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표정과 눈빛에서 먼저 ‘지금 나는 안전한가’를 감지한다.


부처님은 실수보다 존재 자체를 먼저 보셨다. 아이가 충동적인 행동을 보였을 때 부모가 “왜 또 그랬어?” 대신 “지금 어떤 마음일까?”라고 물어 준다면, 아이는 미움 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해 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실수를 고치기보다 그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먼저다.


“괜찮다”는 말은 실수를 없던 일로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실수마저도 품고, 그 순간의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부모가 행동을 고치기보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할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을 지켜낸 채 실수와 마주할 수 있다. 수용 없는 교정은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감추게 만든다.


무엇보다 부처님의 태도 속에는 관계를 이어가려는 깊은 의지가 담겨 있다. 부처님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니디의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다가갔다. 부모가 “이럴 줄 알았어”라는 비아냥 대신 “네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라고 말할 때, 아이는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다시 조율할 힘을 얻는다. 실수를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다는 감각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결정적 기반이 된다.


끝으로 부처님은 니디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계셨다. 실수했지만 괜찮고,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넌 할 수 있어”, “다시 해 보자”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 믿음이 아이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첫 신뢰가 된다.


결국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실수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그 실수를 한 아이의 마음 곁에 함께 머무는 것이다. 실수 속에서도 존재가 존중 받는 경험, 그것이 자존감을 자라게 하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다. 


자존감은 실수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서 자라지 않는다. 실수하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험, 그럼에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 속에서 자란다. “괜찮아, 다시 해 보자.” 그 한마디가 충동적인 아이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 니디의 삶이 바뀌었듯, 오늘도 아이의 마음 한 편에 햇살 하나가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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