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하성미의 심심톡톡] 부처님이 바꾼 건 삶이 아니라 ‘존재 ’의 의미

36. 불가촉천민 니디를 바꾸신 부처님, 부모 교육 ‘자존감’ (1)

‘아이의 자존감’은 부모라는 거울 통해 성장
존재 자체 존중받을 때 스스로 귀하게 여겨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는 힘이자 삶을 살아갈 이유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기반이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 사람은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고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해지고 무엇을 해도 부족하다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자존감은 그 자체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다.

하지만 자존감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자녀에게 자존감은 부모의 시선과 말투, 기대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아이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부모의 반응을 통해 배우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낀다. 부모가 조건 없이 사랑하고 지지할 때,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반대로 사랑이 조건적이거나 비교와 비난이 반복되면 자녀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잘해야 사랑받는다’, ‘실수하면 미움을 산다’는 생각은 자존감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태는 심리학적으로 조건부 자기존중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모의 평가나 외적 성취에 따라 좌우되면서 자존감은 쉽게 흔들린다. 또한 부모의 기대에 지나치게 맞추려는 외적 자기지향성, 형제나 또래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진정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진정성의 결여로 이어진다. 이러한 내면의 불균형은 자녀의 자아정체감을 혼란스럽게 하고 성장 과정에서 삶의 주체로 서는 힘을 약화시킨다.

2600년 전 인도의 어느 숲길에서도 한 사람이 ‘존재의 수치심’에 짓눌려 있었다. 똥을 치우는 일을 하며 불가촉천민으로 살아가던 니디(Nidhi)이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그는 마을 외곽에 따로 살아야 할 정도로 천대받는 존재였다. 누구도 그를 사람답게 대하지 않았고, 그의 냄새조차 기피 대상이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과 길을 걷는 것을 본 니디는 그들을 피해 숲으로 몸을 숨겼다. 존재 자체가 불편함이 될까 두려워 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히려 그를 향해 다가갔다. 더러운 똥물이 튀었지만, 부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물가로 데려가 몸을 씻게 하시며 “사람은 본래 천하거나 귀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일러주셨다. 이는 인간의 가치는 외적 신분이나 사회적 낙인이 아닌,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불교의 근본 사상을 보여준다. 나를 천하게 여기는 인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아에 대한 왜곡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과 자유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차별에 대한 교훈을 넘어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방식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자녀의 실수나 부족함보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시선이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부모는 자신의 딸 지민(24세, 가명)에 대한 깊은 걱정을 털어놓았다. 지민은 성인이 된 지금도 자존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말 한마디에도 눈치를 보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위축되고 어떤 말이든 자신을 향한 충고나 평가로 받아들였다. 실수하지 않으려 늘 긴장했고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뿌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랜 세월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비난과 통제의 말들이 깊게 박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늘 저를 못마땅해했어요. ‘그것밖에 못 하냐’, ‘넌 왜 맨날 그래’ 같은 말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말하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저를 깎아내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괜히 죄송하고…. 그냥, 제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지민은 점점 자신을 하찮고 문제 많은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결국 자신을 탓하고 움츠러드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온 것이다. 마치 니디가 자신을 더러운 존재로 여겨 숨어들었던 것처럼, 지민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감추려 했다. 부처님은 니디의 삶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셨을 뿐이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존재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한 사람을 성취나 실수,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는 일이다. 어떤 조건도 없이,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받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를 다르게 느끼기 시작한다. 더 이상 부끄러움에 가려져 있던 자신이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감각을 내면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자존감이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다. 내면의 존엄함이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니디처럼 숨어 지내고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어떤 존재도 본래부터 더럽거나 귀하지 않다. 때로는 얼룩지고 구겨지더라도, 삶도 자녀의 마음도 다시 정돈되고 회복될 수 있다. 부모가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거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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