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하성미의 심심톡톡] 당신 모습 그대로가 ‘기적’입니다

32 분노의 화살을 멈추게 한 부처님, 분노 시리즈 (5)

완벽주의에 터져나오는 ‘체념형 분노’
한계 받아들이는 따뜻한 수용 필요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은정(가명·23세)이는 차갑게 말하며 자신을 쳐다보던 엄마의 서늘한 눈빛에 금방 기가 죽었다. 은정이의 엄마는 완벽주의였다. 

상담실을 찾은 은정이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엄마 앞에선 언제나 자신은 한심한 존재”였다고 했다. 은정이의 어린 시절은 해야 할 의무와 숨 막히는 일정들이 빽빽했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는 폭발하는 엄마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은정이가 20대가 될 때까지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순종’. 자신의 모든 욕구를 포기하고 시체처럼 살았기에 엄마와의 관계는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다. 엄마의 강박과 불안을 사랑받고 싶어 떠안은 아이, 은정이의 어린 시절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완벽주의의 분노는 통제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순간 날아온다. 완벽주의의 주 감정은 불안이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소소하고 작은 일에도 과도하게 대비한다. 아이들에게 실수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실수는 완벽주의자에게 행복한 미래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되고 ‘반드시’ 없애야 하는 문제투성이가 된다. 그들은 결코 도달하지 못할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불만족은 당연한 결과였고,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은정이의 노력은 예정된 실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은정이의 엄마가 전형적인 완벽주의형 분노형이며, 다른 말로는 ‘체념형 분노’라고도 할 수 있다. 

‘체념형 분노’는 자신의 통제와 기준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놓아야 할 때 폭발한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조절할 수 없어 절망할 때 분노 촉발의 원인이 된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계획이 침범당하면 폭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또다른 특징은 자신의 방향과 계획이 무조건 옳고 바르다고 믿는다. 자신의 계획이 무결하고 완전하기에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상대는 틀리고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또 누가 봐도 그들의 기준은 너무 높은데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준처럼 생각한다. 이 경우는 아이들에게 특히 강조된다. 또 시야가 좁아 그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들의 시각은 흑백으로 나눠져 중간이나 절충이란 있을 수 없다. 완벽주의형 분노는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하고 악을 쓰며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대로 안되면, 좌절감이 극도로 높아져 우울감도 동시에 높아지는 단계적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손쉽게 적용해볼 방법으로는 먼저 차분히 자신의 기준을 검토해야 한다. 과감하게 기준을 낮추고 자신과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 두 번째는 완벽주의의 대부분은 목표가 포괄적이다. 불안이 그들의 마음을 휘두르기 때문에 사실 그들의 높은 기준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성벽 쌓기이며 막무가내식이다. 

자신의 바람과 기준을 쭉 적어보라. 구체적인 내용이 몇 개나 있는가? 예를 들어 “아이가 높은 성적을 받기를 원한다”는 막연한 바람이다. 구체적으로 바꾸면 “초등학생 아이가 영어 단어를 하루에 10개를 외우고 그 중에 7개 정도 맞았으면 좋겠다”라고 바꿔야 한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수줍음이 많은 우리 아이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아이와 의논하고 도전 과제를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을 높이는 생각들을 적어두고 휘둘리지 않도록 알아차림해야 한다. 

이런 특징의 분노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즉, 한계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며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유약한 존재이다. 서로가 돕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수용해야 한다. 모든 것을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완벽함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사람에게는 죽음명상이 도움이 된다. 성취로 향하는 그들의 욕망을 잠재우는 중요한 도구가 되며 죽음 앞에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5여 년 전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해주신 스님께 전화 안부를 드린 적이 있다. 너무나 추운 겨울, 일일일식(一日一食)으로 생활하고 거주 환경도 열악해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수행과 여러 안부를 전한 후 “스님. 날이 너무 춥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세요?”라는 말에 스님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답했다. 

“계절에 따라 날이 추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겠지.”  

15년이 지나도 전화 끝에 전해진 단순한 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한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깊은 평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완벽함을 향한 돌진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부족함 받아들이고 자신이 기적임을 아는 것이다. 부족한 당신 모습 그대로 기적이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취지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리했습니다.

하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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