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선연구원, ‘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사상’ 학술대회

6월 17일 동국대 고순청세미나실
근·현대 비구니 선지식 6인 조명
韓비구니 승가 연구 활성화 기대
제5회 묘공학술상·장학증서 수여 

대행선연구원은 6월 17일 동국대 혜화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근현대 비구니 삶과 사상’을 주제로 제7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종합토론 모습.
대행선연구원은 6월 17일 동국대 혜화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근현대 비구니 삶과 사상’을 주제로 제7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종합토론 모습.

근·현대 비구니 선지식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마음선원(이사장 혜수) 산하 대행선연구원(원장 혜선)은 6월 17일 동국대 혜화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제7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일엽 스님, 봉려관 스님을 비롯해 은영 스님, 인홍 스님, 대행 선사 등 근·현대 시기 한국 비구니계를 이끌었던 선지식들의 업적과 사상을 연구·조명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윤종갑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윤종갑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주인공 관법, 붓다 수행법 충실히 계승”
윤종갑 동아대 초빙교수는 ‘대행선의 마음공부와 주인공 명상-주인공 관법과 인지과학을 중심으로’ 를 통해 대행선이 붓다의 수행법을 어떻게 계승했으며, 그 요체인 ‘한마음 주인공’이 현대의 인지과학과 어떤 접점을 갖는지를 살폈다.

윤 교수는 대행선이 사마타(止)보다는 붓다만의 독창적 수행법인 위빠사나(觀)에 가깝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붓다는 사마타 수행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독자적인 수행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위빠사나’다. 대행선은 위빠사나 수행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대행 선사의 주인공 관법은 화두를 들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고, 삼라만상의 작용과 현상이 공안이며, 만물만생이 살고 있는 우주 법계 자체가 깨달음의 도량이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주인공 관법은 일상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면서 지켜보고 체험하는 위빠사나 수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어 “위빠사나는 사마타처럼 고정된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지금 바로 이 순간의 마음지킴과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행의 주인공 관법 역시 일체 현상의 공함을 관해 공함 자체가 한마음 주인공이고 이 세계는 한마음 주인공의 나툼임을 깨닫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윤 교수는 인지과학과 대행선의 접점도 모색했다. 그는 인지과학의 핵심이 “마음에 의해 몸이 인지화되고 몸에 의해 마음이 작동하는 것”임을 상기하며 대행 선사의 ‘한마음 주인공’과 맞닿는다고 봤다.

윤 교수는 “대행 선사는 몸과 마음, 환경의 합생에 의한 작용과 창조에 대해 전기발전소, 컴퓨터, 레이더망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면서 “몸과 마음, 나와 세계에 대한 대행 선사의 과학적 설명은 인지과학의 쟁점과 동일한 것으로 불교의 핵심 교리를 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행 선사는 권위주의적 교화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대중과 묻고 답하는 현장불교를 펼침으로써 산중에 꽁꽁 숨어 있던 깨달음을 찾아 대중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일상의 생활 한 가운데 펼쳐 보였다”며 “대중적 가르침 속에 현대 인지과학과 소통할 수 있는 현대적 사상이 대행선에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혜달 스님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혜달 스님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봉려관, 근대 제주불교 중흥 이끈 선각자”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은 ‘봉려관과 제주불교 지평의 확장’을 통해 근대 제주불교 중흥을 이끈 선각자인 봉려관(1865~1938) 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했다.

혜달 스님에 따르면 봉려관 스님은 1899년 처음 관음신앙을 가졌고, 1901년 관음신력을 확신해 1907년 스님이 된다. 봉려관 스님의 관음신앙에 대한 핍박이 있기도 했지만, 스님은 1909년 제주 관음사를 창건하며 제주불교 중흥을 이끌었다. 봉려관 스님은 수행중심사찰인 한라산 관음사와 산천단 포교도량인 소림사, 성내 포교당 등 제주와 일본 오사카에 사찰 16~17곳을 중·창건했다. 봉려관 스님이 이끈 불사로 인해 1925년 제주불교계는 중흥을 맞이하게 됐다.

이 중 봉려관 스님이 창건한 법정사는 제주 항일운동의 기지가 됐고, 그 중심에는 봉려관이 있었다. 봉려관 스님은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자인 강창규, 김연일, 방등화를 1913년 법정사로 이주시켰고, 군자금도 지원했다. 안광호는 이에 대해 “종 불사금을 걷어 종은 조그마하게 만들고 남은 돈은 모두 군자금으로 사용했다”고 구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혜달 스님은 “봉려관은 총을 들고 나가서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 전부 다하신 분이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견인했다”면서 “봉려관의 항일자금 조달은 문헌은 없지만 구술은 존재한다. 비밀결사와 같은 항일운동을 감안하면 드러낼 수 없는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봉려관 스님은 유치원, 중학교 건립 등 지역 교육문제 해결에도 앞장섰고, 약초를 통해 빈곤층을 구제했으며, 동수천을 보수해 지역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혜달 스님은 “봉려관 스님은 10여 개 사찰을 중·창건하고 항일독립운동, 대사회활동 등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키고 중흥시켰고, 제주불교 지평을 확장했다. 그의 시대정신은 불교계는 물론 여성계에도 귀감이 되며, 나아길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 속에 그 어떤 근대여성보다 진취적 행보를 보인 봉려관을 한국여성의 모범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현 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여현 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선경 스님, ‘일상의 禪’ 구현한 선지식
여현 스님(동국대)은 ‘담연당 선경의 선사상’를 통해 담연당 선경 스님(1905~1996)의 삶과 수행을 살폈다.

여현 스님은 선경 스님의 생애를 유활문도회에서 발간한 문집 <밑 없는 배(無底船)>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선경 스님은 1905년 5월 2일 충북 청원군 남원면 산송리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해 일찍이 모친을 여의도 본인도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생을 마치려 할 때 허공에서 ‘부처님과 지중한 인연’이라는 소리를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 이후 선경 스님은 1922년 마곡사 영은암 명덕 스님에게 나아가 출가하고 이듬해 삭발했다. 은사인 명덕 스님은 선 수행을 위해 많은 선원을 다녔고, 이에 따라 14년동안 인우 노스님을 선경 스님이 한결같이 시봉했다.

이후 선경 스님은 30살이 되어서야 선방을 다니며 참선수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수행의 열정은 만공 선사와의 인연으로 비롯됐다. 남들이 다 받는 화두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심은 선경 스님을 수행에 매진하도록 했다. 선방에서 줄기차게 정진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밥맛을 잃었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선경 스님은 당시를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급박한 마음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현 스님은 “선경 스님의 삶 자체가 일상에서의 수행이었다”고 상찬했다. 스님은 “공양주 소임을 하면서도 반드시 큰방에 앉아 수행했고, 심지어 꿈에서도 수행의 모습이었다”면서 “노년에 쇠퇴한 노구로도 늘 화두를 옆에 써서 놔두고 끊임없이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후학들에게도 일상에서 화두를 놓치 말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 부단한 정진을 통해 상서로운 경험도 있었다. 공청, 현시, 꿈의 계시 등을 통해 간절한 수행을 진전시켰다”면서 “선경 스님은 수행과 삶을 나누지 않고 하나로 여겨 나아가 역대 조사들이 강조했던 ‘평상의 도’를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 경완 스님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 경완 스님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생명·공, 일연 스님 선사상 핵심 요소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근대 신여성이었다가 출가해 수행자로서 삶을 살았던 일엽 스님(1896~1971)의 선사상 핵심이 생명과 공(空)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엽 선사의 선사상 고찰’을 발표한 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 경완 스님은 일엽 스님의 만년 저작인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를 분석하고 그 안에 내재된 스님의 선사상을 고찰했다.

경완 스님에 따르면 본래 출가 전 기독교를 믿었던 일엽 스님은 신앙에 대한 불신으로 무종교 상태로 지내다가 B씨를 만나 불교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그 시기에 일엽 스님은 월간지 <불교> 문예란을 담당했다.

이후 출가에 대한 생각은 만공 선사를 만나면서 굳어진다. 출가 이후 일엽 스님은 만공 선사의 지시에 따라 25년동안 절필하고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했다. 다시 펜을 들고 난 이후에는 불교로 얻은 깨달음을 저서를 통해 회향했다.

만년 저작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 일엽 스님은 대중에게 불교 수행을 권선한다. 그 권선에는 일엽 스님의 선사상의 키워드가 담겼다. 경완 스님이 꼽은 생명과 공이다. 이들의 단어는 저작에서 308회 사용될 정도로 빈도가 높다.

경완 스님은 “저작의 서문을 생명선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본연의 생명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생명의 작용이 생각이며, 생각이 삼라만상을 만드는데 그 본체가 생명이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보면 작용과 생각, 삼라만상은 연기법으로, 본연의 생명은 불성, 공을 달리 표현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엽 선사가 설명하는 공은 제일의(第一義)이며, 진리”라며 “일엽 스님은 익히 알려진 불교 경전을 들어서 개념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깨달은 바를 자신의 언어로 설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영숙 연구원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전영숙 연구원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제3의 길 모색한 은영 스님, 비구니 종단 세우다
전영숙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비구니 은영 스님의 생애와 보문종 창종의 의의’를 통해 보문종 창종을 이끈 은영 스님의 생애를 조명했다.

전 연구원에 따르면 은영 스님은 1910년 1월 15일 충남 대덕군 북면 미호리에서 태어났으며 9세에 동학사에서 긍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어린 나이에 출가했음에도 또래 스님과는 달리 일찍이 절 살림을 도맡았다.

20대 중반에는 세도가 민씨 집안이 보문사 경내에 묘를 쓴 것을 묘지 주인을 찾아 담판을 져서 해결했으며, 친일 권승 강대련과 보문사를 두고 오랜 쟁송을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승 긍탄과 은영 스님이 도첩의 효력이 상실되고, 주지 직위를 해제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힘없는 비구니 스님들은 당대 최고 권승과 재판을 벌여 승소했고, 결국 보문사를 지켜냈다. 또한 보문사의 사격을 일신하는 불사를 이끌기도 했다.

은영 스님은 비구니 위상 강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비구니회의 전신인 우담바라회 초대 회장을 맡아 한국 비구니승가 발전을 이끈 것이다.

은영 스님이 보문종을 창종한 것도 한국 비구니승가의 발전을 위해 제3의 길을 모색함에 있었다. 전 연구원은 “현 보문사 비구니스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은영 스님은 정화 당시 조계사 등 영향력 있는 비구스님들이 있는 곳에서 자주 대중공양을 올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 비구스님들이 비구니스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시가 있었고, 은영 스님은 결국 비구도 대처도 아닌 제3의 길을 걷겠다고 결단을 내렸다”면서 “제3의 길은 보문종이라는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을 세우는 데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연구원은 현재 보문종 종도 스님들이 선대 의지를 계승해 변화와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현재 보문사와 보문종의 활동은 최근 급격히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수년간 새로운 출가자자 들어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동진출가자 중심으로 인력이 구성돼 높은 결속력을 보인 보문종이지만, 이제는 시대 변화에 순응해 혁신과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일중 스님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일중 스님이 주제 발표 하고 있다.

“인홍 스님, 계율·정진 실천한 비구니 수행자”
일중 스님(동국대 강사)은 가지산 석남사의 수행 가풍을 세운 인홍 스님(1908~1997)의 생애와 업적을 살폈다.

일중 스님에 따르면 인홍 스님은 1908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났고 1997년 석남사에서 세납 90세로 열반에 들었다. 1941년 33세에 출가해, 수행자로서의 살아온 것은 57년이다. 출가 이후 인홍 스님은 당대 선지식인 한암 스님과 성철 스님 아래서 수학하며 출가수행자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이에 대해 일중 스님은 “인홍 스님은 출가 후 처음 8년간은 한암 스님 회상에서 보내고, 성철 스님을 만난 후 8년 간은 제방 선원을 돌며 참선 수행에 매진했다”고 설명했다.

1957년 가시산 석남사로 들어간 인홍 스님은 40년을 주석하며 비구니 회상을 열고 석남사 수행가풍을 확립해갔다. 인홍 스님은 석남사를 이끌어 감에 있어 △참선수행을 실참하는 수행도량 △부처님 정법수행을 계정혜에 두는 점 △선지식을 모셔 계율과 경전 강독을 표방했다.

이를 통해 인홍 스님이 보인 핵심 사상은 △선밀쌍수 △복혜쌍수 △계행과 위의 중시로 정리된다는 게 일중 스님의 주장이다.

선밀쌍수는 참선수행을 바탕으로 사찰 일상 기도법으로 능엄주 독송과 대참회를 함께 실천하는 방식이다. 이는 봉암사 수행 결사에서도 성철 스님이 실천했던 방법으로 그대로 인홍 스님의 사상이 돼 석남사에 적용됐다.

실제 “복만 닦고 지혜를 닦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고, 지혜만 닦고 복을 닦지 않으면 덕이 없다”고 한 인홍 스님은 대중들에게 “복과 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수시로 내렸다.

이와 함께 인홍 스님은 석남사에 주석하며 종단 정화운동과 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우담바라회를 발족시켜 이를 전국비구니회로 만들어 비구니 승가 결집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일중 스님은 “인홍 스님은 비구니 출가정신과 수행정신을 확립하고자 한평생 혼신의 힘을 쏟은 선지식”이라고 평가하며 “질곡의 시기를 살았던 근현대 비구니스님들의 삶을 기록하고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대행선연구원이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학술대회 참가 사부대중이 삼귀의례를 하고 있다
학술대회 참가 사부대중이 삼귀의례를 하고 있다
학술대회 참가 사부대중이 삼귀의례를 하고 있다
학술대회 참가 사부대중이 삼귀의례를 하고 있다

“더 많은 비구니 선지식 발굴·조명되길”
학술대회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 스님은 환영사를 통해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더 많은 근현대 비구니 선지식들의 연구가 확대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혜수 스님은 “오늘 동국대 도량에서 이와 같은 훌륭한 법석을 열어 여섯 비구니 선사들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게 되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비구니 수행자의 일원으로서 문중을 떠나 한 승가의 사형 사제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오늘 받들어 모시는 여섯 분의 선사의 여섯 송이 한마음의 꽃을 피워주셨으니 마음 깊이 자랑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비구니승가연구소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아직 조명되지 않은 비구니 선사에 대해 연구하고, 책으로 엮고, 디지털 한국비구니자료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면서 “학술대회를 계기로 더 많은 비구니 선사들의 연구가 발표되고 이어지기를 발원해 마지 않는다”고 기원했다.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 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 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축사를 통해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비구니 승가 연구가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본각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의 삶을 연구하고 넓게 조망해 후속세대 의 연구 토대를 만들어주는 이 같은 작업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토대를 기반으로 비구니 승가의 연구는 더욱 견고하고 활발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그 역할을 대행선연구원에서 앞장서 주시니 고맙고 든든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동국대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도 축사를 통해 “오늘 여섯 분의 비구니 스님들의 생애를 조명하는 의미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비구니 선지식들의 조명하는 학술적 연구들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축사를 하고 있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축사를 하고 있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축사를 하고 있는 동국대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
축사를 하고 있는 동국대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

대행선연구원장 혜선 스님은 인사말에서 “지난해 대행 선사 열반 10주년을 맞아 세계 비구니 승가의 현황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그 이후 한평생 수행자로 살다 간 비구니 스님들의 일생을 통해 수행자적 삶을 돌아보는 것도 아주 값진 일이라 생각돼 오늘의 기회를 만들었다”며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네 일상적인 삶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행선연구원장 혜선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행선연구원장 혜선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제5회 묘공학술상시상식과 제5회 묘공학술장학증서 수여식도 진행됐다. 

올해 묘공학술상은 대상 없이 우수상 2명이 수상했다. 수상자로는 김경집 한국전통문화대 외래교수(묘공 대행선사의 한마음선원 설립과 그 시대적 의의)와 조승미 경북대 동서사상연구소 전문연구위원(중국 명말청초 비구니선사 황금기의 조명)이 선정됐다.

묘공학술장학에는 석사 부문에 나의진(동국대 WISE캠퍼스)·안홍민(하버드대), 박사 부문에 이혜빈(오슬로대), 박사수료 부문에 석보원(동국대 WISE캠퍼스) 씨가 선정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제5회 묘공학술상 시상식도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조승미 연구원, 혜수 스님, 김경집 교수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제5회 묘공학술상 시상식도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조승미 연구원, 혜수 스님, 김경집 교수
제5회 묘공학술장학증서 수여식 모습. 사진왼쪽부터  나의진(동국대 WISE캠퍼스)·안홍민(하버드대) 씨, 혜수 스님, 석보원(동국대 WISE캠퍼스) 씨.
제5회 묘공학술장학증서 수여식 모습. 사진왼쪽부터 나의진(동국대 WISE캠퍼스)·안홍민(하버드대) 씨, 혜수 스님, 석보원(동국대 WISE캠퍼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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