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달 스님, 6월 17일 대행선연구원 학술대회서 주장

관음 신앙 통해 1907년 불문 귀의
관음사 창건 후 16~17개 사찰 조성
항일운동 등 다양한 분야서 활동해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이 주제발표하고 있다.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이 주제발표하고 있다.

봉려관 스님은 10여 개 사찰을 중·창건하고 항일독립운동, 대사회활동 등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키고 중흥시켰고, 제주불교 지평을 확장했다. 그의 시대정신은 불교계는 물론 여성계에도 귀감이 되며, 나아길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은 617일 동국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열린 대행선연구원 제7회 학술대회에서 봉려관과 제주불교 지평의 확장을 통해 근대 제주불교 중흥을 이끈 선각자인 봉려관(1865~1938) 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했다.

혜달 스님에 따르면 봉려관 스님은 1899년 처음 관음신앙을 가졌고, 1901년 관음신력을 확신해 1907년 스님이 된다. 봉려관 스님의 관음신앙에 대한 핍박이 있기도 했지만, 1909년 제주 관음사를 창건하며 제주불교 중흥을 이끌었다. 봉려관 스님은 수행중심사찰인 한라산 관음사와 산천단 포교도량인 소림사, 성내 포교당 등 제주와 오사카에 사찰 16~17곳을 중·창건했다. 봉려관 스님이 이끈 불사로 인해 1925년 제주불교계는 중흥을 맡게 되다.

이 중 봉려관 스님이 창건한 법정사는 제주 항일운동의 기지가 됐고, 그 중심에는 봉려관이 있었다. 봉려관 스님은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자인 강창규, 김연일, 방등화를 1913년 법정사로 이주시켰고, 군자금도 지원했다. 안광호는 이에 대해 종 불사금을 걷어 종은 조그마하게 만들고 남은 돈은 모두 군자금으로 사용했다고 구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혜달 스님은 봉려관은 총을 들고 나가서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 전부 다하신 분이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견인했다면서 봉려관의 항일자금 조달은 문헌은 없지만 구술은 존재한다. 비밀결사와 같은 항일운동을 감안하면 드러낼 수 없는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봉려관 스님은 유치원, 중학교 건립 등 지역 교육문제 해결에도 앞장섰고, 약초를 통해 빈곤층을 구제했으며, 동수천을 보수해 지역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혜달 스님은 봉려관은 자신이 처한 개인적 시대적 상황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봤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즐기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갔다면서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 속에 그 어떤 근대여성보다 진취적 행보를 보인 봉려관을 한국여성의 모범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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