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숙 연구원, 6월 17일 대행선연구원 학술대회서

보문종 중흥 은영 스님 생애 조명
광복 후 제3의 길로 보문종 창종
현재 후학들 보문종 변화는 숙제

전영숙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이 주제 발표하고 있다.
전영숙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이 주제 발표하고 있다.

대한불교보문종은 세계 유일 비구니 종단으로 1972년 창종됐다. 보문종의 시작을 이끈 은영 스님을 조명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전영숙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은 617일 동국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열린 대행선연구원 제7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비구니 은영 스님의 생애와 보문종 창종의 의의를 통해 보문종 창종을 이끈 은영 스님의 생애를 조명했다.

전 연구원에 따르면 은영 스님은 1910115일 충남 대덕군 북면 미호리에서 태어났으며 9세에 동학사에서 긍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영 스님은 어린 나이에 출가했음에도 또래 스님과는 달리 일찍이 절 살림을 도맡았다.

20대 중반에는 세도가 민씨 집안이 보문사 경내에 묘를 쓴 것을 묘지 주인을 찾아 담판을 져서 해결했으며, 친일 권승 강대련과 보문사를 두고 오랜 쟁송을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승 긍탄과 은영 스님은 도첩의 효력이 상실되고, 주지 직위를 해제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힘없는 비구니 스님들은 당대 최고 권승과 재판을 벌여 승소했고, 결국 보문사를 지켜냈다. 또한 보문사의 사격을 일신하는 불사를 이끌기도 했다.

은영 스님은 비구니 위상 강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비구니회의 전신인 우담바라회 초대 회장을 맡아 한국 비구니승가 발전을 이끈 것이다.

은영 스님이 보문종을 창종한 것도 한국 비구니승가의 발전을 위해 제3의 길을 모색함에 있었다. 전 연구원은 현 보문사 비구니스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은영 스님은 정화 당시 조계사 등 영향력 있는 비구스님들이 있는 곳에서 자주 대중공양을 올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 비구스님들이 비구니스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시가 있었고, 은영 스님은 결국 비구도 대처도 아닌 제3의 길을 걷겠다고 결단을 내렸다면서 3의 길은 보문종이라는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을 세우는 데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연구원은 현재 보문종 종도 스님들이 선대 의지를 계승해 변화와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현재 보문사와 보문종의 활동은 최근 급격히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수년간 새로운 출가자자 들어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동진출가자 중심으로 인력이 구성돼 높은 결속력을 보인 보문종이지만, 이제는 시대 변화에 순응해 혁신과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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