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성지서 우린 붓다 現身 만난다 

‘중생에게 다가가는 불교’ 서원하며
2019년 이뤄진 ‘상월선원 천막결사’
‘상월결사’ 이어지며 전국 사찰 순례
2월 9일부터 43일동안 인도 대장정
부처님 발자국 따라서 걷는 순례행
그 길따라 불성 충만한 순례가 되길

2600여 년에 이르는 불교의 역사에는 수많은 다사다난과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다사다난과 우여곡절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전법(傳法)’과 ‘구법(求法)’의 역사가 아닐까? 어느 나라의 불교라도 전법과 구법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고,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신행과 수행 역시 전법과 구법의 노정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불교 전통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세한 작용을 하는 것은 전법(傳法)이다. 전법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이 그 나라 불교전통의 특수성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불치사리(佛齒舍利) 신앙을 강조하는 스리랑카 불교가 그렇고, 전법승에 의해 번역된 한문불전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변화했던 중국불교가 그렇다. 불교를 수용한 국가의 특수한 사정이나 구법승의 노력도 다대(多大)했지만, 전법승들이 전한 불교가 그 나라 불교전통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전통이 자리잡는 과정을 살펴보면 전법보다는 구법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최초기의 수용 과정을 제외하면, 한국불교의 역사적 변동을 가져온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주역을 맡은 것은 전법승이 아니라 구법승이었다. 그리고 그 구법승들이 직접 구해온 불교가 한국불교 전통의 주요 기반이 되었다. 원광과 자장은 국가불교의 기반을 닦았고, 의상은 한국 화엄의 독자적인 전통을 일구어냈고, 이들 구법승이 구해온 불교를 통해 한국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세워 전법했던 원효까지. 그리고 신라 하대의 승려들은 조계 혜능으로부터 시작된 남종선의 전통을 한국불교의 새로운 사조로 융합시켜 내었다. 구산선문의 개산조들이 그 주역이었다. 

5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백제의 승려 겸익은 율장을 구하기 위해 천축을 다녀왔다. 중국의 승려 의정(義淨, 635~713)은 자신이 지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서 천축을 구법·순례하는 과정에서 만난 동아시아의 승려 56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 8인이 신라의 승려이다. 이미 7세기 즈음에는 중국은 물론이고 천축으로 구법과 순례를 떠난 승려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순례와 구법에 대한 열정, 곧 붓다에 대한 간절함,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간절함이 오늘의 한국불교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결사는 ‘동일한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 모인 수행자들이 한 마음으로 이루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서원은 깨달음의 근원적인 스승인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결국 불교의 결사는, 어떠한 경우이든,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쫓아가고, 되살려내고, 시대와 장소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2023년 새해 벽두, 서원공동체 상월결사가 인도 만행순례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쫓는 것 역시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간절함이 빚어내는 당연한 행로일 것이다. 

2019년 겨울, 신도시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 한가운데서 ‘중생에게 먼저 다가가는 불교’를 기치로 내건 상월결사가 시작되었다. 임시로 마련된 비닐하우스로 된 천막선방의 차가운 한기를 뚫어낸 아홉 스님과 아홉 스님의 정진에 동참하는 열기가 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을 달구어냈다. 그들이 외친 것은 “상월선원 정진결사, 한국불교 중흥결사, 대한민국 화합결사, 온 세상 평화결사”이다. 

상월선원 천막결사의 첫 번째 모습은 불교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결사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천막선방에서 이루어진 아홉 스님의 정진이야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신도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의 소란 한가운데라는 점, 거기에 대해 동참하는 불자들의 야단법석이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비닐 법당에서 끊임없이 펼쳐졌다. 아홉 스님을 응원하고, 정진의 열기에 동참하는 불자의 행렬이 멈추지 않았고, 세상의 이목이 가득했던 90일간의 용맹정진이었다. 

그 열기의 이유는 하나로 모아진다. 스님들의 수행만을 위한 결사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도심 한가운데로 중생들을 찾아가 중생, 아니 부처님이어야 하는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하겠다는 원력을 담은 결사였기 때문이다.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쫓아 스님들을 찾아가는 불교가 아니라, 스님들이 먼저 찾아가겠다는 의지와 행동이 불자들의 호응과 동참을 이끌어내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한국불교는 ‘찾아오는 불교’에서 ‘찾아가는 불교’로의 첫걸음을 새롭게 내딛었다. 그것은 한국불교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찾아가는 불교’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물길은 격랑이기 마련이다. 격랑이 아니고서야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격랑은 힘을 억제하지 않는다. 부처님이어야 하는 수많은 중생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물꼬를 튼 원력이 그 생명들에게 온전히 다 닿도록 움츠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온 세상이 코로나19 팬데믹에 고통받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2020년 10월 7일 동화사를 출발하여 10월 27일 봉은사에 이르기까지 511Km에 이르는 21일간의 여정은 그래서 온 세상에 자비가 충만하여 뭇 생명들이 행복해지기를 염원하는 자비의 순례였다. 사찰보다는 이 땅의 생명을 가꾸어내는 산과 강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 위에서 이루어진 정진과 고행의 순례길이었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생명생명이 저마다 부처님이며, 부처님이기에 행복한 사람을 성취해야 한다는 서원이 담긴 사부대중의 발걸음이 도시를 지나고 마을을 지나며 원력을 일깨웠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한 거리두기로 단절된 마음과 마음들을 잇는 염원이 그 걸음걸음에 담고자 한 순례길이었다. 

한국불교에는 삼보를 상징하는 사찰들이 존재한다. 이른바 삼보사찰,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가 일구어낸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종찰(宗刹)들이다. 2021년 10월 1일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를 출발하여 지리산 화엄사와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를 거쳐 10월 19일 불보종찰 통도사에 이르는 ‘삼보사찰 108 천리순례’가 진행되었다.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인 상황에서 철저한 방역과 예방조치 가운데 이루어진 천리길에 이르는 삼보사찰 순례였다. 1700여 년 한국불교의 역사에서 전법과 구법에 나섰던 스님들이 가장 많이 걸었던 길이었고, 호남과 영남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화합을 상징하는 길이었다. 스님들이 앞서 걷고, 그 스님들의 원력에 동참하는 대중들이 끊이지 않고 함께 걸었던 구도와 화합의 순례길이 새롭게 한국불교의 성지순례길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순례’의 상징과 의미가 다시 한번 되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상월결사의 이름으로 평화방생순례가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끊이지 않고 진행되었다. 이제는 순례가 수행의 또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순례라는 이름으로 성지를 찾고, 뭇 생명들을 찾아 일깨우는 것이 불자들의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가장 일찍 순례가 시작된 종교를 꼽으라면, 역시 불교일 것이다. 붓다의 열반 이후에 근본 8탑을 비롯하여, 부처님의 행적이 남은 유적지들이 일찍부터 스님들과 불교도들의 순례대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차츰 성지가 되었다. 불교가 인도라는 경계를 벗어났을 때부터 벌써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붓다의 성지는 순례의 대상이었다.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쫓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성지보다 더 붓다의 가르침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곳은 또 없었을 것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붓다가 새기고, 불교도들이 붓다를 새긴 그 성지에 상월결사가 서원공동체의 이름으로 만행순례를 시작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상월결사가 보여주었던 행보를 생각하면, 상월결사가 보여줄 인도 만행순례 역시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버스 타고 하는 순례길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직접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서 걷는 순례행이기에 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순례단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례단이 만나는 성지 한 곳 한 곳에 있는 불탑들이, 부처님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나 기념비가 아니라는 점을. 인도의 불교도들에게는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불교도들이 순례했던 성지의 불탑은, 불탑이 아니라 부처님 그 자신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말이다. 부처님의 열반 이후, 그 자리에 이르렀던 순례자들은 거기에서 자신들을 찾아오셨던 부처님의 현신(現身)을 만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한 곳 한 곳이 부처님이 우리들 중생을 찾아 오셨던 바로 그곳이다. 순례단이 걷는 성지와 성지를 연결하는 길들은, 부처님이 중생을 찾아 맨발이 부르트도록 굳은살이 박혀도 멈추지 않았던 그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부처님은 중생을 찾아 45년 동안 교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제 그 길에 ‘중생을 찾아가는 불교’를 서원하는 공동체 상월결사의 이름으로 걷는 것이기에, 한마음 가득 ‘부처님이어야만 하는 중생들’로 가득 찬 발걸음이었으면 좋겠다. 

마침 한국과 인도의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그 50년은 불교가 이 땅에 전해지고, 이 땅의 불교인들이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온 2000년의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제 부처님이 우리에게 오신 그 길을 되밟는 발걸음이 시작된다. 그 발걸음 안에 ‘부처님이어야 하는 중생들’과 그 중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온 세상 평화결사의 서원이 충만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저마다의 부처님이 온 세상에 충만하는 순례가 되기를 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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