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처 곳곳마다 부처님 향훈이…

총 길이 1,167km. 서울과 부산을 편도로 3번 가는 만만찮은 거리이다. 그 고행의 순례길 43일간의 대장정이 2월 9일 드디어 닻을 올린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걸었던 붓다로드의 궤적을 직접 좇으며 발자취를 새긴다.

 이번 상월선원 인도순례는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부터 열반지인 쿠시나가르까지 불교사에 있어서 상징적인 성지와 유적들을 두루 찾아간다. 이번 순례자들이 순례 여정중 고행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며 만나게 될 성지와 유적들은 어떤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순례자들이 모이는 도시- 바라나시(순례단 도착지)
바라나시는 강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도시이다.  여기에서 시간의 흐름은 강가와 같은 장구한 윤회를 걷는 것 같고, 모든 작은 길은 강변으로 통하고 있어서 설사 길을 잃는다고 해도 순례자들을 어느 사이엔가 강변으로 데려갈 것이다. 
힌두 신앙에 의하면 강가의 성스러운 물에서 목욕 하면 모든 죄가 씻기고, 이곳에서 죽어 그 재를 강가로 흘려보내면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얻는다고 믿는다. 이것은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 대표하는 성스러운 강- 갠지스강
힌두교도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숭배하는 강이다. 우타르프라데시 주 북쪽 끝에서 발원하는 바기라티·알라크난다·만다키니·다울리강가·핀다르 강의 합류로 형성되며, 우타르프라데시·비하르·서벵골 주에 걸쳐 있는 갠지스 평원을 가로지르며 남동쪽으로 2,510㎞를 흐른다. 우타르프라데시 중에서 야무나·람강가·가가라 강, 비하르 중에서는 간다크·부르히간다크·코시 강 등 주요지류를 받아들인 후 방글라데시 중부에 들어선 갠지스 강은 북동쪽 하구에는 이 많은 분류들이 벵골만으로 유입되면서 형성된 너비 320㎞의 삼각주가 인도와 방글라데시 양국에 걸쳐 펼쳐져 있다.

처음으로 불법 전하다- 녹야원(사르나트, 원만회향 발원 기도 및 입재식)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땅으로 유명한 녹야원(사르나트)은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같이 수행한 5명의 형제들과 처음으로 불법을 이야기한 곳이다. 그 안에는 다메크 스투파라 불리는 불탑과 큰 수도원의 흔적, 고고학박물관등이 함께 위치해 있다.
초전법륜(初傳法輪)지라고도 불리는 녹야원은 옛 경전에 녹야원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 왕이 이곳에다 사슴을 풀어놓고 살도록 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부처님 머물며 法을 펴다- 라즈기리(영축산 기도법회/죽림정사, 아자트사투르 스투파)
라즈기리(王舍城)는 석존 당대 강국이던 마가다(Magadha) 왕국의 수도였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도달했을 때, 당대의 왕 빔비사라가 그의 거룩한 모습에 감복해 자기 국토의 일부를 떼어줄테니 이곳 라즈기리에 머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요청을 거절하고 이에 빔비사라왕은 이후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곳을 방문해 그 깨달음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깨달음을 얻게 된 부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곳에 와 빔비사라 왕과 12만명의 바라문 및 장로들에게 설법을 펼쳤다. 

부처님 대표 경전 설법처- 영축산
부처님께서 라즈기리에 머물때마다 즐겨 주석하셨던 곳으로 법화경 및 보적경, 대집경, 허공장경등 대승경전에 속하는 많은 경전이 행해진 곳도 이곳이다. 현재 이곳 영축산 정상부에는 1903년에 복원된 설법좌, 즉 여래향실의 기단부만이 남아있고 출토 유물들은 나란다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은 부처님의 편의를 위해 빔비사라왕이 닦았다는 것으로 두개의 작은 탑이 남아 있다. 첫번째 탑은 석존을 뵈러 오르던 빔비사라 왕이 수레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자리임을 알리는 것이고 두번째 탑은 빔비사라 왕이 시종마저 배재하고 홀로 부처님께 향했던 자리임을 알리는 것이라 한다.

포교활동 전초기지- 죽림정사
부처님이 계시던 당시 현 인도땅의 동북지방에 있던 (마가타)국의 수도인 라자그라하(일명 왕사성)는 부처님께서 최초로 본격적인 불교 포교활동을 벌이신 곳으로서 이곳 영축산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신 것으로 유명하고 또 당시 마가타왕국의 국왕 빔비사라왕이 기증해 부처님과 제자들이 우기에는 이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모아 가르쳤다는 죽림정사터가 이곳에 있다. 당(唐)의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죽림정사 서남쪽으로 5~6리 가면 남북쪽 큰 대나무 숲 속에 커다란 석실이 있다고 언급하고, 이곳이 마하가섭 존자가 대아라한 999명과 함께 삼장을 결집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부처님, 정각 이루다- 보드가야(부처님 성도지 마하보디대탑 기도법회)
불교 성지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 바로 이 성불의 땅, 보드가야이다. 부처님께서 구도의 일념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29세의 나이로 출가한 이래, 고명한 선인들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으나 만족한 답을 듣지 못하자 입산해 6년간 모진 고행을 수행하였음에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육체를 괴롭히기보다는 육체를 맑게 가짐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하산한 바, 그때 네란자다 강으로 내려가 목욕을 하시고 마을 소녀 수자타가 공양해 준 우유죽으로 체력을 회복하신 후 지붕처럼 가지를 드리운 큰 나무밑에 앉아 명상에 잠기시어 마침내 정각을 성취, 성불하신 곳이 바로 이곳 보드가야이다.

부처님의 성불 이래 그 나무는 보리수라 불리워졌고, 현재는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나무는 득도 당시의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의 손자뻘 되는 보리수이다. 아쇼카대왕이 스리랑카에 불법을 전파하면서 부처님께서 그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나무의 묘목을 보냈으며, 지금도 스리랑카 북방의 아누라다푸라시에 살아있어 2000년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바 스리랑카의 그 보리수 묘목을 다시 인도로 들여와 부다가야와 사르나트(녹야원)에 심었다고 하니 현재의 보리수는 제 3대인 셈이 된다. 보리수나무 아래에는 부처님께서 좌선 하고 있었다는 금강보좌가 있고, 그 돌에는 아쇼카시대 양식을 전하는 기하학무늬의 릴리프가 조각되어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장소에 건립된 높이 52m의 9층 탑 내부에는 부처님의 좌상이 안치돼 있고 주위에는 4개의 소탑이 둘러싸고 있는바 이곳을 대보리사라 칭하며 보리수, 금강보좌와 함께 성지순례자 필견의 명소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순례단은 부처님 성도의 상징인 마하보디 대탑을 참배하고, 수자타 마을도 방문한다. 보드가야는 조계종서 건립한 첫 인도 사찰인 분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인도순례단은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서 기도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천년前 불교연구 중심지- 나란다대학터
약 1500년 전 굽타왕조의 쿠마라굽타왕 시대에 건립되어 12세기 회교도들이 파괴 할때까지 전 아시아의 불교연구 중심지인 이곳은 당시 인도 각지와 한국 중국 일본 몽고 스리랑카 등 각국에서 온 약 1만여 학생들과 승려들이 기거했으며 중국의 현장법사도 5년간(AD.637-642)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부처님도 여러 번 방문하셨다는 기록이 어떤 문헌에 전해지는 이 곳에는 현재 동서 2,500m 남북 600m의 광대한 대학터에 11개 절과 14개 사원터가 남아 있으며 벽돌로 된 ‘GREAT STUPA’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치장벽토의 작품 및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페허화 되었으나 아직도 그 웅장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어 그 당시 불교의 융성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며 사리불 존자의 사리가 모셔졌다는 사리자 스투파가 대학터에 우뚝 솟아있고 또 이 박물관에서는 굽타왕조시대의 불교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불교 제2 결집지- 바이샬리(대림정사터)
파트나서 갠지즈강을 건너 북쪽으로 40㎞ 가면 바이사라왕이 건립한 도시 바이샬리에 이르는데, 부처님 생존 당시의 북인도에는 마가타와 코살라를 비롯한 16개의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그 16왕국 중의 하나인 리차비국의 수도로 부처님 당시에는 상업이 번영한 대도시였다. 부처님은 자주 이 도시를 방문, 설법을 행하셨고,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시기 전의 마지막 여행때는 창부 암파바리의 정성어린 대접을 받아들여 귀공자들의 분개를 사면서까지 교화를 시켰다는 등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 곳인데, 오늘은 한적한 농촌에 지나지 않는다.

아쇼카왕이 건립한 돌기둥 중 하나가 아직도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마우리아시대 이전에 만든 스투파와 원숭이들이 부처님께 꿀과 과일을 공양하면서 부처님께 바치기 위해 팠다는 넓은 못(목욕지)도 있는 이곳은 불교 제2의 결집지이며,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높이 7m의 네 마리 사자의 석주가 있다.

아기부처 나투다- 룸비니(부처님 탄생지 기도법회)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곳이다. 현재 네팔의 영토에 속하며 인도와의 국경서 약 20킬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네팔 국내선 항공편이 수도 카투만두와 이곳을 연결하고 있으나 승객이 많지않아 결항이 잦다. 대개 육로로 카투만두 또는 포카라에서 (6-8시간)룸비니를 연결하고 있다.

(또는 인도의 고락푸르에서 육로로 북상) 약 2600년전 석가족 왕국이 이 지방에 있었고 국왕 정반왕(슛도다나 왕)의 부인 마야데비왕비가 산일이 가까워지자 친정을 향해 길을 가던중 그 일행이 카필라성과 콜리성 경계 근처의 룸비니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던 바, 이때 백화만발한 꽃동산을 거닐던 성모 마야데비 부인이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무가지를 잡는순간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로 아기가 탄생했다는 부처님 탄신 설화의 고장으로 불교 성지서 빼놓을수 없는 곳이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20킬로 지점에 석가족 거성인 카필라바스투가 있다.

지금은 마야데비 부인을 기념하는 사당과 연못만이 룸비니를 지키고 있고 B.C 249년경 아쇼카대왕이 이 성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아쇼카대왕 석주가 성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카필라바스투는 부처님이 고타마 싯달타라는 왕자로서 지낸 카필라성을 이른다.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 중 ‘사문유관’ ‘유성출가’가 이뤄진 곳으로 인간 고타마가 붓다가 되는 계기를 만든 장소이기도 하다.

부처님, 무상을 보이다- 쿠시나가르(부처님 열반지 기도법회)
45년간 가르침 여행을 계속하시어 80세가 되신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던 그 해 우기에 병을 얻어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는 아난존자만을 데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시는 바 풍요로운 도읍 바이샬리를 지나 파바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가 공양한 식사로 이질의 증상을 얻으셨다. 병을 헤아리신 부처님은 당시 마라족 도읍인 쿠시나가르로 발을 옮기셨다.(고향인 카필라바스투 방향을 목표) 쿠시나가르 교외에서 45년 동안 끝없는 교화와 설법전파의 활동을 마감하고, 제자 아난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그루의 커다란 사라나무 사이에서 80년의 생애를 마치시고 입적하셨다고 전해진다.

이때 비통해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 입적후에도 부처님을 의지하고 또 법(진리의 가르침)을 의지하도록 당부하시고 가르침에 의문점이 있으면 물으라고 재촉하신 후 모든 사물과 현상은 지나가는 것, 게을리하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라고 이르신 후 열반에 드신바 이때 사라나무는 때아닌 꽃을 피워 부처님 유체를 장식했다는 이곳은 의의 깊은 불교성지이다. 그 옛날에는 수많은 거탑과 승방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고 유적에서 발견되는 불상 등이 버마의 불교도가 이곳에 건립한 마하팔리니르바나 사원에 모셔져 있다.

사원 주변에는 열반탑, 절터 등의 많은 유적이 있으며 동쪽 1㎞ 지점에 있는 라마바르 흙무덤(높이 46m의 벽돌탑)은 부처님의 유해가 다비(화장)된 터로 유명하고, 이 흙무덤의 서북방에 부처님이 마지막 목욕을 하신 히라니야바티 강이 흐르고 있다. 열반의 그림에서 보는 부처님 모습은 일생동안 이루어야할 업을 완전히 끝내고 육체를 떠나 우주의 영원 속으로 빠져 들어가시는 듯한 장엄한 광경인 바, 경전에서는 진리와 일체가 되어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되신 부처님께서 생사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금강경’ 설하다- 쉬라바스티
쉬라바스티는 석가모니께서 24안거를 지내면서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등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 2가량을 설한 곳이다. 안거란 우기동안 한 곳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것으로 당시 인도에는 우안거(雨安居)만 있었으므로, 부처님 평생에 걸쳐 24년 동안 이 곳 기원정사서 안거를 지냈다. 
아난존자가 보드가야에서 묘목을 옮겨 심었다는 아난다 보리수, 수닷타장가가 세운 최초 승원터인 코삼비쿠티와 경행터를 지나자 기원정사의 중심 유적인 향전(香殿)이 나온다. 
향전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경전을 설했던 현장으로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금강경’도 여기서 탄생했다.
 

부처님 24안거 나신 곳- 기원정사(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식)
기원정사(사헤트)는 중인도 교살라국 도성이던 사위성(쉬라바스티) 남서쪽에서 약 800m 지점에 있으며 당시 교살라국 상인 급고독(수탓타)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도시 남쪽에 정사를 세우기에 적당한 땅을 발견하고는 국왕의 태자인 기타 왕자의 요구대로 그 토지에 황금을 깔기도 하는 열의를 보여 건립했고, 여기서 부처님은 24회 우안거를 지내시며 설법을 하셨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제자 스부우티에게 최고의 대승경전 금강경을 설 하신 것과 여러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대좌가 남아있고 후대에 생긴 많은 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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