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순례 수행’ 패러다임 열다

​​​​​​​佛滅 이후 성지화… 순례 이어져
구법승 ‘구법순례’ 불교발전 견인
근대 이후 성지순례, 관광과 결합
걸으며 수행·정진 상월결사 순례
부처님 강조한 순례 정신 맞닿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신행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순례(巡禮)’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성지를 순례하는 전통이 있고, 기독교는 예수가 활동한 이스라엘 여러 도시와 초기 교회 사도들이 활동한 성지를 순례한다. 순례를 종교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슬람의 경우 일생에 한 번은 성지 메카를 순례해야 하는 하즈(Hajj)의 의무가 있다. 

성지 출현과 순례의 시작
종교적 순례가 정확하게 시작되는 시점은 교조가 부재하면서다. 교조가 살아있을 때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교조를 친견하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교조가 부재하게 되면 교단 구성원들은 교조의 가르침을 회상하고 신앙심을 고양시킬 행위를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산물이 ‘성지순례’의 형태로 나타났다. '

무엇보다 불교는 길 위의 종교라고 할 정도로 길과 밀접하다. 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고, 길 위에서 전법을 했으며, 길 위에서 열반에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길 위에서 이뤄진 구법·전법 순례에 가깝다. 

실제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정각을 이룬 부다가야,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열반처 쿠시나가라를 4대 성지로 삼고 있다. 여기에다 스라바스티, 상카사, 라즈기르, 바이슈리 등을 더해 8대 성지로 꼽고 이곳들을 기리고 있다.

〈대반열반경〉에는 부처님 4대 성지에 대한 순례를 어떤 마음으로 행해야 하며, 어떤 공덕을 쌓을 수 있는지가 설해져 있다. 

“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장소가 있다. 첫째, 여기에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둘째, 여기에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셋째, 여기에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넷째, 여기에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열반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 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장소이다. 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은 이 네 곳을 방문할 것이다. 아난다여, 누구든 이러한 성지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이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문·사·철〉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순례는 이 세상에서 붓다의 자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법의 바른 이해를 가져오는 내적순례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고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러므로 순례는 원심에서 출발하는 외적 순례로부터 구심으로 나아가는 내적 순례에 의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 주류 순례, ‘구법행’
부처님의 일생을 회상하며 기리는 순례뿐만 아니라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 자신의 수행을 점검받고, 법을 구하기 위한 구법행도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인 실크로드를 통한 구법승들의 구법순례다. 오로지 법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구법승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길을 나섰다. 2~8세기 중국을 통해 인도로 간 구법승은 약 131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한국의 구법승은 11명이다.    

이 중 유명한 구법승을 꼽자면 당나라의 현장 스님이다. 중국 고전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현장 스님은 국외 여행을 금지한 국법을 어기고 629년 인도로 떠난다. 고창국과 천산산맥을 넘어 중인도 나란다 대학에 이르게 된다. 그는 5년을 머물면서 그토록 얻고자 했던 〈유가사지론〉을 비롯한 유식의 교학을 배우게 된다. 또 각지에 구법과 불적 순례의 여행을 계속해서 다수의 불전을 얻어서 귀로에 나섰고, 17년만인 645년에 이번에는 환영을 받으면서 장안으로 돌아왔다. 현장 스님은 구법 여정을 통해 불사리 150개, 불상 8체, 경전 520권 657부를 중국에 전했다.

한국의 구법승 중에는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스님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혜초 스님의 인도로의 구법행은 당시 항해술로는 목숨을 건 대장정이었다. 725년 초 동천축에 도착한 혜초 스님은 그때부터 4년 동안 인도 전역을 돌며 붓다의 탄생지, 득도처, 최초의 설법지, 최초의 절, 열반지 등을 돌아보았다. 특히 스님은 마하보리사 대탑을 비롯한 8대 영탑을 참배하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8세기 당나라 불교계에서는 밀교승들을 중심으로 이 순례가 수행 일환으로 강조된다.

스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님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옛 소련의 국경 지대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파미르 고원 등 총 8년에 걸친 만행을 이어간다. 혜초 스님이 중국으로 돌아온 길은 바로 실크로드였다. 육로로 실크로드는 해로에 버금갈 만큼 험했다. 편도에 약 2년이 걸리는 악조건이었다. 당시의 교통수단과 환경 등을 짐작해 볼 때 한마디로 스님의 구법순례는 죽음을 담보한 것이었다.

이처럼 목숨을 걸었던 구법승들의 구법 순례는 동아시아 불교가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자 단초가 됐다.

한반도 내 불교성지 순례는
한국불교 내에서 성지순례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원효, 의상 스님이 낙산사 관음성지 순례를 했다고 전해지는 등 한국불교 순례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에는 금강산으로 기도 순례를 떠난 회정 스님이 송라암에서 관음기도를 드리다가 3년 기도 끝에 문수·보현·관세음보살을 모두 친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 이성계의 경우 국왕이 되기 전 전국 명산을 기도 순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근대 이후 교통이 발전하면서 현대의 성지순례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70년대까지는 한국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에게 자신의 생활공간을 떠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과 숙박의 해결이라는 사회적인 여건의 발달되며 성지순례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이후부터 국민 문화 향유와 복지 증진의 차원에서 관광 활성화 사업이 전개됐고, 이에 따라 일반 시민들은 일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교통의 발달과 함께 이뤄진 숙박시설 확대는 불교 신도들의 성지 접근성을 높였다. “사회 현실과 맞물리면서 성지가 된 사찰은 신앙과 관광을 겸하는 추세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효원)”이라는 분석은 이에 부합된다.

일선 사찰들도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방법으로 순례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 불광사가 성지순례 신도 신행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는 전국 사찰로 전해졌다. 2006년에는 서울 삼각산 도선사에서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첫 시작을 알렸고 2015년 회향했다. 이들 모두 교통과 숙박이 용이해지면서, 순례에 ‘관광’의 요소가 결합된 것들이다.  

상월결사 순례, 21세기형 구법행
상월결사가 천막 정진 이후 진행한 자비순례(2020)·삼보사찰 천리순례(2021)·평화방생순례(2022)·인도순례(2023)는 ‘길을 걸으며 수행하고 전법하는’ 순례의 기본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 순례 관광 프로그램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2020년 자비순례 당시 이뤄진 ‘상월결사의 시대적 의미와 과제’ 주제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은 ‘수행과 전법의 길로서 상월결사’를 통해 상월결사 순례가 부처님이 강조한 순례의 정신이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자현 스님은 상월결사 순례가 〈유행경〉 등 8종의 열반 문헌에서 그 기원이 있음을 강조하고 “현대사회에 들어와 걷기 문화가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 이는 중요한 포교 수단으로서 가능성을 내포한다”면서 “당나라의 현장 스님은 유식학의 수학과 천제도수의 성지를 참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상월결사의 순례가 하루 30km의 순례와 더불어 매일 같이 1~2시간의 교육 및 토론이 진행되는 구조는 진정한 구도의 길을 상기시킨다. 이는 21세기의 진정한 구법의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길에서 수행하고 대중을 만나는 상월결사 순례와 정진에 대해서는 ‘찾아가는 불교’로의 전환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혜명 스님은 상월결사가 “중생과 유리된 불교가 아니라 중생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서는 불교가 되겠다는 서원을 표출한 것이며, ‘중생을 찾아가는 불교’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라고 밝혔다.

황순일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상월결사 순례를 1930년 ‘사띠야그라하’를 표방하고 24일동안 390km를 걸었던 간디의 ‘소금 행진’과 연결된다고 봤다. 간디의 소금 행진은 식민지 영국 정부의 소금 독점과 과세에 대한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78명의 지지자로 시작해 행진이 끝날 즈음에는 동참자가 6만 명으로 늘어났다.

황 교수는 “간디의 소금행진은 정치·사회적 요구로 출발했지만, 만행결사는 지극히 불교적인 발원과 오랜 순례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이번 만행결사는 한국불교가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불교의 새로운 미래를 담보하는 장대한 여정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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